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나'의 최소 단위이자 최대치다. 실존의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믿는다.
유년
몸으로 꾸는 꿈을 췄다. 어릴 때 악기 대신 춤을 배운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지금도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는 건 성실하고 건전한 나의 팔다리. 전신을 비추는 거울 앞에 선다. 근육이 분절하는 모양들을 살핀다. 열린 골반과 얇고 곧은 뼈대가 좋다. 유전과 중력의 영향으로 평범해진 부분도 있으나 마음에 드는 부분이 아직 남아있다. 안짱다리 교정이라는 명목으로 꽤 긴 시간 다녔던 발레 학원은 결국 몸의 역사가 되었다. 그 시기 또래 애들은 피아노나 태권도를 배웠고 그들과 ‘다름'이 발칙하게도 좋았다. 으스대기 좋아하던 작고 깡마른 계집애. 피가 느리게 흐르던 몸. 아무렇게나 접히고 유연하게 벌어지던 어리고 무해한 몸. 뜨거웠으나 멈추지 않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기록되기 시작하던 시기다.
소년
남자아이들과 곧잘 치받던 나는 그들의 늘씬한 팔다리와 작은 엉덩이가 부러웠다. 발레 학원에서 만나는 몸들의 유약함에 싫증이 날 즈음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순수한 폭력성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도 고민이었다. 엄마의 신경증이 극에 달해 있을 즈음이었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남동생은 나의 상대가 아니었다. 분노를 닮은 무언가가 내부에서부터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격투기라던가 검도라던가 하는 거칠고 강한 운동으로 스스로를 해소하고 싶었다. 발레의 경직으로부터 달아나 무언가를 때리고 부수고 싶을 때 우습게도 교통사고가 났다. 엄지발가락은 기능을 잃고 철심을 덧대고 있어야 할 만큼 심하게 부러졌다. 극렬히 분열하던 나의 사춘기는 더 이상 토슈즈를 신을 수 없다는 선고를 끝으로 종말을 맞았다. 몸의 경계는 피부가 아니다. 마음과 몸은 나뉠 수 없다. 시간과 공간처럼. 몸이 바스러지면 마음도 수축한다. 팽창하던 사춘기 소년은 의미를 잃고 청년을 향해 표류한다.
청년
유난한 엄마에게 반항의 표시로 자해를 했다. 더 이상 당신의 폭력이 내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당신의 폭력이 아니라 나의 자의가 내 몸에 관철되기를. 여러 번 그은 손목의 상처는 세 줄만 남아서 어깨를 향해 떠내려 간다. 그것은 우울의 표식이나 관심의 요구가 아니라 기본적인 항거이자 사치스러운 승리였다. 자해가 당신을 얼마나 할퀴었는가를 나는 안다. 내가 그은 것은 손목이 아니라 엄마와 연결된 탯줄이라 여겼다. 당신의 폭력이 세습되어 온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의 대에서 그 모두가 종식되었으면.
중년
매일 몸과 전쟁을 치른다. 청년에서 중년이 되어가는 몸은 아프기도 하고 늘어나기도 한다. 어릴 적의 가느다랗고 마른 몸을 유지하려고 운동을 한다. 건강에 대한 욕심보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심이 크다. 강박이 사방에 널려 있는 세상이니까 유난도 정상으로 포장된다. 적당한 근육의 생기 있는 몸으로 종이인형을 도려내듯 재단해 본다. 참고 땀을 흘리고 가끔은 포기해 보기도 하는 것이다.
노년
낡고 부식한 몸을 끌어안는다. 점차 태아의 곱은 등과도 같이 겸손해진 키로 노을을 바라본다. 몸에 새겨진 앙상한 기록들. 손목의 타투를 버릇인 양 쓰윽 쓰다듬는다. 누군가 의미를 묻는다면 한 번쯤 씩 웃고 설명해 줄 수 있다. 여기 말고도 더 있어. 삶과 죽음에는 경계가 없다는 것을 몸은 알고 있다. 다시금 새로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죽어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