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즈나 Oct 12. 2015

사과 줄 아는 용기

그림으로 공감하기

친구가 있었다.

문득 나와 친해지고 싶다고 다가왔던 그녀.

근데 내가 더 많이 좋아했었다.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해졌고

매주 토요일마다 만나서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곤 했다.

공부도 하고 공연도 보고 좋아하는걸 마음껏 공유했다.


누구보다 그녀가 우선이었다.

다른 친구가 섭섭하게 굴어도 괜찮았다.

그녀가 있었으니까.

속상한 일이 있어도 괜찮았다

그녀가 있었으니까.


휴대폰 단축번호 1번은 언제나 그녀.


내가 좌절을 하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다독여 줬고

뭐든 잘했고 그만큼 어른스러운 모습에

많이 부러워하고 기댔던 것 같다.


너무 많이.


어느 날부턴가 나를 피하는 게 느껴졌다.

지금도 그녀가 나와 왜 멀어지려 했는지 모르겠다.

뭔가 나에게 서운함이 있거나 나의 잘못이겠지.


나는 안일했다.

내 잘못을 정확히 물어보고 잘못이 있다면 사과를 하면 되는걸

나도 모르는 어떤 미안한 일을 했을까 봐 겁났고

사과하는 게 싫어서 (정확히 말하면 사과하는 게 멋쩍어서)

애써 모른 척 어물쩡 아무렇지 않게 넘겨도 된다고 생각했다.

새살이 솔솔 돋듯 상처는 지워지고 우정은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렇게 그녀와 영원히 멀어졌다.


한창 사춘기였을 적 썼던 일기를 보면

'나는 누구에게나 미안하다고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라는 글귀가 있다.


어릴 땐 쉽사리 하게 되는 미안하다는 말.

강아지 풀처럼 이리저리 잘 휘어지고 다시금 금방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유연함 때문이겠지.

그런데 크면 클수록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게 여간 쉽지 않다.

옳다고 주장했던 것이 아니라는 게 알게 되고  부정당하면 그게 지는 것 같고 부러질 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것들이 조금씩 쌓이면서 소위 말하는 '꼰대'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일기장 속 내가 바랬던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아서 퍽 부끄럽고 미안하다.


미움을 받는 것도 용기겠지만

미안한 것을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미움을 받는걸 인정함과 동시에

부러질 수 있다는 것을 감수해야 하니까.


내가 그녀에게 왜 그러는지 물어보고

미안하다고 정중하게 사과했다면

우리 우정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매년 10월마다 나는 살짝 우울해진다.

그녀와 친구로서 지냈던 햇수보다 연락이 닿지 않은 햇수가 더 커진 건  이미 오래.

그래도 매년 잊지 못하고 꼭 혼자서라도 생각하곤 한다.


생일 축하해. 그리고 미안해.





매거진의 이전글 한글날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