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아플 때가 있다. 운동을 꾸준히 할 때는 걸리지 않는 감기가 운동을 게을리 하며 걸리곤 한다. 겨울 초입에 감기가 걸린 걸 보니 올 해는 어지감히 체력이 떨어졌나보다. 회사에 들어간 이 후로는 아무도 내 건강을 챙기지 않는다. 학교 다닐 때는 체육시간이라도 있었는데, 이젠 내 스스로 하지 않으면 운동은 못 하게 된다. 처음부터 강한 체력이 아니었기에 틈틈히 하는 운동으로 건강을 챙겨야 했다. 어릴 때도 건강한 체력은 아니었기에 가끔 열이 나고 감기에 걸리곤 했다.
꼬마 때 열이 나고 감기에 걸리면, 퇴근하고 돌아 오는 엄마를 마냥 기다렸다. 전화도 흔하지 않았고 꼬마였기에 전화해서 엄마를 찾지 못했다. 누나는 열나는 내 이마를 만져보고는 수건에 물을 적셔 이마에 올려 주었다. 그게 우리가 아는 최대한의 응급조치였다.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엄마를 기다려 엄마 손이 이마에 닿으면 머리가 시원해졌고, 열을 모두 가져가는 것 같았다. 이제 곧 나을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힘이 빠진 나는 엄마한테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했다.
"엄마, 나 아이스크림 사줘?"
군것질 꺼리는 왠만해서는 사주지 않는 엄마도 이 때만큼은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약국에 가서 약하고 아이스크림 사 올 테니까 아들 좀만 참아?"
병원보다는 약국이 가깝던 시대였다. 약국에서 증상을 설명하면 약을 지어주었다. 병원에 가서 처방전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엄마가 사다 준 약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신기하게도 덜 아팠다. 약 때문이 아니라 아이스크림 때문에 나은 거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아픈 날은 온전히 엄마는 내 옆에 붙어 있었다. 아이스크림과 엄마의 체온으로 하루 지나면 확실히 좋아졌던거 같다. 아플 때 나를 돌봐 준 엄마의 손길은 무척 따뜻했고 잊을 수 없다. 내 아이도 아이 엄마가 옆에서 돌봐주는 기억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가족애는 더 깊어졌던 거 같다.
아이 잘 때 같이 누으면 아이가 옆에 와서 나를 꼬옥 안아준다. 아이도 아픈 아빠를 위해 체온을 나눠준다. 그 체온이 새삼 더 따뜻하다. 아내는 가장이 아프다고 이거저거 먹을 거를 계속 가져다 주고 나는 그저 가만히 있으면서 받아 먹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느낌이 든다.
몸이 부실해져 감기가 쉽게 들아왔나보다. 올 해는 다른 해보다 무척 바빴고, 더 많이 피곤했고,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운동할 시간도 없었고, 가족을 세심히 보살피지도 못했다. 그리고 바쁜 일이 마무리 되자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감기에 침대에 쓰러져 버렸다. 자도 자도 졸음이 왔고, 몸이 쉽게 게운해지지 않았다. 몸은 정말 정직한 거 같다. 내가 내 몸을 마구 사용하면 항상 탈이난다. 그리고 몸은 위험 신호를 계속 보낸다. 그 신호를 받으면 가장 좋은 처방은 일단 몸을 쉬어주는 것일텐데 그게 어디 맘처럼 쉬운가?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결국 앓아눕게 되는거 같다. 올 해는 그나마 잘 버텨 준 것이라 생각도 든다. 그 만큼 힘들었다. 간혹 잠을 이루지 못 해 하루를 꼴딱 세우기도 했고, 매 순간 초조한 마음으로 견디어냈다. 일은 끝없이 밀려왔고, 쉬지 않고 일해도 턱 밑에 차서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을 견뎌야 했던 건 가장의 의무라 생각된다. 올 해가 부장 진급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고, 진급을 해야 회사를 더 오래 다닐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가장으로써 큰 위기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일 년을 보낸 것이다. 이제 결과를 기다려야 할 때이다. 긴장이 풀리니 몸이 그 동안 참아왔던 고통을 한 번에 쏟아내는 듯하다. 최근에는 아이보다 먼저 잠이 들었고 잠도 많이 잤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은 새삼스러울 정도로 맞는 말 같다. 잠은 평안함 속에 몸 상태를 정상화시키는 시간인 듯, 몸을 하나하나 스스로 고쳐 나가는 듯 했다. 고뿔에 걸린 건 급격히 추워진 날 옷을 얇게 입고 나가 떨었더니 바로 걸렸다. 어쩌면 고뿔이라도 걸려서 더 쉬게 만들려는 건 아니었는 지 모르겠다. 최근 며칠은 침대에, 쇼파에 묻혀 시간을 보냈다. 지금 감기는 쌓여 있던 피로가 모두 풀려야 나을 듯이 나는 잠만 주구장창 잤다. 몸이 병으로 신호를 보낸 것 같다.
'이제 좀 쉬라고! 제발!'
아픔이 오면 비로소 나는 내 몸과 대화를 한다. 건강한 상태일 때 당연히 아무 신경쓰이지 않던 몸의 모든 부분들이 나에게 대화를 걸어온다. 이번에는 꼬가 계속 말을 걸어온다. 코는 계속 간질거린다. 하루종일 코의 간질거림을 신경쓰는 일은 무척 드문 일이다. 콧물이 물처럼 흘러 내리기도 하고, 간지러워 기침울 하기도 한다. 수영할 때 코로 물이 들어간 것처럼 코가 쓰리기도 하고 킁킁 대기도 하며, 코를 모아 목 뒤로 넘기기도 한다. 틈나는 대로 코를 풀면 어느새 코는 헐어있기도 하다. 코에 신경을 집중해 본다. 따가운 느낌이 든다. 숨을 들이쉴 때보다 숨을 내 쉴 때 습하고 따뜻한 공기가 코를 스치며 통증이 느껴졌다. 코는 하루종일 아픈 상태였는데, 신경써주지 못하고 있었나보다. 따뜻한 차를 담은 컵에 입을 대고 코까지 깊숙히 붙여 숨을 쉬자 코 통증이 덜해졌다. 코가 덜 아파지니 한결 편해진다. 목의 통증도 느껴본다. 가래가 목에 잔뜩 메달려 있는 듯 하다.
'음... 음...'
가래를 떨어트리려 목에 진동을 만들어도 떨어지지 않는다. 침을 삼킬 때도 목에서 뭔가 걸리는 듯한 느깜도 있다. 따뜻한 물을 많이 마셔줘야겠다. 그렇게 아픈 부위를 하나씩 느껴본다. 몸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아일텐데, 뭔가 하고 싶은 욕심에 빠지면 몸을 돌보지 않으니 문제이다. 중간 중간 몸과의 대화를 늘리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