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by 올빗ORBIT

얼굴은 얼이 들어있는 굴이다. 허영만의 만화 ‘꼴’에 나왔던 말이다. 어릴 때야 이어받은 피가 뜨거울 때라 그저 부모의 생김이 고스란히 묻어 있지만 점점 자라나 성인이 되어 갈수록 그 사람 고유의 습관, 버릇, 태도가 얼굴로 드러난다. 한 사람의 생애와 역사가 그리고 시간의 태가 얼굴로 표현되는 것이다. 평정심을 잘 유지하는 사람의 포커페이스나 희로애락을 연기하는 연극배우의 극적인 표정. 때때로 자외선에 오래 노출되는 일을 하는 사람의 그을린 피부톤, 잘 웃는 이의 눈가 주름 같은 것들. 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첫 관문은 이처럼 직관적이고 간결하다. 영혼의 파동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와 목소리에 집중되어 있다면 영혼의 입자는 얼굴을 이루는 게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매만지면 그 사람의 영혼에 닿는 느낌이다. 혼, 얼, 영의 물성. 그것은 언어의 물성이 책인 것과도 같다. 책을 읽듯 표정을 읽어 내려간다. 손 끝에 느껴지는 얼굴선, 뺨의 감촉, 코의 높이, 눈매, 광대의 굴곡, 얼굴의 크고 작은 융기. 얼굴과 얼굴이 마주 본다는 건 그러므로 서로의 우주를 관측한다는 말이다. 때문에 누군가 당신의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가 내 영혼의 한 터럭 즈음은 감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부정적인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상관없이 자아와 타자의 분명한 경계를 느끼고 서로의 존재를 확실히 인지하게 된다.

시각적 정보에 의지하는 생명체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얼굴은 냄새, 목소리, 몸짓으로 대체되었을지도 모른다. 너와 나를 구분 짓고 싶어 하는 본연의 본능은 어떤 인식 체계로든 작동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에는 안면인식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얼굴이 바뀌는 사람이 나온다. 서로의 결점을 결국 사랑으로 이겨내는 K드라마 고유의 플롯을 따라가지만 나름 신선한 설정과 판타지였다고 생각한다. 얼굴이 제 기능을 상실했을 때 벌어지는 여러 가지 상황과 묘사가 흥미진진했다. 결국 얼굴이 있어서 참 편하구나 하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긴 했지만.

당신이 당신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몇 번이고 얼굴을 본다. 이렇게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마주 보고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곳에 당신이 있어 안도한다. 보고 싶다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 얼굴은 얼이 들어 있는 굴이다. 그 깊고도 얕은 굴에 각자의 심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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