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한파가 몰아치는 날이면, 부고 소식이 하나 둘 전해진다. 마치 저승사자가 차가운 한파를 몰고 오는 것 같은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 중병을 앓던 사람들도 이런 날이면 어김없이 세상을 등지곤 한다. 병실에서 의료진이 날씨와 상관없이 환자를 보살필텐데, 한파가 오는 날에는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저승사자의 이야기가 어쩌면 사실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며칠 전 딸아이의 친구 외할아버지 부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이 친구의 외할아버지는 상당히 중병을 앓고 계셨기 때문에 곧 돌아가실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어르신도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 날 돌아가셨다. 후에 그 날 갑자기 너무 많은 분들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 잡기도 어려웠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만난 아이 친구들 6명 가족이 아직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같은 유치원을 다녔고,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기 때문에 종종 술자리를 갖기도 하고, 일 년에 한 번은 함께 놀러 가기도 한다. 이웃사촌 중에서 상당히 가까운 이웃사촌이 된 사람들이다. 아이 친구 외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우리도 슬펐고, 아직은 어린 딸아이도 슬퍼했다. 한파와 함께 찾아온 죽음을 이웃사촌이 함께 애도했다.
내 딸에게 외할아버지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꼬꼬마 시절 외할아버지는 자주 집에 오셔서 딸을 돌봐 주었다. 아이 엄마가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하면 항상 장인어른이 와 주셨다. 양가의 어머니들은 병치레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를 무척 사랑해 주셨던 장인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한 걸음에 달려 오시곤 했다. 장인어른은 손주 어린이집 가는 길에 데려가고, 어린이집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데려오면서 함께 했다. 돌아오는 길에 오백원 동전에 움직이는 비행기도 태워주고, 꼬마의 수다에 함께 맞장구도 쳐 주고, 아이 옆에서 그림자처럼 아이를 돌봐 주셨고 사랑해 주셨다. 아이는 지금도 외할아버지를 무척 좋아한다. 외할아버지를 보러 가는 날이면 외할아버지 옆에 딱 붙어서 수다도 떨고, 외할아버지가 보는 티비를 자기가 보는 채널로 바꿔서 함께 티비를 보곤 한다. 그래서인지 친구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아이한테 큰 슬픔이었을 것이다. 아이도 부고 소식에 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었었다. 어쩌면 아이는 할아버지들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었다. 언젠가 부모님도 돌아가실 수 있고, 친구 아버지의 부고를 통해 아주 먼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 자체가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친구 부고 소식을 들었다. 암으로 인해 요절한 것이었다. 이 때는 며칠 멍한 상태로 보냈다. 내 친구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이젠 나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누구나 죽는다는 당연한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았지만, 부모님과 나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각성이었고 무거운 충격이었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을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죽음이 아닐까 싶다. 명성을 쫒든 부귀영화를 쫒든 결국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다는 내용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극히 조심해야 한다는 표현들이다. 플라톤이 얘기했던 철인정치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그가 쓴 명상록에는 깊은 철학들이 담겨있고, 그 이야기 중에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반복된다. 죽음은 개인이 가지는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도 종종 죽음을 생각한다. 내가 늙어 죽는다고 가정하면, 언젠가 움직이기 힘들만큼 늙을 것이고, 또 언젠가는 회사를 그만 다니게 될 것이고, 또 언젠가 아이는 성인이 되어 내 품을 떠나게 될 것이다. 운동을 게을리하면 쉽게 병들 것이고,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으면 마음이 병들 것이다. 내가 했던 일들은 기억이 안 날 만큼 지난 일이 될 것이다. 지난 많은 것들이 기억나지 않을 것이고, 기억하려 해도 기억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어떤 것이 최고의 선이 되고 그것을 추구할 것인가? 이런 질문이 가능해지고, 개인 철학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래서 난 한 가지를 결정했다. 나이들면 하려고 했던 글쓰기를 지금 틈틈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소하게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