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nghee An Jul 25. 2016

여기 저기 안부의 말을
흩뜨리고 싶은 날들

Warmest regards from London


 평온하고 고요하다. 여기저기 안부의 말을 흩뜨리고 싶은 나날이다. 나는 이토록 평화롭게 머물고 있다고,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하게 지내고 있다고. 닿지 않는 사람을 향하는 그리움도 부질없는 미련임을 알고, 문득문득 끼쳐오는 그리움도 순간의 충동임을 알고, 이미 지난 일의 경우의 수를 세어보는 일도 일절 소용없음을 안다. 그렇기에, 나는 평화로이 머물 수 있다. 사람이 성장하는 건 크나큰 변화가 아니라 이렇게 작은 깨달음을 쌓아가는 일임을 알아가고 있다. 



/



 5년 전의 런던을 생각해 보면 아주 지독히도 외롭고 괴로웠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내가 누리고 느끼던 것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랬다. 그 모든 좋은 것들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나, 멍청하게도 우리는 한국에서 영국에서 서로에게 가닿지 못한 채 유치한 감정싸움을 벌였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아주 아주 컸으나 우리는 그 마음을 결코 표현하지 못했고, 나는 타국의 멋진 도시에서 아름다움을 혼자 경험하며 밑도 끝도 없는 허무에 빠졌다. 주변에 사람이 많았으나 마음껏 소통할 수 있다는 느낌을 결코 받을 수는 없었고, 나눌 수 없는 아름다움과 공유할 수 없는 환희는 그토록 텅 빈 것임을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로 느끼며 고통받았다. 결국 그 허무는 나로 하여금 그 사람을 영원히 떠나게 만들었으며, 나의 공허를 꾸준한 성실함으로 채워 준 새로운 사랑에 나를 온전히 내맡겼다. 2011년의 런던은 그랬다. 오랜 사랑과 새로운 사랑이 교차하던 곳, 해묵은 나와 새로운 내가 등을 맞댄 채 이별하던 곳, 이전과 이후의 삶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곳.



/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에 열정적이지 못한 내가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다. 그리고 그 일은 생각만큼 어렵거나 어색한 일이 아님을 느끼고 있다. 나이가 드는 만큼 유연해지고 있는 것이겠지. 좋은 사람에게 다정하고, 훌륭한 사람에게 겸손하고, 그다지 정감 가지 않는 사람에게도 친절하려 애쓰고 있다.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궁금한 것들은 없지만 질문을 많이 하려는 노력도 기울인다. 그리고 가끔은 정말로 궁금한 것들이 생기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상대가 아주 흥미롭고 독특해서가 아니라, 선해서다. 이토록 선하고 다정할까 싶은 사람이 세상에 이만큼이나 많은지 이전에는 알 수 없었는데,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



 세 번째다 벌써. 이젠 관광지가 아닌 런던이 눈에 보인다. 쉽게 눈에 띄는 곳들 뿐 아니라 골목 구석구석이 아름다운 곳이구나 싶다. 집 창가에 놓인 화분들, 정원의 정갈하지만 인공적이지는 않은 꽃과 나무들, 한 블록에 하나씩 있지만 모두가 다른 느낌을 주는 공원들, 각기 다른 색채의 현관들, 쭉 뻗은 도로의 가로수와 건물 외벽들 모두가 각기 다르게 아름답다. 특히 요즘 같이 이상 기온으로 해가 뜨거운 때에 공원에 자리를 펴고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세상 이런 천국이 없다. 자연이 있고, 시간이 있고, 음악이 있고, 그것들이 한순간에 어우러지면 가장 큰 행복을 맛보게 되는 것 같다. 인구 밀도와 접근성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서울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삶의 질이 고공 상승하는 나날이다. 물론 건조한 여름이라 가능한 일이고, 4시에 해가 지고 매일 비가 오는 겨울이 되면 아마 우울 증세가 다시 나타날 것이다. 



/



 아일랜드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 아직은 그립지 않다. 



/



 지금 이 일기도 용기를 내어 쓴다. 단순한 생활을 하니 생각도 단순해져서 세상 복잡할 일이 없기에 글을 쓰는 일도 쉽지가 않다.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바깥이 환히 비치는 레이스 커튼 밖을 응시하고 있자면 무념무상이 되어버린다. 외출도 잘 안 하는 집순이가 되어간다. 대신 좋은 영화를 많이 본다. 최근 <데몰리션>을 보고 난 뒤 엔딩크레딧에 흐르는 음악에 빠져 여기저기 안부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 것이다. 상실과 극복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과연 도래하기나 할지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골몰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나를 감싸는 공기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가 이렇게 희미한 순간을 살아보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싶은 것이다. 



/



 안부를 전한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세상 제일 따뜻한 안부의 말을. 사랑한다고, 그립다고, 보고 싶다고,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고 싶다고,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싶다고, 멍하니 공원에 누워 함께 음악을 듣고 싶다고, 때로는 비린내가 날 때까지 몸을 섞다 물이나 마시고 싶다고. 이런 말들보다도 그저 내 아끼는 동무들에게 말하고 싶은 단  두 가지가 있다면, "건강하자"고, "외롭지 말자"고. 




 /



 우리는 곧 만나게 될 것이므로. 

작가의 이전글 한 도시에서 세 번 살아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