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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육로 국경이 필요해

기차와 버스로 가는 해외여행

by 다다

대한민국의 경계를 넘은 것은 2005년이 처음이었다. 대학교 새내기였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그로부터 4년 뒤 일본 여행이었는데 2005년의 이 여행에서 나는 여권도 없이 대한민국의 국경을 넘었다. 해외여행이라고 하기엔 다소 모호한, 그러나 엄격한 절차를 거쳐 경계를 넘었다. 2005년, 뜨거웠던 7월, 금강산.


2005년에도 남북관계는 아슬아슬했지만 그 이후의 정권이 집권했던 10년간을 돌이켜본다면 꽤 유연했다. ‘제2차 남북대학생 상봉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남과 북의 대학생들이 만나는 행사가 금강산에서 개최되었다. 선배들의 추천으로 나도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K대학에서 남북대학생 상봉모임에 참가하는 전국의 대학생들이 모였다. 주최 측에서 맞춘 하늘색 단체티를 받아서 입고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안전에 대한 책임은 모두 본인이 진다는 서약서였다. 금강산에 가려면 반드시 동의해야 했기에 서명하긴 했지만 이제 막 어른이 된 나에게 그 책임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 약간 망설였다.


대형버스를 타고 우리가 처음 들른 곳은 금강산콘도였다. 점심을 먹고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곳에서 전망을 즐겼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대한민국인지 바다를 봐서는 알 수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는 분명 존재하겠지만 철조망이 바다를 비껴나간 것 같아 다행이었다. 바다마저 철조망으로 갈려있다면 얼마나 볼품없을까. 다시 버스에 탔다. 우리 버스에 배치된 가이드는 안전과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신분증으로 사용될 관광증과 세관신고서도 주었다. 내 사진이 붙여진 관광증이 들어있는 목걸이를 받아 목에 걸었다. 잃어버리면 달러로 벌금을 내야 한다고, 가이드는 관광증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통신장비를 갖고 가는 것도 엄격하게 금지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휴대전화를 모두 수거해갔다. 남자 친구에게 며칠간 연락이 안될거라는 메시지를 급하게 남기고 답장도 받지 못한 채 비닐봉투에 내 휴대전화를 넣었다. 지켜야 할 것은 이것 말고도 많았다.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동안 사진 촬영도 금지되었다. 사진은 허가된 곳에서만 촬영할 수 있었다. 현지인이나 군인에게 말을 걸어서도 안된다. 까다로운 규칙에 내가 가는 곳이 예사롭지 않은 곳이라는 걸 새삼 실감했다.


버스가 북쪽으로 달리다 멈추다를 반복했다. 북측의 보안검색이 시작되었다. 보안검색은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혹시 보안검색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내 안전은 내가 책임진다고 각서도 쓰고 왔는데. 그때 보안검색을 하던 군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에게 웃으며 잘 왔다며,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봤다. 가이드는 절대로 군인이나 일반 시민들에게 먼저 말을 걸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는데 대답이 망설여졌다. 군인이 먼저 말을 걸었으니까 대답 정도는 괜찮겠지, 어색하게 웃으며 제주도가 고향이라고 하니 군인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나에게 멀리서 왔다며 반갑다고 말했고, 나도 똑같이 ‘반갑습니다.’라고 말했다. 괜히 쫄았나보다. 그렇게 나는 남과 북의 경계를 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수십 번 국경을 넘었다. 일본의 국경은 배를 타고 넘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국경은 걸어서 넘었다. 사이공의 여행자 거리에서 출발한 버스를 타고 국경에 내려서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출입국사무소를 거치면 끝이다. 단 몇 발자국 걸었을 뿐인데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베트남에서 보지 못했던 탁발승들이 국경 주변의 가게와 환전소를 돌며 시주를 받고 있었다. 통화는 물론 언어도 달라졌다. 국가가 각자의 경계 안에서 어떻게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베트남과 라오스, 인도와 네팔도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국경은 기차 안에서 넘었다. 기차에 타고 있으면 러시아 국경에서 한번, 카자흐스탄 국경에서 한번 총을 찬 직원들이 올라타서 여권과 짐을 꼼꼼히 검사한다. 다소 엄했지만 별 탈 없이 도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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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라오스 국경으로 걸어가는 여행자들. / 우. 라오스 국경


압권은 유럽의 국경이다. EU라는 보이지 않는 결속 안에서 통행이 자유로웠다. 어디든 첫 번째 EU 국가에서 출입국심사를 통과하면 비행기를 타든 기차를 타든 버스를 타든 아무런 검사 없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국경이 유연하다 못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구글 지도를 켜고 내 위치를 계속 확인하지 않으면 어디가 국경인지, 지금 내가 프랑스에 있는지 독일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강력한 국경을 가진 나라에서 태어난 나에게는 여러 번 경험해도 생소한 일이었다. 국경을 인지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제껏 내가 넘었던 수많은 국경들이 떠올랐다. 아침을 독일에서 먹고, 점심을 프랑스에서 먹고, 저녁을 스위스에서 먹는 것이 EU의 시민들에게는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반도 국가로 대륙과 해양으로 진출하는데 유리하다고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분명히 배웠는데 국경을 넘을 때마다 섬나라 같은 것 왜일까. 한국은 배나 비행기가 아니고서는 드나들 수 없는 분단국가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북한은 선택지가 하나 더 있는 셈이다. 러시아나 중국의 육로를 통해 드나들 수 있으니. 국경을 넘을 때마다 찍어주는 여권 스탬프를 보면 어떤 경로로 국경을 넘었는지 알 수 있다. 베트남에서 캄보디아 국경을 넘었을 때 스탬프에는 버스가 찍혀있었다. 기차 안에서 출입국심사를 받았을 때 직원들은 기차가 그려진 스탬프를 찍어주었다. 공항을 통해 입국을 하게 되면 비행기가 찍혀있다. 한국사람들은 한국을 떠난 첫 번째 목적지에서 기차나 버스가 그려진 스탬프를 받을 일이 없다.


몇 해 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며 생각했다. 어릴 적, 아빠는 분명 내가 커서 여행을 다닐 즈음에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을 거쳐 블라디보스톡과 모스크바를 지나 유럽여행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는데 아빠의 예언은 지금까지도 현실이 되지 못했다.


비싼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다른 나라를 여행할 수 있는 것이 누구에게나 주어진 특권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EU의 청년들이 엄청 부럽다. 유럽 각지를 연결하는 수많은 버스와 기차, 그리고 도로가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통해 다른 문화와 만나고 더 넓은 세계를 조우하는 일이 쉽게 가능한 곳이라니. 남과 북의 경계가 유연해진다면 우리도 유라시아 대륙을 누빌 수 있을 텐데. 우리에게도 언젠가 육로로 국경을 넘는 날이 올까? 한국에 국제버스터미널이나 국제역이 생길 즈음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만약 경계가 유연해진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잠재적인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고 평화로워진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여러 나라를 왕래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해묵은 이념논쟁으로 선거가 좌지우지되거나 희생당하는 개인도 없어질 것이다. 긴장과 갈등으로 전쟁이 일어나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북한과의 축구경기 상황을 문자로 전송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여행. 유럽이나 미국, 동남아시아의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무수히 많은 유라시아의 도시들이 여행의 선택지로 다가올 것이다.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남과 북의 경계는 국경 그 이상의 의미다. 조금 더 평화를 염원하며 살아야겠다. 살아생전에 한 번쯤은 육로로 한국의 국경을 넘어봐야겠기에.





*덧붙이는 말 : 남과 북은 엄연히 다른 국가로 존재하지만 군사분계선의 경우 국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출입경으로 인정한다. 복잡한 분단국가의 상황이 반영된 단어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는 남북기본합의서에서는 출입의 절차가 민족 내부거래에 해당하기 때문에 출입‘국’ 과정을 출입‘경’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홍콩과 마카오, 중국처럼 다른 정부를 가지고 있지만 한 국가인 경우에도 서로 간의 경계를 국경이 아닌 출입경으로 한다. 출입경은 국경보다 다소 유연한 개념인 것처럼 들리는데 남과 북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사람들이 출입경을 넘는 일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시도조차 되지 않는다. 분단 시기 독일에서는 목숨을 걸고서라고 베를린 장벽을 넘어서는 사람들이 있었다는데 남북의 경계는 그보다도 높고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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