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저를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키워주셨다는 사실이 숨이 막혀요. 엄청나게 크고 검은 돌덩이 같아요. 그 돌에는 탄성 좋은 끈이 엮여 있고요. 저는 그 끈으로 몸 여기저기를 묶인 새 같아요. 제가 멀리 날아가려 하면 할수록 끈은 더욱더 세게 당겨지고, 저는 더 강하게 돌의 존재를 느껴요. 그러다 탄성을 못 이기고 탁! 하고 돌에 부딪혀 주저앉아요.”
여자는 자못 지친 듯 한숨을 쉬었다. 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봐야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는 쓴소리를 듣거나 철부지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여자의 옹이 진 그늘을 다른 사람들은 부러워했다. 결국 이런 이야기는 상담사에게나 통했다.
-엄마, 나는 잘못 태어난 걸까. 뭐가 부족한 걸까. 아니지. 뭐가 이렇게 남는 걸까. 손목에서 시작한 흉터는 팔오금을 향해 나아가요. 해변에 당도한 파도가 바다로 돌아가요. 끝도 없는 윤회에 나는 지쳤어요. 당신은 당신을 낳았어야 했는데 내가 태어났어. 나는 나를 낳았으면 하는 데 네가 태어날까 봐 두려웠어. 이렇게 잘못 태어난 나처럼 평생 죄를 빌며 살아갈까 봐 무서워요.
여자는 당신에게 죽었다 깨나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조용히 적어나갔다. 유구무언 한 유언처럼 누구에게도 실려나갈 수 없는 이야기를.
-바다로 돌아갈 거야. 해변에 부딪힐 거야. 파멸할 거야. 파도가 될 거야. 바다 안에 묻힐 거야. 나는 너무너무 못살겠어. 살고 싶어서 못살겠어. 파도가 질식해서 내가 되었어. 바다가 바람에 깎여서 나만 남았어. 나를 놓아줘요. 나를 낳아줘요. 세상에 고만 신경질 부리고 싶어요. 남을 험하게 대하는 내가 싫어요. 선을 알기만 하는 악의가 진저리 나요. 나한테 청춘은 흙빛이었어. 구금하는 자유밖에 없었어요. 의지를 줘요. 자유를 줘요. 표면을 박차고 넘쳐흐를 거야.
여자는 모범생으로 길러져서 깍듯이 재단된 삶을 살았다. 사실은 그렇지 못한 영혼이 썰리고 잘려서 자주 삐걱거렸고 스스로와 불화하기 시작할 때쯤 아주 화목한 얼굴로 밥상에 앉은 부모님에게 너무나 화가 나 숟가락을 던져버리기에 이르렀다.
-밥상에서 제발 사라져 주세요. 나도 굶을 수 있어요. 타인의 복이 나에겐 지옥일 수 있잖아요. 초라하고 남루한 불행을 삼켜보고 싶어요. 애초에 나는 삐딱해 본 적이 없는데 뭘 더 잘할까요.
못났고 못된 여자가 하루는 밥상머리에서 울었다. 어린아이 대하듯 숟가락 위에 반찬을 올려주는 부모에게 여자는 몰상식한 천하의 불효자였다. 빌린 적도 없는 빚이 자꾸만 불어 가고 있었다.
-엄마, 나는 이제 그만 행복하고 싶어. 내 손으로 만든 게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