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지아빠 Nov 15. 2020

01. 골프를 하고 있다는 건

골프에 대한 마음의 벽

 연말이 되면 조졸한 모임을 갖는 친구들이 있다. 올 해도 12월이 되기 전 약속을 일찍 잡아 만나게 됐다. 올 해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셋만 둘러 앉아 소주 잔을 기울였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한참동안 회사 이야기를 하고 정치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어느새 대화는 골프로 넘어갔다. 우리 중 A는 매년 골프를 칠까 말까 고민하고 있고, 매년 A를 설득하는 작업을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자세를 바로 잡고 그 친구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을 이어갔다.


 "마흔 넘으면 이제 할 수 있는 운동이 몇 개 없어. 골프를 치거나, 등산을 가거나, 수영을 하거나, 걷거나 살살 뛰거나 밖에 없지. 운동이 재미가 아니라 건강 때문에 하는거야. 그래서 그 중 가장 재미있는 골프를 하는거야. 너도 고민하지 말고 빨리 시작해."


 내 말이 끝나기를 기다린 듯, A도 안경을 고쳐 쓰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야야야, 우선 골프를 내가 안 쳐 본 게 아니야. 니들 골프채 잡아 보지도 못 했을 때부터 쳤었는데, 실력도 안 늘고 필드 갈 일도 없으니깐 안 치게 된거지. 그리고 내가 너처럼 회사를 한량으로 다니는 줄 알어. 피트니스 끊어 놓은 것도 요즘 잘 못 가서 어떤 운동을 해야하나 고민이 되는 상황이여."


 A의 말을 듣자마자 B가 나선다.


 "그니깐 재미있는 골프를 해야 한다니깐. 재미없으니깐 안 가지. 그리고 더 나이들기 전에 쳐야해. 하루라도 유연할 때 해야 허리라도 돌아가지."


 "골프가 운동이 되간디. 골프는 그냥 게임이지. 운동은 별로 안 되는 거 같드라. 난 안 할란다."


 A는 골프 하라는 얘기를 지칠만큼 들었는지, 하기 싫은 이유가 술술 입에서 나왔다. 한 참을 그 친구와 입씨름을 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골프는 역시 입문장벽이 상당히 높다. 어쩌면 그 벽을 넘기엔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나도 처음 골프를 시작하기까지 굉장히 큰 마음의 벽 있어 공감이 되기도 한다.

 A가 갖고 있는 벽은 생각보다 컸을 것이다. 주변에 골프연습장을 찾아야 할 것이고, 강습을 받아야 할 것이고, 골프 클럽도 사야할 것이고, 꾸준히 배우러 갈 자신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시간과 비용 모든 것이 만만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 갖고 있던 경험으로 골프는 재미 없었기에 더욱 골프를 다시 시작하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골프는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할 수 있는 운동인 듯 싶다. 우선 비교적 비용이 비싸게 든다. 골프연습장을 다녀야 하고, 강습비도 비교적 비싼 편이며, 골프 클럽도 구입해야 하고, 신발과 장갑도 사야한다. 게임을 하려면 필드에 나가야 하고, 필드 한 번 나가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그리고 게임을 같이 할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하다. 어쩌면 이 조건이 앞의 조건보다 더 어려운 것일 수 있다. 어렵게 골프연습장을 찾아가고, 혼자서 열심히 연습하더라도 동료가 없으면 금새 시들해 지는 사람을 여럿 봤다. 연습하는 것과 동료와 게임하는 두 가지가 적절히 갖춰지지 않으면 급격히 관심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연습만 하고 게임을 안 하면 재미가 없고, 게임만 하고 연습을 안 하면 불만이 쌓였던 것 같다. 연습과 게임이 조화를 이룰 때 실력도 늘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A는 예전에 골프를 배울 때 동료가 없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프가 재미있는 건 4센치의 요만한 공을 300미터 뒤에 있는 10센치의 요만한 홀컵에 4번에 쳐서 넣는 게임이기 때문이야. 그 만큼 어렵고 많은 연습이 필요하고, 그 날의 컨디션과 감정이 큰 영향을 미치는 아주 오묘한 운동이거든. 이 맛을 한 번 느끼면 골프채를 놓지 못하지."


나는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어 골프 공 크기를, 양손 엄지와 중지로 원을 만들어서 홀컵 크기를 보여줬다. 내 작은 실수 하나가 마음을 크게 흔들고, 실수를 연속해서 만들어 게임을 망치던 것들도 생각이 났다. 반대로 난 가만히 있는데, 상대방 멘탈이 무너져 쉽게 이기던 것도 생각났다.

 

 "내가 얘 밥을 얼마나 사주고 있는지 알아? 이길 듯 하다가 내가 실수해서 지고, 이길 듯 하다가 실수해서 지고, 그래서 계속 일요일 아침 7시에 스크린골프에서 만나서 한 게임 하게 된다니까. 너도 다시 연습 시작하고 일요일마다 우리랑 같이 치자. 정말 재밌어."


 B도 내가 한 말에 자신의 경험을 붙여가며 A에게 함께 하자고 권유했다. 친한 친구들이 자주 모일 수 있는 방법 중에 골프만한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B와 나는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주말에 긴 시간 밖에 있으면 아내 눈치가 보였고, 일요일 아침 일찍 시작하는 스크린골프장에서 종종 골프를 치곤 했다.


"골프의 가장 큰 단점이 뭔지 알아? 너무 재미있다는 거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보다는 즐거움을 찾는거지."


나는 흔들리는 A의 눈빛을 바라봤다.


"그 말이 맞네. 골프가 그 어떤 운동보다 재미있는거 같아. 내가 원하는 대로 공이 날아갈 때 느낌는 쾌감이 있어. 항상 원하는 곳으로 날아가면 어쩌면 재미없을 지도 모르겠는데, 주로 내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곳으로 가지는 않지. 그래서 공 하나에 집중하게 되고, 그래서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게 되지. 다음 게임을 기대하게 되고, 함께하는 사람 만나는 것을 기다리게 되고, 그 만남이 다시 좋은 관계로 만들어 가게 되지."


B도 내 말을 거들었다. B나 나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골프가 가진 매력은 비슷하게 느끼는 것이었다. 운동과 게임을 넘어 골프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끈 같은 역할을 했다. 마흔이 넘으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목마름을 골프를 통해 해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A도 우리의 계속된 설득에 점차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고 있을 것이다. 골프가 운동이었고, 관계를 이어주는 끈이었고, 즐거움을 주는 게임이었다는 것에 대해서 공감하는 것 같았다. 많은 주변 사람들이 권하는 운동이고, 그들이 말하는 공통점은 관계였고 그것을 거부할 이유는 굳이 많지 않았다.


 "주말에 어디 못 가. 나는 애 봐야해. 주중에는 아들 얼굴 못 보니, 주말에라도 많이 봐두고 놀아주고 해야지."


 A한테 가장 큰 벽은 시간이었다. 주중에 근무를 하고 집에 가면 아이는 잠들어 있고, 퇴근해서 집에 가면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잠든 아이를 보고 출근하고 퇴근해서 잠든 아이를 보는 것은 많은 아빠들의 일상이기도 했다. 그러니 주말 시간은 온전히 아이와 가족하고 함께 보내고 싶은 것 또한 어느 아빠나 이해하는 심정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말 아침 일찍 만나서, 게임하고 아침 같이 먹고 집에 가는 거잖아. 와이프 눈총을 어찌 감당하려고 주말 시간을 온전히 골프치는 데 보낼 수 있겠어. 아내와 아이가 충분히 자고 일어난 시간에 집에 들어가는 거지."


 B는 주말 아침 일찍 운동하는 것이 가정을 위해 가장 좋은 선택임을 경험으로 터득한 터였다.


"가정은 지켜야지. 그리고 나도 지켜야지. 아이와 열심히 놀아주기 위해서 나도 열심히 놀아야 놀아야 아이와 놀아 주는 시간이 더 풍부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싶어."


나는 소주 잔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소주 잔이 부딪히고 알콜은 입 속으로 들어갔다. 목넘김 후 남겨진 쓴 맛과 알콜 고유의 맛이 입 안에 퍼져갔다.


"나는 좀 더 아들을 챙기고 싶어. 같이 늦잠도 자고, 침대에서 같이 뒹굴기도 하고. 함께 일어나서 함께 아침도 먹고, 함께 놀이도 하고. 너희가 말하는 것들은 충분히 이해가 돼. 그래서 골프 얘기를 들을 때마다 고민하게 되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어찌 어찌 하다보면 예전하고 같은 생활이야. 굳이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고, 그냥 지금의 생활에서 만족을 찾을란다."


A가 아들하고 주말에 놀아줘야 한다는 말에 우리는 골프 얘기를 접고 아이들 얘기로 넘어갔다. 아무리 골프가 좋아도 어린 자식보다 좋을 수는 없으니 충분히 수긍이 됐다. A를 설득하기 위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내가 처음에 골프를 시작하게 된 것도 생각이 났고, 골프를 시작하고 연습할 때마다 일기 형식으로 글을 써 놓은 것도 생각이 났다. 모임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1년 넘게 써 놓았던 골프 일기를 보면서 기특하고 흐뭇한 웃음이 나왔다


 골프는 친구와 얘기했던 것처럼 처음 시작이 무척 어려운 운동인 것 같다. 나는 친구가 준 연습용 클럽이 있었고, 함께 골프를 칠 수 있는 많은 동료들이 있었고, 아파트 단지 내 골프연습장이 있어서 접근이 쉬웠다. 스크린골프가 붐을 이뤄 게임도 저렴하게 할 수 있었고, 심지어 여름엔 퇴근 후에도 갈 수 있는 골프장이 회사 근처에 있었다. 누구보다 골프를 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골프를 시작하니 알게 되었고, 즐기게 되었다.

그래서 골프를 시작하고 끊임없이 할 수 있었고, 지금도 무척 즐기는 운동이다. 난 골프를 시작할 때 책을 많이 읽었다. 그리고 골프를 시작할 때 읽기를 썼었고, 그 읽기를 보면서 기록을 좀 남겨보고 싶어졌다.

지금의 나와 그 때 내 모습(너)을 함께 글로 남겨 보면 어떨까 싶어 연말 휴가 어느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골프를 하고 있다는 건 골프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그것을 온전히 즐기고 있다는 증거이다. 가장 큰 편견은 많은 돈이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지어지는 아파트에는 골프연습장이 거의 있고, 실내 골프 연습장도 다른 운동에 비해 그렇게 비싸지 않은 편이다. 강습은 유투브에 수없이 많은 컨텐츠가 있다. 스크린골프는 오전 일찍 가면 더 저렴하게 즐길 수 있으며, 노캐디 필드를 가면 비교적 저렴하게 골프를 즐길 수도 있다. 모든 취미가 그렇듯이 얼마든지 저렴하게 할 수도 비싸게도 할 수 있다. 두 번째 편견은 내기나 하는 게임이라는 생각이다. 골프는 18홀 각각 점수를 합산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내기를 하기에 아주 좋은 특징을 가진 건 맞다. 하지만 이건 안 좋은 면만 봐서 그렇다. 골프는 게임이기 때문에 반드시 동료가 필요하고 그들이 끈끈한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이 훨씬 크다. 내기가 심해지는 것은 일부 사람들의 특징일 뿐이다.

   

골프를 하고 있다는 것은 이런 마음의 벽을 모두 넘었다는 것이다. 대부분 골퍼들이 골프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 재미있어서 그럴 것이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운동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하는 운동으로 취미로 골프는 아주 좋은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필드와 스크린골프 상관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