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역시 나를 비춰주기만 한다면야
상처받은 피해자가 되는 일은 차라리 쉽다. 욕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그 잔재를 불태워 소진해버린 뒤, 멍청한 사람을 만났었노라 우습게 여겨버리면 그만이니까. 무심한 가해자가 되는 일은 가장 쉽다.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을 테니까, 그저 합리화해버린 뒤 잊어버리면 그만일 테니까.
그러나 사려 깊은 가해자가 되는 일은 의외로 조금은 어렵다. 상처를 가하면서도 상대방의 비애가 곧이 곧대로 되돌아와 날카롭게 꽂히기 때문이다. 그 표정과 감정을 아마도 오래도록 지우지 못할 테니까, 그리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끝끝내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니까. 실은 내가 시시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루빨리 나를 우습게 여겨주길 바라는 것도, 그렇다 해서 오래도록 아파하길 바라는 것도 아니기에 가해의 상처는 오롯이 나 혼자 보살펴야만 한다. 상처받았노라 말할 자격 또한 없다. 피해자에게서 나의 존재가 잊혀지고 나를 업신여겨줄 그때까지, 나 없는 세상에서 한 없이 가벼워진 모습으로 여전히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는 그 날까지 응당 그 죗값을 스스로 치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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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수년간 나를 지속해서 지옥불로 떨어뜨려 화상에 데인 것처럼 살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그 끔찍하고도 익숙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 화상 자국을 지우느라 수도 없이 연고를 바르고, 찜질을 하고, 헌신적인 의사에게 나를 내맡겨 어렵사리 치료한 상처였다. 상처는 치유되었으나 그 흉터는 여전히 피부 깊숙한 곳에 남아있어 그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영혼, 나를 아끼는 영혼. 두 영혼이 깊은 교감을 나누고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가는 동안 나는 다만 그림자가 되고 있었다. 내 속의 밝은 면을 다 퍼주는 동안 나를 아끼는 영혼은 나의 빛을 받아 더욱 반짝 빛나기만 했다. 그 영혼이 빛을 발할수록 나는 그 빛나는 존재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으나, 나는 점점 더 어두워지기만 했다. 반사되는 빛만으로는 충분히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소름 끼칠 만큼 익숙한 상황이 다시금 반복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 역시 너처럼 자기 방어를 일삼는 '비겁자'가 되었다. 나는 너를 '비겁자'라고 부를 자격이 없었다. 가장 비겁한 건, 네가 아닌 나였다. 그러나 나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때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조금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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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영혼은 그야말로 '예쁜' 영혼이다. 상처가 많고, 감성적이고, 섬세하지만 그만큼 성숙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씩씩하고 마음이 넓게 자라난 사람들. 청초한 겉모습을 가지고, 말도 예쁘게 다정하게 하는, 그저 몸 안에 낭만이 있는 사람들. 끝도 없이 토론을 할 수 있고, 3-4시간을 서로를 농담거리 삼으며 함께 걷기만 해도 지루하지 않은 사람들. 양육된 역사와 자라온 환경에 받은 트라우마가 비슷해 굳이 어떤 설명 없이도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저 너무 귀여워 보기만 해도 웃음 지어지는 사람들.
내가 이런 영혼을 사랑하는 일을 멈출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 영혼들이 나를 사랑해 주는 일을 막을 수 있을지도.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지도 모르지. 아마 또다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네. 다만, 정말 다만 이 역사가 세 번 네 번 다시 반복된대도 그 영혼들 역시 나를 비춰주기만 한다면야, 그렇기만 한다면야 나는 괜찮다. 100번이고도 더 사랑할 수 있다. 정말로.
그러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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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