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풍경과 그렇지 못한 태도
디즈니 성의 모델이라고 불리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보고 싶어서 약간 무리해 넣은 여행지, 퓌센. 여행의 절반쯤 접어들어 유럽 성 구경에 흥미를 잃어버린 나에게도 이곳만큼은 예외적이었다.
퓌센은 성과 호수 외에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어 당일치기로도 충분한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그 성 하나를 보기 위해 멀리서 찾아온 만큼, 여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오래오래 보고 느끼고 싶어 1박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여유로운 1박 여행'이라는 목표를 세울 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엄마의 몸에 배어있는 '빨리빨리'의 습관이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마리엔 다리를 향해 가는 길, 새소리도 듣고 나무 구경도 하며 느릿느릿 걷는 나를 보고 엄마는 그렇게 해서 언제 도착하겠냐며 앞서가기 시작했다. 몇십 년을 줄곧 바쁘게 살아온 세월 동안 '여유 = 사치'라는 공식을 신봉하게 된 엄마에게, 시간도 많은데 뭐가 그리 급하냐는 딸의 외침은 공허하게 흩어질 뿐이었다.
정답게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걷고 있는 주위의 여행자들을 잰걸음으로 앞지르는 우리 모녀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평화로운 풍경과 여유로운 사람들, 이 한 폭의 그림에서 유일하게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된 것만 같은 기분.
그렇게 도착한 마리엔 다리. 숲 속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성도, 푸른 하늘도, 내 눈앞에 펼쳐진 모든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꿈속에서나 볼 것 같은 풍경이랄까. 마리엔 다리를 건너고 나서도 조금 전에 저 풍경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봤다는 것이 꿈만 같은 그런 풍경이었다. 곧이어 밀려드는 감정은 이 아름다운 풍경을 눈앞에 두고 급하게 다닌 것에 대한 후회, 다시 못 볼 이 풍경을 두 눈에 꼭꼭 담아왔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만큼이나 감탄을 자아낸 것은 알프제 호수와, 호수를 둘러싼 산자락이 어우러진 풍경이었다. 그러나 막상 호숫가에 내려와 보니 산에서 내려다본 풍경보다는 감흥이 덜했다. 역시 산은 아래에서, 성은 멀리에서, 호수는 위에서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성 구경을 급하게 하느라 시간이 예상보다도 훨씬 많이 남아, 알프제 호숫가에서 멍 때리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구경하는데 3시간이면 충분했다.
더 여유롭지 못했던 것이 끝내 아쉬워, 숙소로 돌아와 최대한 느릿느릿 요거트를 떠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