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공감하기
답답한 순간 중 하나는
나의 슬픔을 너의 슬픔과 동일시할 때.
세상의 일들이 모두 다 가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냥 그럴 때가 있다.
공지영 소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보면
우리는 칭찬을 속삭임처럼, 부정적인 말은 천둥처럼 듣는다고 하는데
딱 그렇다. 부정적인 것만 나한테 다닥다닥 달라붙는 느낌.
그런 나의 슬픔을 보고 누군가가
'뭘 그런 걸 갖고 그래. 세상에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란 말을 해주면
나는 다시 한번 반문하고 싶다.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비참해야 슬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거냐고.
사지 멀쩡하고, 부모님이 건강하게 살아계시고, 일정한 소득을 얻을 수 있으며
친구도 있고 취미도 있고 평범하게 살아 가고 있는
이런 사람은 슬프고 불행하다고 느끼면 안 되는 건지 말이다.
어릴 적 (지금보다 더 철없던 시절) 화려한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하거나
조금 더 나은 경제적 수준으로 인해 얻어지는 능력 등을 꽤나 부러워하며
걱정 없이 슬픔도 모른 체 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물질적인 만족이 행복을 만들어 주지 않는 다는걸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씩 느껴가고 있다.
누구나 마음속엔 아픔이 존재하고 있다.
그 아픔이 내 입장에선 별 게 아닐 수 있다.
슬픔의 깊이는 누구나 다르기에.
그리고 꽤나 상대적이기에.
누군가는 추운 겨울 따뜻한 커피 한 잔에 행복할 때
누군가는 몇백만 원짜리 명품가방을 사고도 마음이 허할 수 있는 것이다.
난 그런 슬픔의 상대적 깊이를 동감까지는 못하더라도
공감만큼은 해주고 싶다.
그래도 너의 슬픔을 충분히 알아채고
그랬구나, 너 힘들었겠구나.. 하고 말해줄 수 있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