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게에 오늘의 커피라는 메뉴는 없다. 출근해서 그 날 그 날 기분에 맞춰 커피를 내려달라 직원에게 부탁하고 손님이 비교적 없는 자리를 찾아 자리를 잡는다. 이 가게의 지하, 저 가게의 3층을 전전하며 조용하고 은밀하게 가게의 일부인양 스며든다. 눈에 띄지 않으려고 늘 무채색의 옷을 입는다.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거나 거래처와 통화를 하고 메뉴를 수정하고 직원들에게 알려야 할 사항을 메모한다. 그리고 때때로 멍하게 손님들의 대화를 듣게 된다. 귀에는 눈꺼풀처럼 꺼풀이 없어서 이어폰을 끼고 있어도 어쩔 수 없이 듣고야 마는 것이다. 그 대화들에는 모든 세상사가 다 있다. 다양한 연령대에 다양한 구성원 다양한 각자의 자격들로 이야기꽃이 핀다.
어떤 때에는 나도 모르게 맞장구를 치고 있을 만큼 손님의 구성진 이야기 솜씨에 빠져든 적도 있다. 다투고 있는 커플도 있고 오늘 처음 만나 소개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아기를 업고 커피 한 잔이라는 여유를 위해 하루를 꼬박 기울여 가게를 찾아온 손님도 있다. 손님은 왕이므로 나는 입 무거운 궁녀처럼 들었으되 아무것도 못 들은 이가 된다. 고객만족도 조사를 위해 손님들 사이로 침투한 스파이처럼 음험한 구석이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러한 엿듣기를 도락으로 삼은 적은 결코 없다.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은 즐겁다기보다 대부분 까슬하고 아프기 때문이다.
맛있는 커피에 관한 손님의 환상에 관하여 나는 자주 상상한다. 한 잔의 커피가 주는 위로와 위안과 검소한 사치를 미리 맛본다. 흐리게 주세요. 울고 싶어요. 대화하고 싶어요. 알고 싶어요. 혼자 있고 싶어요. 모르는 척해주세요. 기다리고 있어요. 손님들의 얼굴 위로 스치는 커피의 다양한 이름들. 커피가 태어난 국가들 만큼이나 다채로운 오늘의 커피. 손님들의 이름과 면면은 다 알지 못해도 혹은 같은 커피를 주문했다 해도 그들이 마신 커피가 똑같은 기분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격한 대화로 거나해진 낯을 보면 가끔 커피는 낮에 마시는 술이 아닌가 그런 착각이 들 때도 있다.
가장 사적이고 가장 공적인 공간. 거기에서 나는 일을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내년이면 10년 차. 시간은 바뀌지만 좌표는 바뀌지 않았다. 바뀌는 시간에 맞춰 변하는 강산보다 꿈쩍도 안 하고 자리를 지키고 앉은 내가 무서울 때가 있다. 모두가 익명의 장소에서 별다른 소문 없이 살아가는 데 나의 출처만 명확해진 것 같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방황하는 걸음의 흔들리는 목적지여도 좋고 울기 좋은 자리여도 상관없다. 각성과 업무의 공간이어도 괜찮다. 갓 볶은 커피와 창 밖의 바다와 삶이 넘실대는 곳. 당신이 앉을자리 하나가 꼭 맞게 남겨져 있다는 것. 무척 개인적이지만 결코 혼자는 아니라는 사실. 독서실보다 여유롭고 도서관보다 자유로운 여기, 오늘의 커피가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에 각진 생이 조금 둥글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