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끄기의 기술'을 읽고
어느날 상사가 나를 불렀다. 개발과제가 늦 어지게 된 일로 부르는 것이다. 상사 앞에 가기까지 이유를 머리 속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상사가 있는 집무실로 들어갔다.
"왜 개발 평가가 늦어지는 거지?"
못마땅한 표정과 쌀쌀맞은 톤으로 이야기를 꺼낸다. 한 두번 겪는 건 아니지만, 겪을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 함께 일한다는 느낌보다는 삐뚤어진 눈으로 남의 실수를 찾아다니는 것 같다.
"평가 시스템에 개발제품이 등록이 되지 않아서, 시스템 등록하는데 2주정도 늦어질 것 같습니다."
개발을 하다보면 항상 생기는 일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다 챙긴다고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항상 빵꾸가 나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다. 다만 상사는 그 윗 상사한테 말한 일정을 지키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도대체 일을 왜 그렇게 하지! 하나부터 열까지 챙겼어야 하는거 아닌가?"
표정은 더 일그러지고, 목소리 톤은 더 재수가 없어졌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사람에 대한 실망이 커진다. 저 사람은 나한테 신경을 끄고 있다. 난 함께 일하는 동료가 아니라 그냥 일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상사는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지 않았는가 질책을 호되게 한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완료될 수 있게 무슨일이라도 하라고 무자비한 언어적 폭력을 가한다. 난 초라한 약자가 된다. 그리고 끝없이 초라해졌다. 그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이내 두 눈의 초점이 어디인지 모르는 곳을 바라보며 멍때리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저 사람은 나한테 무슨 짓을 하는 것일까?'
나는 자리로 돌아온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한테 상사와 얘기한 내용을 공유한다. 그리고 이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신경끄고 압박을 가할 수 밖에 없음을 얘기한다. 여러 부서 각 담당자한테 연락을 한다. 최대한 빠르게 해 주지 않는다면, 당신 부서장을 포함해 압박 메일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협박과 회유를 통해 일정을 단축하게 된다.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 되어 갈 때 쯤, 나는 스스로한테 질문한다. 무엇이 이렇게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상사가 그 윗 상사한테 솔직하게 말하면 끝날 일이 아니었을까? 혹시 그 윗 상사가 화를 낼까봐 아니면 짜증낼까봐 그런 것일까? 상사가 화를 낼 지 짜증낼 지 신경쓰지 않았다면 문제 없지 않았을까? 생각을 멈추고 컴퓨터를 끄고 책상을 정리한 후 동료들과 함께 퇴근을 한다.
동료들과 퇴근하는 길에 술집에 들린다. 상사에 대해서 뒷담화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렇게 감정을 풀어내고 또 풀어낸다. 가슴속에 응어리 진 것들은 수다가 많아질수록 점점 작아진다. 그렇게 대동단결하여 상사를 뿔달리고 사악한 악마로 만들고, 나쁜 놈들 중에 아주 사악한 놈이라고 인민재판을 끝내고 나서야 술자리를 끝낸다. 집에 가는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대략 20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그 때 나는 회사생활을 선택했다. 백수로 산다든가, 사업을 하겠다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회사를 그만둘 수 있지만 그 선택은 하고 있지 않다. '왜 그만두지 않나요?'라고 묻는다면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를 가족부터 시작해서 몇 시간은 이야기 할 수 있다. 순수히 나 혼자서, 내가 결정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럼 누가 결정하나요?'라고 묻는다면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회사를 다니고 그만두는 것 자체를 내가 결정하지 않으면 누가 결정할 수 있을까? 아내가? 아이가? 엄마가? 아빠가? 친구가? 결국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난 회사다니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
선택에는 그에 따르는 고통들이 따라온다. 위에서 말한 상사로부터 깨지기도 하고, 동료와 다투기도 하고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다. 이 정도를 감수할 수 있기 때문에 선택은 유지되는 것 같다. 죽고 싶을 만큼 일이 하기 싫었다면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래서 백수로 생활하게 된다면, 나의 아내와 자녀는 남편과 아빠로써 자격을 논하며 나를 비난할 지도 모르며, 친구들과 관계도 멀어질 것이고, 지금보다 크게 부족함을 느끼며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선택이고, 그에 따르는 고통도 나의 것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견딜 수 있는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 고통에 대해 신경을 끄면 어떨까?
'내 삶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신경쓰지 않으려 한다.'
어느 순간에 고통이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이 오기까지 그것에 신경쓰지 않으려 한다. 구차하게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더이상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냥 난 지금을 선택한 것이고, 그에 따르는 고통을 감수할 뿐이다. 나도 아내도 아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타인의 입장도 굳이 크게 고려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신경끄고 살면 참 편할 것 같다. 그러면 삶이 가벼워질까?
'신경끄기의 기술'이란 책을 다 읽고 덮을 때, 잠시 혹해서 이야기에 빠졌다가 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이 어찌 그리 쉽게 변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나에게 더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 고통을 통해 타인을 괴롭히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 회사생활을 접고 다른 고통에 시달릴 준비가 되었는지?
결국 삶은 내가 누군인지 알아가는 아주 짧은 인생여행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