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뉴 Jun 16. 2020

기차는 풍경을 싣고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베르니나 특급열차

스위스 인터라켄과 루체른을 여행하는 내내 맑은 날씨는 구경도 할 수 없었다.


융프라우에서 새하얀 설산과 대비되는 새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설산과 분간되지 않는 하얀 세상만 보고 왔다. 가랑비를 맞으며 브리엔츠 호수에서 유람선을 탔을 때에도 푸른 하늘 아래에서는 에메랄드빛 물색이 더 영롱하게 빛났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 지독한 날씨는 루체른 골든패스를 탔을 때는 물론 피츠나우에서 리기클룸으로 향하는 산악열차를 타서도 계속되더니, 리기산 정상과 슈탄저호른에서도 결국 희뿌연 안개밖에 볼 수 없었다. 이전까지는 흐리고 추운 날씨에도 비가 오지 않는 것에 감사했지만, 리기산 정상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때 그 속상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소심한 복수로 루체른에서는 엽서를 사지 않았을 정도니 말 다했다.


여기가 그 아름답다는 리기산 정상 맞습니까...?




그래도 가장 기대해온 스위스 여행 일정은 마지막 날에 있었으니, 바로 '베르니나 특급 열차'였다.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국경을 넘어가는 이 특별한 열차를 타기 위해 스위스 여행자들에게 생소할 도시 - 쿠어(Chur) - 에서 1박까지 했는데 또 날씨가 안 좋을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다행히 출발할 때부터 맑은 날씨는 15분 간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해발 2091m의 기차역 알프그륌(Alp Grüm)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전형적인 스위스 마을의 전경, 설국열차를 타면 볼성싶은 빙하, 그리고 나선형의 철길 덕분에 내가 탄 기차의 앞머리를 볼 수 있는 브루지오 철길(Brusio spiral loop viaduct)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다채로운 풍경에 156km를 달리는 4시간 내내 창문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스위스 여행 마지막 날에야 제대로 스위스 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 지금까지의 실망스러운 날씨를 단번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가장 좋은 것은 가장 소중한 사람과 나누고 싶다더니, 다음에는 아빠와 언니까지 네 식구 모두 이 기차를 타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전형적인 스위스 마을의 전경
설국열차를 타면 볼성싶은 빙하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기차역이 마주 보고 있는 국경지대, 티라노(Tirano)에 도착했다. 잠시 생소한 이 도시, 티라노를 구경해볼까 했던 생각을 접고 밀라노행 기차에 올랐다. 지금까지 타고 왔던 베르니나 특급열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꽤 낡고 더러운 기차였다. 어제 만났던, 우리와는 반대로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넘어온 한 여행자가 이탈리아에서 스위스에 오니 너무 좋다고, 아마 스위스에서 이탈리아에 가면 조금 힘들 거라고 말해줬는데, 기차를 타는 순간부터 그 말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잘츠부르크에서 만났던 친구는 베를린을 여행하던 중에 손목시계를 도난당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것도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말이다.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독일에서 소매치기라니. 여유와 평화가 가득한 스위스를 떠나와 소매치기가 난무하다는 이탈리아로 가는 길, 어쩐지 설렘보다는 긴장이 앞선다. 

이전 12화 컵라면, 서러운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