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503. 정의론, 롤스
정의란 무엇인가?
조국 교수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기까지 가장 큰 이슈는 공정함이었다. 그의 자녀가 특별한 혜택을 통해 대학에 진학하게 된 것처럼 언론은 몰고 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사람들의 분노는 상당히 직관적이었다. 대학교수의 자녀이기 때문에, 상당한 자산가이기 때문에 그의 자녀는 더 혜택을 봤다고 생각했다. 검찰과 언론이 보여준 조국 교수에 대한 공격은 편향적이었지만, 우리는 이를 계기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무엇인지 논의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어느날 아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국은 안 될 것 같아. 엄마들이 화났어."
앞뒤없이 엄마들이 화나서 장관임명이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였다.
"지금 검찰은 광장히 편향적이야."
나는 조국을 공격하는 검찰의 편향성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아니야, 정의롭지 못해서 엄마들이 화났다니깐."
"검찰은 검찰개혁을 하려는 조국을 막으려는 의도 같아."
이렇게 대화를 이어가면서 우리는 서로 각자의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정의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고, 다시 롤스의 정의론을 읽었다.
우리 사회가 높은 민주주의 의식을 갖게 된 것은 지난 시간 쌓아온 민주화 운동과 2000년 이후 새롭게 변화된 시민운동 방식 때문일 것이다. 그런 경험은 박근혜 탄핵이라는 성과를 낳으면서, 시민으로써 높은 수준을 만들어 나갔다. 그 동안 보수 자유주의자들은 정치무관심을 이끌기 위해 무단히 노력해 왔다. 이 무관심이야말로 자유주의 정권을 유지하는 기본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촛불집회들을 통해 시민들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제 정치인들은 시민들의 요구에 더 깊이 귀를 기울여야 했다. 이런 수준에서 머물던 우리에게 조국 장관임명은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정의로운 사회가 그것이다.
정의가 무엇일까를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있을까?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정의를 논의해야 하는 질적인 성장을 했다. 이 사실이 나는 너무나 감사하다.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그 대답은 쉽다. 불평등에서 시작하면 한다.
'최초의 불평등은 무엇일까?'
부유한 부모와 가난한 부모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일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많은 것을 갖게 되고, 어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극심한 빈곤이 기다릴 수 있다. 이 것은 정의로운 것일까?
다른 하나는 개인의 능력 차이이다. 특별히 뛰어나거나, 그렇지 않은 것은 정의로운 것일까?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가정환경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거나 그렇지 못한다면 어떨까? 이 질문이 조국 교수한테 해당되는 내용이었다. 우리 언론이 이런 점을 지적해 낼 만큼 철학적이고, 사회 정의에 애를 쓰고 있었다면 언론은 두고두고 칭찬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수준을 생각한다면 정치적 공격일 뿐이었다. 그래서 언론의 선동이 맞다. 하지만 뒤로 넘어져서 금을 발견하듯 우리 시민에게 거대한 화두를 던져주었다. 난 사실 조국 사건에서 검찰개혁만큼 이 부분에 대해서도 큰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사회 곳곳에서 정의의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점진적으로 정의의 개념을 토론할 것이다.
다시 위 상황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정의는 무엇일까? 지극히 운 좋은 사람과 지극히 운 나쁜 사람들에게 평등한 분배를 통해, 모두에게 이로움을 찾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모든 사람에게 투표권은 하나이듯이, 그런 공정함을 만드는 것이다. 돈 많다고, 사회 지위가 높다고 투표권을 100개씩 주지 않는 것처럼...
이를 넘어 더 많은 고려사항들이 있을 것이다. 아빠가 부자인 것은 높은 상속세로 완화시키면 된다고 치면 개인의 능력은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이 부분은 다른 사람들하고도 많이 토론해 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글을 남기도록 하겠다.
벤담의 공리주의, 절대다수의 절대행복. 이 논리의 약점인 소수의 희생. 이 소수의 희생도 없어야 하는 정의론. 우리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