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사라지고 있다 — 창조의 잠재가 함께 희미해지는 밤
어렸을 때 나는 ‘어두움’이라는 걸 그냥 "빛이 없는 상태"로만 생각했다.
빛이 있어서 그림자가 생기고, 그 빛이 닿지 않는 곳을 우리는 ‘어둠’이라 부른다고 믿었다.
그때의 나는 아직 세상을 단순한 도식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수많은 밤을 견디고, 수많은 생각의 터널을 지나오며 알게 됐다.
"어둠이란 단순히 빛이 없는 게 아니다."
그건 오히려 빛을 탄생시키는, "존재의 모태" 같은 것이다.
우주의 첫 빛도 어둠 속에서 태어났다.
광자가 있었지만, 그들은 전자에 부딪혀 흩어지고 갇혀 있었다.
빛이 퍼질 수 없던 그 ‘암흑의 시기’를 지나, 우주는 서서히 식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전자와 전자가 멀어지며, 빛이 비로소 우주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보는 ‘최초의 빛’은 사실, "깊은 어둠의 자궁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생명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어둠 속에서 태어난다.
자궁이라는 세계는 완전한 암흑이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태초부터 "어둠의 기억"을 몸속에 지니고 사는 셈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빛에 취해 살고 있다.
아니, 빛에 ‘포획되어 있다’는 말이 더 맞겠다.
TV, 모니터, 휴대폰, 자동차 헤드라이트, 거리의 간판, 사무실의 형광등…
하루의 대부분을 인공적인 광원 아래서 살아간다.
빛이 실체를 만들어내는 동안, 우리는 그 실체에 매달리느라
"보이지 않는 세계— 잠재의 영역"을 잃어버리고 있다.
어둠은 상상력을 품는 공간이다.
눈을 감을 때 비로소 떠오르는 이미지들,
불을 끈 방 안에서만 들리는 내면의 목소리,
그건 모두 어둠이 우리 안에 심어둔 "창조의 씨앗"들이다.
옛 현인들이 동굴 속에서 명상하고, 눈을 감은 채 사유하고,
혹은 밤을 새워 글을 쓰거나 시를 읊던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들은 빛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게 아니라,
"어둠 속에서 자신을 되찾으려 했던 것"이다.
요즘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예전보다 훨씬 밝다.
도시의 불빛 때문만은 아니다.
지구 위를 돌고 있는 수많은 인공위성들이,
태양빛을 반사하며 미세한 반짝임을 흩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 현재, 지구 궤도를 도는 위성은 약 "1만5천 개"에 이른다.
이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 수만 개가 될지도 모른다.
천문학자들은 말한다.
위성의 반사광과 전자파가 밤하늘을 점점 희미하게 만들고 있다고.
그 어둠이 점점 사라지면, 우리는 별빛을 잃는 것만이 아니라
"우주의 기운", 그 미세한 진동까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밤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에서, 인간은 여전히 꿈을 꿀 수 있을까?
모든 것이 환하게 드러난 세상에서,
우리는 여전히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둠은 결핍이 아니다.
그건 "잠재"다.
그 안에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무수한 세계가 숨 쉬고 있다.
빛이 어둠을 지워버릴수록, 우리는 "상상할 공간"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 불을 끈다.
잠깐이라도 완전한 어둠을 경험하기 위해서.
그 속에서 들려오는 나의 목소리,
아직 형태를 갖지 못한 생각의 조각들을 만나기 위해서.
아마 그게— 창조적 뇌를 깨우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일지도 모른다.
"빛이 아니라, 어둠으로부터 시작하는 창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