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회사에서 봉사활동을 갔다. 회사에서 이런 기회라도 없으면 봉사활동에 참가할 기회조차 없을 지 모르겠다. 봉사를 통해 사회에 무언가를 돌려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활동을 어디서 어떻게 하는 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렇다. 어디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 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어쩌다 생기면 참가할 수 있어 좋다. 봉사활동을 통해 누군가에게 뭔가를 베푼다는 생각으로 막상 떠나서는 항상 내가 무언가를 얻고 오는 기분이다. 아마도 내가 얻는 건 내가 무언가 베풀 수 있는 사람이라는 좋은 경험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김없이 앞으로 자주 봉사활동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런 기억을 잊은 채, 하루하루 바쁜 일상에 빠져든다.
우리는 지역아동센터라는 곳에 갔다. 저소득층 가정 자녀들을 위한 단체이고, 아이들은 방과후 시간을 이 곳에서 보낼 수 있다. 우리처럼 어쩌다 뜨네기처럼 들리는 사람들과 다르게 항상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그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마음 한 편에 자리 잡는다. 이 곳 아이들은 그런 봉사활동가에 의해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 곳에서 저녁식사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온 부모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을 생각해 본다. 또는 부모님이 돌아와 맞아줄 집으로 아이들은 기쁜 마음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머무는 그 곳은 말 그대로 아이들이 주로 머문다. 아이들이 모여 게임도 하고, 함께 수다도 떨며 늦은 하루를 지내는 이 곳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다.
내 자녀와 같은 또레의 아이들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 아이들이 하는 얘기들에 관심이 생기고 놀이에 관심이 생겼다. 하나, 둘 외치며 마지막에 번호를 외치는 친구가 벌칙을 받기도 하고,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게임 이야기로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했다. 어느 한 아이가 허풍을 피우면 너나 할 것 없이 허풍을 부풀리며 키득거리기도 했다. 아이들은 서로 그렇게 부대끼며 웃음 속에 하루를 보낸다. 그런 일상 속에 우리가 찾아간 것이다.
우리가 진행하는 봉사활동은 과학교실이다.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하나 하나 만들어 가다 보면 짠 하고 작품이 만들어 진다. 센서가 있고, 모터가 있고, 그렇게 움직이는 장난감 로봇이 만들어 진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본 경험은 말로 듣는 경험하고는 다르기에 아이들이 도와달라고 하기 전까지는 기다려준다. 앞에서 설명하는 선생님의 진도를 따라가고자 아이들은 장난도 수다도 없이 높은 집중력을 보여준다. 그렇게 다 만들어 갈 때 쯤 작동하지 않는 로봇도 발생한다. 아이의 표정이 급히 어두워진다. 그럴 때 짠하고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노력하다 보면, 내 등에도 땀이 나기도 한다. 어찌어찌 동작하기 시작하면 아이 얼굴에서 꽃이 핀다. 그 얼굴이 너무 예쁘다. 해맑게 웃는 모습은 정말 순수하기만 하다. 아이와 나의 상호작용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리라.
봉사활동이 갖는 의미를 종종 생각한다. 왜 사회 구성원은 알아서 자신들의 소유물을 재조정하여 두루 나누는 것일까? 한 번 나눠 본 사람들은 왜 꾸준히 나누는 걸 유지하는 것일까? 경쟁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뛰어난 사람이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 분위기에서 나눔은 어떤 의미로 볼 수 있을까? 항상 결론은 함께 사는 세상으로 모아진다. 혼자라는 고립감을 가장 쉽게 벗어나는 방법이 약간의 도움이 필요한 친구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라 생각된다. 건강한 공동체가 가진 이성이 지향하는 최고의 선은 아마도 모두가 함께 공동체를 가꾸는 것이리라. 극히 일부의 부자에게 전체의 부가 몰리거나, 부의 분배가 이뤄지지 않으면 공동체는 위험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사회, 공동체, 아이들, 함께하는 세상, 잠시나마 이런 소중함을 다시 상기시켜 보는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