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재능을 가진 이는 여전히 고민한다
내 열정에 내가 타 죽을 것 같았던 10대를 보냈다. 아마 무언가에 그토록 열정적일 수 있는 삶을 다시 살지는 못할 것이다. 없으면 죽을 것 같았고, 내 인생 전체가 그것을 위해 디자인된 것 같았다. 부끄럽지만 그랬다. 나 또한 27세 클럽에 들어 내 재능을 불태우고 요절할 줄만 알았으니까. 난 내가 분명히 영화를 위해 태어나 그에 헌신하는 삶을 살 줄 알았으니까. 성인이 되면 칸이니 베를린이니 영화제가 열리는 모든 도시를 내 집처럼 드나들 줄로만 알았으니까. 지난달 나는 드디어 만 27세가 되었고, 나는 천재가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눈곱만큼의 똘똘함을 가진 것도 아닌 지극히 범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심지어 만 스물도 되기 전의 일이었다.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나는 애매한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 어떤 창의적인 확실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채로 가늘고 길게 오래 살 것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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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멍하니 있다 보면 대학시절 교수님들에게 메일을 보내는 상상을 해본다. 결코 메일을 쓰거나 쓴다 해도 끝내 전송 버튼을 누르는 일은 없을 테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마음이 든다.
대학 졸업식 날이었다. 엄마와 나와 절친한 친구 셋이 지하철역에서 출발하는 학교 셔틀버스를 탔고, 평소 나를 좋게 봐주시던 영화 평론가인 교수님 한 분이 버스에 함께 올라탔다. 졸업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이런저런 스몰 토크가 오가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이제 대학원 갈 거지?"라고 물으셨다. 엄마는 단칼에 "이제 돈 벌어야죠."라며 모든 미래의 가능성과 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일축해버렸고, 나와 친구는 조금은 뜨악한 채 입을 닫았다.
결코 영화 만드는 데에 재능은 없었으나, 교수님들에게 꽤나 똘똘한 인상을 심어주던 나였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다 답을 내놓는 학생이 없으면 늘 내 이름을 호명했고, 사실 나는 대부분의 답을 알고 있어 이래저래 대답을 잘 하곤 했다. 너무나도 고심한 리포트는 한 달이나 지나 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학기 성적을 A+로 만들어주었다. 물론 알고 있다. 내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저 어릴 때 본 영화들을 다른 학생들보다는 조금 더 많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으며, 마침 무작위적 질문에 내 대답이 얻어걸리던 것이라는 것을. 그 리포트들 따위 코딱지 만한 내 글쓰기 재능으로 커버해버린 것일 뿐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날의 일 때문이었을까, 아직도 종종 왠지 모를 아쉬움이 마음 한편에 두둥실 떠오르곤 한다. 만드는 데 재능은 없지만 그래도 이론 공부는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적성에 맞을 것 같은데 하는 마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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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오후에 자유 시간이 많기도 해서 영화를 보고 있다. 예전에 본 영화를 다시 보기도 하고, 새로운 영화를 보고서는 하루 온종일 OST를 들으며 영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British Film Institute 도서관에 가 내가 알아먹을 수도 없는 수많은 영화 관련 영문 서적을 훑어보며 설렘을 느꼈고, 다음 달 상영 시간표와 카탈로그, 영화 잡지들을 보며 환희를 느끼기도 했다. 말은 진즉에 영화 때려치웠다면서도 아직 영화적 감성과 지식이 충만한 곳에 가면 첫사랑을 못 잊는 찌질한 남자 빙의라도 된 듯 마음 한편이 시큰하니 아련해져 오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가장 간단하고 빠르게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을 깨달아 나를 두고 뭐하는 사람이냐 물으면 대학에서는 영화를 공부했고, 졸업 후 일도 잠깐 했었으나 지금은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을 하곤 한다. 외국에 나와 만나는 사람 모두가 새로운 인연이니 11개월 동안 이 말을 하도 자주 해서 그런 걸까, 나는 아직도 내가 진정으로 영화를 버린 것인지 헷갈리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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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인정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일까. 다만 처음과 같지 않은 열정의 온도에 놀라 너무나 쉽게 도망해버린 것은 아닐까. 아직 영화를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해도 되는 것 아닐까. 만드는 재능은 없지만 여전히 보는 것을 좋아하고, 이제는 내 정적인 성향에 맞게 이론적으로 학문적으로 접근해보고 싶은 것 아닐까 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 자신의 특질에 대해 알게 되며 감독이 되기 위해 뜨겁던 그 열정이 조금은 온화하게 변화한 것은 아닐까 하고. 아주 사라져버린 것이 아니라 다르게 변화한 것일 뿐이라고. 그러나 여전히 의심이 든다. 또다시 영화를 보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싶은 욕구로 착각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모르겠다. 모든 것에 확신에 차 있던 내가 왜 이리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지, 영화는 내 길이 아니라며 온 20대를 보내 놓고서 왜 이제 와서 다시 영화가 좋은 것인지, 그저 훌륭한 관객이 되고 싶은 것인지, 조금이나마 영화라는 산업이자 예술 매체에 기여를 해보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그저 외국에 나와 살고 싶어서 공부라는 핑계로 이런저런 길을 만들어 보려는 것은 아닌지. 마지막 가능성에 가장 큰 무게를 두고는 있지만, 사실 그저 넘겨버릴 만한 것은 아니다 싶어 이렇게 주절주절 고민을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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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재능은 이토록 복잡하다. 만들지 못할 바에 그만두겠다면서도 아직 완전히 그만두지 못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