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뉴 Sep 21. 2020

송별회 대신, 장행회

아낌없이 아쉬워하고, 아낌없이 축하하기

송별회 대신, 장행회

송별회: 떠나는 사람을 이별하여 보내면서, 섭섭함을 달래고 앞날의 행운을 바라는 뜻으로 베푸는 모임.

장행회: 장한 뜻을 품고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앞날을 축복하고 송별하기 위한 모임.


7개월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함께 일했던 선배가 회사를 떠났다. 일을 통해서 자아실현하겠다는 생각은 말아야 할까 봐요,라고 했을 때, 자기는 그래도 일을 통해 자아실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던, 아니, 믿고 싶다던 선배의 결정이었다. 갑작스러운 조직개편으로 화기애애했던 팀이 순식간에 해체되고,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생각지 않던 업무를 맡게 되는 이 상황이 가장 당혹스러웠을 선배다. 큰 결심을 하고 이곳으로 이직해온지 5개월 만에 팀이 해체될 줄 누가 알았으랴. 그녀가 이직 소식을 전했을 때 팀원 모두가 섭섭해하기보다는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었던 건, 이런 그녀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당사자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선배의 퇴사 전날 밤, 송별회가 아닌 장행회를 했다. '장행회', 이제까지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는데 그 뜻이 참 좋았다. 떠나는 사람과의 이별보다는 떠나는 사람의 앞날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아서. 우리만의 아지트로 정했던 회사 근처 술집에서 아쉬움보다는 축하로 가득했던 장행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내일 떠날 선배에게 건넬 짤막한 편지를 쓰려고 펜을 들었다.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까 고민을 하는데, 짧은 7개월 동안 알게 모르게 소소한 추억을 쌓으며 정이 들어버렸구나, 생각했다.


내 옆자리에 앉게 된 선배에게 어색한 인사를 건넸던 첫 만남, 낯선 도시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선배와의 첫 출장, 진 빠지는 회의를 마치고 남은 시간에 수다를 떨곤 했던 회의실과,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으며 나눴던 시시콜콜한 대화들, 회사생활로 지칠 때마다 웃음을 주었던 채팅창까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많은 의지가 되었고 사적인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동시에, 한 번도 회사 근처 밖에서 만나본 적 없고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은 적도 없는, 친구라고 하기엔 멀고 회사 동료라고 하기엔 가까운 선배였다. 편지를 다 쓰고 침대에 누웠는데 늦은 오후에 마신 커피 때문인지 잠은 오지 않고, 자꾸만 내일이면 맞이할 선배와의 이별을 떠올리게 되고, 이내 또르륵 흘러내린 눈물이 베갯잇을 적셔 당황스러웠다. 내가 회사 사람과의 이별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나?




내가 경험한 첫 이별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같은 반 남학생이 전학 가는 날, 울음이 멈추지 않아 모두가 하교하고 텅 빈 교실에서 남은 눈물을 쏟아냈었다. 아마, 매일 보던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아서였을 거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과 자연스레 멀어지는 이별이 반복되었고, 초2 때 순수하게 느꼈던 이별의 아픔은 온데간데없이 무덤덤하게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회사 사람과의 이별은 2-3개월짜리 인턴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깊지 않은 관계였기 때문에, 이번에 다가오는 이별도 그렇게 무던히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2-3년 일한 것도 아니고 7개월을 함께한 것뿐인데 뭘, 그렇게 생각했던 회사 동료와의 이별은 생각보다 슬프고 아쉬웠다.


더 슬펐던 건, 퇴사자에게는 입사일만큼이나 특별한 이 날이 남들에게는 수많은 날들과 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루라는 것이었다. 선배의 퇴사일이 마치 내 퇴사일인 것처럼 종일 싱숭생숭해하던 나와 달리 짧은 인사를 건네고는 흔들림 없이 일하는 사람들을 보며 오히려 내가 서운함을 느꼈달까. 오래도록 동료의 퇴사를 아낌없이 아쉬워하고, 이직과 새 출발을 아낌없이 축하해줄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