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우리의 산책이 낮잠을 자다 꾼 꿈인 것 마냥
우다이뿌르는 호수가 예뻐서 인도 신혼 부부들의 허니문 장소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방문했을 때는 호수 물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서 물은 커녕 그 위에 수북히 자란 풀만 봐야했다. 전망 좋은 게스트 하우스를 골랐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호수를 보러 간 곳에 물이 없으니 그저 최선을 다해 존재하는 일 밖에는 달리 할만한 여흥 거리가 없었다. 여행 동반자들과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게스트하우스 옥상의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콜라를 마시고 동네를 살살 산책했다. 아주 작은 동네였고, 산책은 반나절이면 끝.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유적도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 존재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아주 순식간에 사람의 혼을 쏙 빼놓던 사람들을.
우다이뿌르의 초현실적인 일 01
혼자 산책을 하다가 카페트와 옷과 장식품을 파는 가게에 들어갔다. 물건을 구입할 건 아니니 구경만 하고 나오려 했는데, 어느덧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이 옷을 입고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살갑고 친절한 주인 아저씨가 인도에 여행을 왔냐며 친절하게 가게의 물건들을 보여주다가 옷을 입어봐도 된다며, 굳이 사양하는 내게 여기저기서 옷을 마구 꺼내오더니 인형놀이 하는 소녀처럼 이 전통 의상을 입혀주었다. 5분도 안 되어 벌어진 그 일에 나는 정신을 못차리고 다시 길을 나섰는데, 이건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이지 초현실적인 순간이었다.
"여행은 여러 가지 순간으로 구성된다. 어처구니없이 덥고 지저분한 기차 안에 구겨져서 19시간을 달리고 있자면 새삼 소박하고 편안한 내 방이 왜 그리 그리운지. 깨끗이 씻고 옥상 위 레스토랑에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자면 여행은 왜 그리 아늑한지. 내가 머무는 곳에 빠져 한국을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당신들은 왜 그리 보고픈지. 그럴 때면 괜히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다시 외롭다가 아늑했다가 한다.
여행은 이렇게 다양한 순간이 만들어내는 앙상블. 한국으로 돌아가면 생활과 여행 사이의 앙상블, 그 균형을 맞추어가며 살아가게 될테다. 이번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극기 훈련 다름없다. 덥고, 목만 마르고, 더럽고, 피곤하다. 하지만 즐겁다. 이미 많은 이들과 친구가 되었고,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내 내면의 깊이가 0.1mm 정도는 깊어지지 않았겠나 싶다.
내 발로 걸어 들어온 이곳에서의 극기 훈련 14일째. 출국 날 보송보송하던 내 모습 더 이상 찾을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이곳에서 더 많은 것을 찾는 중이리라고."
우다이뿌르의 초현실적인 일 02
동행과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한 소녀가 다가왔다. 지구 어디에 홀로 내놓아도 살아남을 것 같은 붙임성을 가진 아이였다. 한국인이냐고, 자기도 한국인 친구가 있다고 했다. 친구의 이름이 지혜라 했던가. 그 소녀는 동행과 나의 가운데 서서 우리 손을 한 쪽씩 붙잡고서는 같이 놀자며, 자기 집에 가자고 했다. 정말로 그 아이는 한국말을 할 줄 알았다. 물론 인사말과 몇몇 단어를 아는 게 전부였지만 소녀는 꽤나 똑똑하고 야무졌다. 소녀와 우리는 손을 잡고 깡총깡총 뛰며 동네를 산책했다. 자기 집에 짜이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소녀의 가족에게 민페일지 몰라 고민했다. 그래도 일단 집까지는 데려다 주마, 하고 계속 손을 잡고 길을 걸었다. 동네 구멍 가게를 지날 때 소녀가 갑자기 슈렉의 고양이 눈망울을 하며 배가 고프니 빵을 사달라고 했다. 우리는 빵을 사주었다. 초콜릿도 하나 사줬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소녀는 빵을 집어든 채 정말로 순식간에 증발하듯 사라져버렸다. 마치 우리의 산책이 낮잠을 자다 꾼 꿈인 것 마냥….
우다이뿌르의 초현실적인 일 03
식사를 위해 레스토랑을 찾았다. 요로코롬 초-큼 느끼하게 생긴 사장은 우리에게 다가와 친절하게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왔냐고, 그렇다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자기의 악기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우린 정신을 차려 보니 이 아저씨의 기타 반주와 오라방의 젬베, 나의 탬버린 합주 소리에 맞추어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를 부르고 있었다. 나의 동행은 한국에서 밴드를 하는, 기깔나게 노래 잘 하는 사람이였다. 갑자기 벌어진 이 상황이 믿겨지지 않는 나는 그저 탬버린을 흔들었고, 이 상황이 그저 귀찮은 오빠는 무성의하게 젬베를 쳤고, 언니는 신명나게 노래를 불렀다. 인도 한복판에서 부르는, 인도 아쟈씨가 반주해 주는 백만 송이 장미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