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이면 돈 생각하지 않고 여행할 수 있을까?
새벽같이 일어나 관광객 하나 없는 쓸쓸한 퓌센을 떠나왔다.
퓌센에서 스위스 인터라켄까지 약 8시간 동안 3번 기차 환승을 해야 하는 강행군의 시작.
그런데 바셀에서 인터라켄까지 가는 기차가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무려 5번이나 기차 환승을 하고 9시간 만에 숙소가 있는 빌더스빌에 도착했다.
돈을 더 썼으면 이보다는 편하게 올 수 있었겠으나, 돈을 조금이라도 더 아끼고자 선택한 힘든 경로였다. 대신 저녁은 비싸더라도 괜찮은 음식점에서 따뜻하고 든든하게 먹기로 했다.
엄마가 악명 높은 스위스 물가에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한국에서부터 그 극악함에 대해 언급해왔고, 숙소를 나서기 전에 우리가 가려는 음식점의 대략적인 가격대도 미리 알려드렸건만, 식당 앞에서 메뉴판을 본 엄마는 역시나 높은 가격을 탐탁지 않아했다. 어찌어찌 식당 안까지는 들어갔는데 얼마 안 남은 자리를 보더니 자리를 핑계로 먼저 음식점 밖에 나가버린 엄마.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서운하고 허무했다. 나는 기차 안에서 창밖 풍경을 포기해가며 찾은 음식점인데, 스위스 물가가 비싸다고 한들 앞으로 며칠 머무를 이곳에서 매끼 대충 때울 수도 없는 건데, 게다가 여기 숙소는 취사도 못하는데, 숙소 근처에 있는 식당도 아니고 버스 타고 시내까지 나왔는데, 여행와서 한번쯤은 비싼 거 먹으면 안되나, 특히 오늘처럼 고생한 날에는, 이런 생각들.
결국 다시 숙소로 돌아와 컵라면을 꺼냈다.
이렇게나 많이 고생한 날에, 한국의 매운맛이 당겨서가 아니라 돈 아끼려고 컵라면을 먹는 스스로가 처량하게, 구질구질하게 느껴지던 저녁.
컵라면을 끓여먹고 홀로 마을 산책을 다녀왔다.
저녁 공기는 쌀쌀했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 동안 마주한 그림 같은 마을 풍경, 그리고 길에서 만난 고양이와 염소들에게 괜시리 말을 걸어보며 마음을 달랬다.
언제쯤이면 돈 생각하지 않고 여행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