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지아빠 Oct 20. 2019

아빠와 남편으로써 조국

가족애가 만들어낸 조국의 검찰개혁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천안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하늘은 유독 파랗고 깨끗했다. 파랗고 깨끗한 하늘을 보니 모두 놀러가고 싶었을 것이다. 일하러 가는 길인데도 파란 하늘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차를 타고 가면서 팟캐스트를 통해서 조국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김어준이 말해 준 바보 조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가슴에 쥐가 내리듯 마음 한 편이 아련했다. 가슴이 먼저 느 애절함은 뇌를 통해 눈에 눈물을 맺히게 만들었다. 40대가 되고 난 후로는 눈물이 더 많아졌다. 더 쉽게 공감이 가고 더 쉽게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갈 수 있어서 그런거 같기도 하다. 고속도로는 차로 가득찼고, 나는 조국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했다.


학창시절이었다. 어느날 엄마가 나를 불렀다. 아빠가 하던 일이 너무 안 풀려서 나와 누나는 할머니댁에서 잠시 살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가난하게는 살았어도 떨어져 산다는 건 굉장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나에게 하는 엄마의 눈은 눈물을 흘리기 직전이었다. 강인한 엄마였는데, 자식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 직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셨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풍파를 맞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모든 걸 정리하고 달동네 쪽방에 거처를 정하셨다. 자식들이 찾아오면 따스한 밥을 만들어 자식들에게 먹였고, 자식이 먹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으셨다. 지금 내 아이를 키우는 아빠가 되어 이 때를 되새기면 눈에 눈물이 맺힌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로 인해 아픔과 고통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렇게 나는 조국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검찰개혁과 법무부장관은 이야기가 아니라, 두 아이의 아빠, 한 여인의 남편인 조국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 아빠는 하루에도 백번, 천번, 만번을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가족을 고통속으로 몰아넣고 이 일을 해야 했어야 하는가? 딸 아이 집을 늦은 시간에 기자들이 찾아와 문을 두들기는 상황을 알면서도 검찰개혁을 해야 하는가? 아내가 그 동안 쌓은 학자의 삶이 한 번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도 버터야 하는가? 그렇게 자신을 책망하고 또 슬퍼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못 할 거 같다.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잘 살고 있는 아내와 자식들의 삶을 풍비박산을 내야 한 단 말인가? 검찰개혁을 하지 않으면, 이 땅에 살게 될 내 자식들이 너무 억울하게 살아야 하는 입장도 아니면서, 조국은 한 가지 가치를 지켜내고 싶었던 거 같다. 아빠와 남편 그리고 소신 사이의 갈등이 그를 몰아쳤을텐데도 그는 버티고 또 버텼다.


이렇게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빠와 남편으로 포기하려고 할 때, 그 소신을 지켜준 사람이 가족이 아니었을까? 한 평생 남편을 바라보면서 이 남자를 위해 죽어도 좋다는 말하는 아내와 아빠의 소신이 지켜질 수 있게 묵묵히 버티겠다고 하는 자식들이 그를 버티게 해 준 것은 아닐까? 그렇게 가족이 서로를 위하고 아끼면서 버틴 66일.


고속도로를 나와 일터로 향하는 길에 나는 잠시 아빠와 남편으로써 눈물을 흘렸다. 어릴적 엄마가 따로 살아야 한다고 했을 때, 태연한 척 그럴 수 있다고 말하던 어린 나와도 마주했다. 그리고 가족이 서로에게 어떻게 힘이 되고 있는지도 생각해 보게됐다. 그렇게 몇 방울의 눈물이 흐른 뒤 가슴속이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감정이 눈물을 통해 배설을 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조국 가족가족이 버텨준 66일이 고마웠고, 온 가족이 고통을 함께 인내하며 보여준 가족애에 감사했다.


브런치에 조국 전 장관과 검찰개혁, 언론개혁에 관한 생각을 몇 번 적었었다. 이제 자연인 조국에 대한 이야기를 끝으로 그만 적고자 한다. 이제 검찰개혁은 시민들이 이해했고, 시민이 동력이 되어 진행될 것이라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국사태와 나비효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