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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를 건너서 학원을 다녔던 초등학생 시절의 내가 있었다.
그저 당연히 빨간 신호등엔 파란 불빛이 될 때까지 멈춰서 기다렸고
신호등이 파란 불빛으로 바뀌면 길을 건너곤 했다.
그냥 그게 당연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마찬가지로 학원을 가는 날이었고,
나보다 한두 살 많아 보였던 낯선 오빠와 함께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
아직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빨간 불이었는데
그 오빠는 의기양양하게 혹은 자연스럽게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곧 신호는 파란 불빛으로 바뀌었고
차들도 멈췄고.
어린 나는 그게 무척 신기했었다.
마치 신호등을 미리 읽어내는 것 마냥 몇 발자국 떼고 나니
거짓말처럼 파란 신호등이 켜졌으니까.
사실 그 오빠는 '보행자 신호등'이 아닌 '자동차용 신호등'을 보고서 길을 건넜던 거다.
자동차용 신호등이 노란 불빛으로 바뀌면 곧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바뀐다는 걸
어깨너머로 알게 된 나는 그 못된 행동을 무척 즐겼던 기억이 난다.
마치 나는 신호등을 예견할 줄 아는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미처 횡단보도 신호등이 파란불이 되기도 전에 잘났다는 듯 앞으로 걸어나가던
아주 쓸 떼 없고 위험한 놀이 아닌 놀이에 빠졌었다.
다행히도 이 위험한 행동은 오래 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더더욱 하질 않고 신호등이 깜빡일 땐 그냥 다음을 기다리게 된다.
당연히 '뛰기 귀찮다...' '위험해서...' 라는 이유도 있지만 일종의 나만의 작은 도덕심 때문이랄까?
나 역시 어른도 아니고 한두 살 많은 모르는 오빠 하나가 했던 행동이
괜히 멋져 보여 따라 하게 되었고,
그런 내 행동을 또 누군가가 따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사실 그게 하나도 안 멋진 건데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
가끔 교복 입은 아이들이 무단횡단을 한다거나
파란 불빛의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기 직전에 부리나케 뛰어서 건너는 걸 보면
그냥 조금 안타깝다.
어디서 그래도 되는 거라고 어깨너머로 배웠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 아이들을 내가 훈육할 순 없지만
대신 오늘도 난 미어캣처럼 좌우 앞뒤를 확인하며 길을 걷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가끔은 손도 번쩍 든다.
나 보고 따라 하라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