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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책방 Feb 15. 2021

빈 여자

엽편 소설

여자는 자신의 몸이 투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가슴과 배를 잇는, 갈비뼈가 두 개의 활처럼 맞닿아 있는 그 부분에서부터 물이 차올라 온몸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남자가 정성스럽게 가꾸고 있는 식물들을 바라보다가 이틀 전 병원에서의 일을 떠올린 게 문제였다.



“이번 차수에도 좋은 결과를 전해드리지 못하네요.”

의사는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고 안타깝다는 의미로 어색하게 웃으며 여자에게 말했다. 여자의 주치의는 여자에게 항상 친절하게 대했고, 혼란과 찬 기운이 가득한 수술실에서 얼어가는 그녀의 손을 잡고 온기를 전해주던 사람이었다.

“시험관 시술을 시행하신지 벌써 4년이 넘었고, 환자분 나이도 마흔이 넘으셨네요. 이 시점에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다시 한번 배우자와 상의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 그럴게요.”

여자는 괜찮다는 의미로, 의사에게 미소를 보내고 진찰실을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자에게 문자로 이번에도 임신에 필요한 수정은 되지 않았다고 알렸다. 남자는 그녀를 위로했다. 집에 들어온 남자와 여자는 긴 이야기를 나눴고, 이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그날도, 다음 날도 괜찮았다. 그런데 오늘 여자는 자신의 남편이 결혼 후 집 안에서 하나둘씩 늘려가며 가꾼 식물들이 처음과 달리 많이 성장했다고 인식하자 동시에 자신은 영원히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 무거운 현실로 다가왔다. 여자는 고통스러웠던 유년 시절을 떠올렸다. 자신은 좋은 부모가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유년 시절이 여자의 내면을 찢고 아무는 과정에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녀는 곧 자신이 사라질지도 몰라 두려우면서도 온몸이 물이 가득해 투명해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여자의 몸은 울 준비가 되고 있었다.



남자가 가장 사랑하는 몬스테라의 넓은 잎과 공중 뿌리에 물방울이 떨어져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눈물을 흘릴수록 여자는 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가 다시 온몸에 물이 차올라 투명해지길 반복했다. 그녀가 흘린 눈물이 햇빛에 반짝였다. 이대로라면 몬스테라는 과습이 되고, 여자는 말라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여자는 더 늦기 전에 남자에게 자신이 울고 있다고 문자를 보냈다.



남자가 집에 왔을 때, 여자는 바싹 말라 껍데기만 남은 채로 납작하게 쓰러져 있었다. 몬스테라와 주변 식물의 화분에선 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를 안아, 욕조 안에 조심히 늘어뜨리고 따뜻한 물을 채웠다. 남자는 욕조에 걸터앉아 여자를 지켜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종잇장 같던 여자의 몸이 물을 흡수해 차올랐다.



여자는 몸이 예전처럼 돌아오자마자 남자의 손을 잡았다.

“미안해.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어. 당신이 아꼈던 몬스테라가 나 때문에 죽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

“그건 아무래도 괜찮아.”

남자는 아내의 손을 마주 잡았다.

“당신, 위험했어.”

“어, 그랬지.”

여자는 남자의 허벅지 위에 비스듬히 얼굴을 올렸다. 다행히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점점 괜찮아질 거야. 우리가 함께 있으면.”

남자는 여자의 머리카락을 조심히 쓸어내렸다. 여자는 남자의 손길을 느끼며 다시 원래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 것에 감사했다.  

“그래, 괜찮아질 거야.”



다자이 오사무 글을 읽으며 나를 투영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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