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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즈나 Nov 04. 2016

수고했어, 오늘도.

영화 <최악의 하루>

단발로 자르고 '단발이 너무해' 란 글을 브런치에 투고하면서 35만 힛을 처음 찍던 날 이후로

약 1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단발은 잘 길러서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그런데.

이놈의 가을은 나의 신체 호르몬에 무슨 변화를 주는 걸까.

가만히 얌전하게 다소곳이 잘 있던 앞머리를 내손으로 싹둑...


이마가 살짝살짝 보이는 시스루 뱅을 하고 싶었는데

그냥 스무 살 적 하던 그 숱 많은 앞머리가 날 반기고 있다.

괴로워라. 이 앞머린 또 언제 기르려나...


한동안 일이 너무 많아서 며칠을 책상 위에서 밤새다시피 보냈다.

그 상태로 운동하러 갔다가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다.

꼬부랑 할머니마냥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어쩐지 다리도 당겨서 디스크인가 불안하다.

병원을 다녀오고 디스크는 아니란 말에 안도했지만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서 찜질팩 위에 누워있으니

절로 눈물이 났다.

서러워서.


나아지지 않는 허리 통증이 불안했고 결국엔 GMF(Grand Mint Festival)티켓도 취소해버리고 말았다.

같이 가려던 친구에게도 미안했고 나도 속상했다.

10주년 페스티벌이라 이번 해는 더 특별할 거라고 꼭 가자고 봄부터 계획했던 건데.

무리하지 말자는 판단이었지만 생각할수록 우울했다.


그렇게 밤새고 부상투혼을 겪어가며 나온 작업물은 썩 맘에 들지 않았다.

마지막에 체크해야 할 것들을 허리 통증 때문에 제대로 확인을 못했더니

확인 안 한 부분들만 정직하게 실수가 발생했다.

정성 들여서 작업했는데 결과물이 엉망이라 쳐다보기도 싫어 서랍 구석에 그것도 뒤집어서 넣어두었다.


누워서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어 밀린 예능이나 보려고 컴퓨터를 켰다.

이윽고 컴퓨터에서 몽실몽실 연기가 나기 시작....

매캐한 연기가 방을 휩쓸었고 천만다행으로 불이 옮겨 붙거나 하는 위험한 상황은 없었지만

모든 작업물이 저장되어있는 내 하드에 문제가 생길까 봐 겁이 났다.

다행히도 시디롬 쪽의 케이블선 정도만 녹아있었다 (이게 다행인 건가?!)

여전히 일은 해야 하고 컴퓨터는 불안하다.

아, 내 허리도.

좋아하는 10cm의 노래를 들으면 내가 GMF를 갔어야 하는데... 란 생각에 서글퍼진다.


문득 최근에 본 영화 <최악의 하루>가 생각이 난다.



주인공 은희는 그 날 참 사연이 많다.

길을 묻는 일본인 소설가와 차를 한잔 마시고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쓰며 주변을 의식하는 인기 없는 배우 남자 친구와 한바탕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전 남자 친구를 만났고 당황스러운 얘기에 눈물도 한 방울 흘린다.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는 한국으로 출판기념회 차 왔지만

약속된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출판사 사람들.  거기다 출판 기념회는

단 두 명의, 그것도 책을 읽지도 않은 독자와 만난다.


각자의 최악의 하루를 보내고서 다시 조우하는 두 사람의 모습.

하루 종일 힘들었을 텐데도 서로가 반갑기만 하다.




나는 가을마다 안 좋은 일을 자주 맞이한다.

최악의 하루가 아니라 최악의 한때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엊그제는 새벽 다섯 시에 뜬금없이 전화가 오더니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의류매장에서 577달러 결제가 승인되었다고 확인 차 연락을 했단다.

아마도 카드 번호가 해킹된 것 같다고 해서 이의 신청을 하긴 했지만

'신청'이라고 하니 아직 마무리가 안 지어져서 찝찝하기만 하다.

컴퓨터는 필요한 것들을 교체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후에 자꾸 블루스크린이 떠서 너무 힘들게 했다.



아마 은희에게도 나에게도 지금 필요한건 "마음가짐"

그녀와 함께 옥상 달빛의 노래 <수고했어, 오늘도>를 남산에서 목청 떠나가라 부르고 하루를 마무리 짓고 싶다.

오늘 하루를 견디고 나면 내일은 지금보다 더 나쁘진 않겠지.

우리의 오늘은 최악이지만 앞으로의 11월은 더 나을 것이고 해피엔딩 일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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