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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뉴 Jan 01. 2021

우리는 여전히 칭찬을 먹고산다

칭찬 없이도 충분한 자존감을 가지는 그날까지

업무에 지쳐있던 어느 오후에 옆팀 동기에게서 메시지 한통이 왔다. 아까 회의를 하다가 나에 대한 좋은 얘기가 나와서 혼자 흐뭇했다며. 2년 새에 팀이 두번 바뀌면서 이런저런 고민이 많은 내게 이 얘기를 해주면 힘이 나지 않을까 싶었단다. 본인도 지금 팀으로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아 고민이 많은 와중에 내 생각까지 해주는 그 마음이 너무나도 고맙고 든든했다. 얼마 전에는 또 다른 동기가 나와 함께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동기네 팀원이 내 칭찬을 하더라며 메시지를 보냈다. 처음 접하는 성격의 프로젝트를 하면서 내가 잘하고 있는지 내심 걱정하고 있던 와중에, 그런 근심을 사르르 녹여주는 고마운 메시지였다.


왠지 당사자에게서 직접 듣는 칭찬보다는 건너건너 듣게 되는 칭찬이 나를 더 춤추게 하는 것 같다. 면전에서 칭찬을 들으면 "에이, 아녜요~"라며 손사래치게 되어 그런 건지,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겠거니 넘겨 짚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흘려들으면 그만일 수도 있는 남의 칭찬을, '당사자에게 전해주면 좋아하겠지' 하며 굳이 전해주는 동기들의 마음이 참 소중하고, 큰 힘이 되었다.




한 번은 함께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동기네 팀과 쪼인 회식을 했다. 동기네 팀장님은 알코올이 들어가자 한층 기분이 업되셔서는 바로 옆에 앉은 내게, 그분에게는 팀 막내이자 나에게는 입사동기인 M님 칭찬을 엄청 하셨다. 본인이 데이터도 이것저것 뽑아달라고 하고, 문서도 이것저것 번역해달라고 하고, 정말 이것저것 부탁하는데 뭐든지 빠르게 일을 참 잘한다는 칭찬이었다. 곧이어 마치 내 칭찬을 들은 것마냥 신이 나서는, M님이 지금 하는 일을 얼마나 좋아하고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한참 떠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자꾸만 본인 이름이 들려오자 내 쪽을 바라보며 '지금 내 얘기 하는 거지? 무슨 얘기야?'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 M님에게, 한시라도 빨리 내가 어떤 얘기를 들었는지 알려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그때 알 수 있었다. 왜 동기들이 어디선가 내 칭찬을 듣고 오면, 본인들 칭찬인 것마냥 기뻐하며 내게 전해줬는지. 단순히 이 얘기를 들으면 당사자가 좋아하겠지! 하는 마음을 넘어 그냥 진짜로 동기가 인정받는 것이 본인 일처럼 기쁜 마음이 들었던 거다. 아마도, 서로가 어떤 고민을 하며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점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고, 또 더 잘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팀장님이 무심코 쓴 이모티콘 하나, 별 생각 없이 보낸 메시지의 말투 하나에도 전전긍긍하는 우리들,

야단이 아닌 지적 한 마디에도 자존감이 푹 내려앉아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될까' 자책하곤 하는 우리들,

그러나 별것 아닌 칭찬 하나에 그동안 흘린 눈물과 땀이 모두 보상받은 것처럼 기뻐하는, 참 단순한 우리들.


회사 사람들의 한 마디에 일희일비하던 신입시절을 지나 조금은 무덤덤해진 2년차가 된 줄 알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칭찬을 먹고 사나보다. 남의 시선과 말에 휘둘리지 않고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지 않는, 자존감 높은 직장인이 되는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하다. 어제의 칭찬 한마디에 +5점을 얻으면, 오늘 들은 지적 한 마디에 -20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주워듣는 칭찬 한 마디 한 마디가 모아져 +100점이 되는 날에는, 한 단계 높은 자존감을 가진 직장인으로 레벨업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서로의 칭찬을 내 일인것마냥 기뻐하며 열심히 전달해주고, 우리끼리라도 열심히 서로를 칭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가 함께 레벨업 하는 그날까지, 아마 계속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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