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들르는 집 근처 술집 사장님이 돌연 디엠으로 글썽이는 시와 건강하시라는 덕담을 보내왔다. 음력설이었다. 첨부한 시는 김명수의 ‘신년 일기'. 사장님도 새해 살이가 고단한가 보다고 정종 같은 시를 달게 받았다. 며칠 후 그의 인스타에는 돌발성 난청이라는 진단을 받았노라는 서글픈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새해도 오직 건강하시기를'이라고 마지막에 붙인 신년인사가 그제야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다. 메니에르병이라고도 많이 알려진 그 증상을 한 때 나도 경험했었다. 원인은 다양할 수 있다고 하는 데 대부분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들(예민'이라고 표현하지만 나는 그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마음 근육이 허약하거나 스스로에게 가혹하고 둔한 사람, 피곤한 사람들이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어지럽고 휘청거리고 메쓱거리는 세상에 홀로 던져진 기분이란. 샤르트르의 ‘구토'가 생각나는 무시의 어지러움이다.
‘썩 괜찮은' 옛 노래의 엘피가 있고 낮은 조도가 시간을 상회하며 깔리는 곳. 갖가지 위스키를 고를 수 있다는 메리트. 가게 이름마저 사랑해 마지않는 시인의 이름인 그런 곳. 공간을 꾸밈에 있어 음악이 차지하는 바가 큰 것을 보면 사장님은 듣는 즐거움과 술과 시를 사랑하던 사람이었으리라. 그런 그에게 내려진 진단은 진단이라기보다 선고에 가깝지 않았을까. 가끔 개성 넘치는 가게에 가면 그 가게 사장님의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내밀한 기분을 느끼는 데 그곳이 그렇다. 새벽 공기 같은 안온한 바에서 엘피가 내는 기분 좋은 잡음에 귀 기울이는 것. 오직 촛불에만 의지한 침침한 조명 아래 얼음 잔의 호박색 위스키를 천천히 빨아먹는 자유. 테이블마다의 다정한 대화를 기웃거리거나 일행의 눈동자에 침잠하는 시간. 나무 수액을 빨아먹는 사슴벌레와 다름없이 느리고 무고한 그 모든 것이 소중한 장소다. 사장님의 거대한 고막과 도 다름없는 어둡고 아름다운 그 가게 안에 고요 아니면 백색소음만 가득하기를. 새해도 오직 건강하시기를. 소중한 누구도, 무엇도 더 이상 마모되거나 상하지 않았으면. 함부로 건네는 말에 상처 입을까 넌지시 위로를 망설이는 촌스럽고 못난 이 마음이 전해질 수 있을까.
새해에는 정녕 눈물 글썽거릴 복이 있을지어다.
김명수 ‘신년 일기'
창비시선 99 ‘침엽수 지대' 수록
사장님이 보내온 시의 마지막 구절이 자꾸만 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