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호텔 안 라운지에서 공짜 술을 홀짝거리며 마시고 있었다. 아내는 휴대폰에 빠져있고, 딸 아이는 태블릿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한 가족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각자의 모바일 기계에 빠져 있었다.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풍경이 지독히 고독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때 한 아기가 아장아장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딸 아이가 보는 태블릿으로 걸어와 손을 뻗는다. 만지고 싶은지 손을 가까이 대려고 했다. 아기 아빠는 아기 뒤에서 아기를 말린다. 아기 아빠는 우리 가족에게 방해가 될까봐 아기가 우리쪽으로 오지 못하게 막았다. 하지만 아기는 아빠의 손을 뿌리치려고 아등바등 하면서도 자리에 서서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내가 아기 아빠한테 굳이 아기를 데려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자, 아기 아빠는 웃으며 한 발 뒤에서 아기를 바라본다.
"아기가 너무 예쁘네."
아내도 딸도 아기 행동 하나하나 관심을 가진다. 아기는 딸아이 옆으로 더 다가와 붙는다. 태블릿을 보고있던 딸은 태블릿에서 뽀로로를 틀어주었다. 태블릿에 뽀로로 노래가 나오자 아기는 춤을 췄다. 춤을 추다 우리를 한 번 보고는 아기 아빠한테 안긴다. 한 없이 귀엽고 예쁘다. 그 아이를 보면서 내 딸 아기 때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내 아이 나이에 따라 여행이 조금씩 달라졌다.
여행이 크게 바뀐 건 딸이 태어나면서부터이다. 여행의 방법을 바꿔야 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던 여행은 불가능했으며, 아기가 잠을 잘 때 즈음엔 숙소에 들어와야 했다. 자연스럽게 저녁을 먹고나면 숙소로 돌아와서 하루를 마무리 했다. 아기와 함께 잠들기도 하고, 아기가 잠든 후 잠시 휴식을 취하다 잠들기도 했다. 점점 잠자는 시간이 빨라졌고 익숙해졌다. 밤거리와 야경은 여행에서 제외되어야 했다. 아기가 태어나 아장아장 걸을 때까지 제대로 여행을 떠나지 못 했으며, 어렵게 떠난 여행에서는 아기의 상태가 아기 엄마의 상태를 좌지우지 했다. 나의 여행은 거기에 더 이상 없었다. 나는 가끔 보호자로 여행을 동반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기가 자라 꼬마가 되었을 때 드디어 해외여행을 떠났다.
회사에서 일이 생겨서 휴가를 바꿔야 할 지 고민되었다. 아내는 몇 달 동안 기대에 부풀어 있었고, 나는 가족을 선택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내 가족은 푸켓으로 여행을 떠났다. 리조트 안 풀장에서 1미터가 안 되는 낮은 풀에서 꼬마와 함께 수영을 했다. 무릎이 자주 바닥에 닿았지만 내가 꼬마랑 놀 수 있는 수영장은 그 곳이었다. 옆 풀장에서 큰 아이들이 물 속에 뛰어 들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부럽기만 했다. 풀장에서 더위를 식히고 나면 꼬마와 모래놀이를 하러 갔다. 하루종일 풀장과 모래놀이를 반복했다. 틈틈이 아내가 아이를 볼 때 잠시 책을 읽었고, 맥주를 마실 수 있었으며, 아이가 낮잠을 잘 때 나도 낮잠을 자기도 했다. 리조트 밖에 한 걸음도 나가지 않기도 했다. 점심은 풀바에서 시켜 먹었고, 저녁은 리조트 내 식당에서 먹었으며, 아침은 리조트 조식을 먹었다. 외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꼬마는 숨막히는 더위와 낯선 환경과 냄새에 울어대기 시작했고, 울어대는 아이를 안고서 한참을 걷고나서 난 알게됐다. 리조트 안 물놀이, 모래놀이가 현명한 놀이이고, 가족 모두에게 즐거운 휴가 방법이라는 것을. 그렇게 아이는 자라서 이제 어른 풀장에서 놀 나이가 되었다. 함께 스노쿨링도 하고, 쇼핑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가족 앞에서 뽀로로 노래에 춤을 추는 아기를 보면서 우리는 즐거웠다. 그 뒤에서 아기를 한 없이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기 아빠가 있다. 아마도 아기 아빠도 하루종일 꼬마 용 풀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모래놀이를 반복했을 것이다. 자신의 여행을 아기한테 맞추면서 가족여행을 완성하게 되었을 것이다. 가족 여행은 그런 것 같다. 서로가 눈높이를 낮추며 서로를 맞추는 것이고, 아침에 눈 뜨면서 잠들 때까지 하루종일 함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더 크면 아마 또 여행의 방법이 바뀔 것이다. 가족에 맞추고 함께하는 여행, 이것이 지금 내 여행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