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이들의 고독
후기 근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죽음이란 어떠한 의미인가? 후기 근대사회는 사람들이 죽음과 대면하는 일을 힘들게 만들었다. 그 결과 오늘날의 죽음은 체현(embodiment)의 근대적 양식으로 인한 실존적 문제에 입각한다.
몸과 자아정체성 그리고 죽음 간에는 어떠한 상호관계가 있을까? 첫째, 풍요로운 후기 근대사회는 몸을 개인의 자아정체성 실현의 일부로서 완성되어야 할 일종의 프로젝트로 간주한다. 이러한 몸 프로젝트는 전 근대사회에서 몸이 치장되고 각인되며 변화되었던 방식과는 다르다. 이는 보다 더 자아성찰적인 과정으로 인식된다. 이와 같은 몸 프로젝트는 후기 근대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이 의식적으로 몸을 관리하고 유지하며 관심을 쏟는 개인적인 자산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자아정체성에 관한 메시지를 투사하는 사회적 상징으로서 몸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둘째, 후기 근대사회는 몸이 갖는 전통의 획일성을 일축했다. 역사적으로 수 백 년간 종교는 전통적으로 개인이 개인을 초월한 의미 구조 안에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몸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자아정체성의 강력한 원천을 제공해왔다. 이는 종교가 죽음을 “훌륭한 죽음으로 개인이 자신의 몸과 자아정체성 및 사회적 세계를 끝까지 의미 있는 것으로 느끼는 죽음”을 맞이하는 허용적 상황과 환경을 마련했음을 의미한다(Berger, P. 1990(1967): 26, 32, 44).
후기 근대사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실존적 문제는 ‘실존적 모순’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근거를 보면 후기 근대성이란 죽음을 개인의 특별한 문제로 만드는 환경이란 점을 시사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근대인은 자신이 죽게 될 존재이며 죽음에 대항하고 있는 ‘실존적 모순’ 속에 살고 있음을 점점 더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Giddens, A. 1984, 1991). 그렇다면 몸 프로젝트로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전통 종교의 일소(一掃)로 정체성과 몸이 긴밀하게 연결된 후기 근대사회의 개인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후기 근대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은 가치의 축적을 우선시하는 삶을 목표로 설계한다. 이처럼 가치의 축적을 지향하는 세상에서 죽음은 가치의 종말을 의미하며, 여기서 말하는 죽음이란 자아의 궁극적 종말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후기 근대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은 몸을 사회적인 것으로 규정하면 할수록, 몸 프로젝트에 투자하면 할수록 몸의 종말, 즉 죽음을 인정하기란 더욱더 어려워진다. 그 결과 후기 근대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은 몸을 홀로 감당하고 직면하는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후기 근대사회의 죽음은 살아있는 몸과 죽어가는 몸 사이의 경계를 강화하고 몸의 개별화(body individualization)를 강조하며 조직된다. 이러한 몸의 개별화 과정은 자신의 몸으로부터 일단 만족감을 얻는다 해도 그중 많은 부분을 상실하게 만든다. 이처럼 후기 근대 사회는 다양한 삶의 선택사항들을 전략적으로 제시하고 조정함으로써 죽음을 멀리하려는 유예적 성향을 띤다. 이처럼 현대사회에서 죽음이 개별적 사유를 가진 개인적 사건으로 축소되는 현상은 몸이 개별화되고 합리화되며 죽음이 격리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음의 불가피성과 보편성을 인정하지 않고(Bauman, Z. 1992a: 20) 각각의 죽음에 특정한 의학적 설명을 부여하려 하므로, 설명되지 않은 죽음은 현대인의 감성에 파문을 일으키는 일이 된다. 후기 근대사회의 근대성이 죽음을 철저히 부자연스러운 사건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죽어가는 자들이 응당 고독해질 수밖에 없는 후기 근대사회는 역사와 사회 속에서 발견된 근대의 산물이다. 죽음에 직면한 몸을 개인에게만 떠맡기는 근대의 태도는 죽음의 의미가 사회적인 몸으로부터 개인적인 몸으로 전이된 것을 반영한다. 후기 근대사회를 살아가는 체현된 개인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와 같은 어려운 과업을 마주하고 있다.
참고문헌
Shilling, C. (2011). 몸의 사회학(임인숙 역). 경기: 나남. (원서 출판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