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505.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엄마를 생각하며...
아버지와 엄마가 서울로 올라와 둘째네 집을 찾아가던 도중이었다. 아버지가 전철을 타고 뒤돌아보니 엄마가 없었고, 온 가족이 엄마를 찾기 위해 나서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엄마에 대한 기억을 찾기 시작한 이야기. 이야기를 쫒아가다보니 나도 엄마를 떠올린다.
결혼하기 전 가끔 엄마와 밤 늦게까지 얘기를 하곤 했다. 엄마와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엄마가 기억하는 것들과 내가 기억하는 것들은 서로 달랐다. 나는 엄마를, 엄마는 나를 기억했다. 하지만 엄마의 이야기 보따리가 열리면, 나는 그 이야기에 쉽게 동화되었고, 내 이야기 보따리가 열리면, 엄마도 쉽게 동화되었다. 그래서 보따리가 열리는 날에는 엄마와 밤늦게까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지난 얘기를 할 때면, 가장 가족애가 클 때 생각이 났다. 그 때는 모두가 힘들어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갈 때 였다. 그 때를 생각하면 힘들었던 기억은 이미 희미해져 있고, 내가 기억하고자 했던 사랑했던 감정, 고마웠던 감정 같은 좋은 감정들만 되살아 났다.
"고등학교 다닐 때 엄마가 늦게 가져다 준 도시락이 가끔 생각나. 어쩌다 한 번 늦잠을 잤을 뿐인데, 엄마는 그렇게 미안해 했고 내가 학교로 출발 한 이후에 부랴부랴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가지고 왔었잖아. 뭐가 그렇게 미안했어? 엄마는 한 번도 게을렀던 적도 없었는데."
엄마는 늦게까지 일을 했고,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밤 늦도록 집안일을 했다. 다시 새벽같이 일어나서 아들 아침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해줬다. 그런데도 어쩌다 한 번 늦잠잔 것을 미안해 하셨다. 엄마는 학교까지 찾아와 나한테 도시락을 건네줄 때 미안하다고 하셨고, 밥 꼭 잘 챙겨 먹으라고 했었다. 난 그렇게 엄마를 기억했다.
"엄마는 그 때 네가 그렇게 힘이되고 고마웠어. 해 준 거라고는 밥 해준게 다인데, 너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하더라. 학원 보내줄 형편도 안 되는데, 네가 그렇게 열심히 해 주니 엄마가 얼마나 고맙고 또 고마웠는데. 밥을 못 해서 먹이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조차 안 한 거 같고 그래서 미안했지."
엄마는 나를 기억했다. 나는 엄마를 보면서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도 나를 보면서 그렇게 힘을 냈다고 서로를 기억했다. 엄마와 얘기하면 늘 비슷했다. 서로에 대한 기억이 과거의 한 장소와 시간에서 만나서 서로를 보듬어 감싸는 느낌이다. 그 느낌은 눈시울을 붉게 하기도 하지만 항상 따뜻함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 나도 아이가 있고, 그 아이가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이젠 엄마의 마음이 이해된다. 아이가 자주 배가 아프면, 내가 나의 나쁜 유전자를 물려줬구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말도 안되는 미안한 마음이다. 그래도 미안한 것이 부모의 마음인가보다. 이제 나는 내가 책임져야 할 가정이 생겼고, 엄마, 아빠를 가끔 손님처럼 찾아간다. 부모님과의 기억을 가끔 꺼내보며 그 기억을 이야기 삼으며 식사정도만 같이하는 상태가 되었다. 품 안에 자식일 때 이런저런 기억들이 쌓이지만, 부모 품을 떠난 이후엔 그런 일들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난 지금도 엄마를 애닲아 하는 지도 모르겠다. 지금 엄마를 생각해 보면 울 엄마는 말년 복이 꽤 괜찮은 편이다. 젊어 속석였지만 이제는 말 잘 듣는 남편 있고, 두 자식은 모두 결혼해서 무난하게 살고 있다. 가끔 생일날 자식들 불러 밥을 사주기도 한다. 아빠의 적당한 벌이로 금전적으로도 독립된 상황이며, 동네에는 마실 다니며 이야기할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난 아직도 애닲다. 모든 자식이 다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