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초등학교 5학년 때 짝꿍은 그림을 잘 그렸다. 나뭇가지와 테두리를 그리고 초록 물감으로 채우는 게 일반적이었던 시절, 그 친구는 다른 농도와 채도의 붓 자국으로 나무를 표현했다. 그 남다름에 감탄하며 난 직접 그리기보단 작품 보는 것을 즐기는 쪽으로 일찌감치 방향을 틀었다. 그 친구는 꾸준히 예술가의 길을 걸었고 유학 시절 어쩌다 한국에서 전시회를 할 때면 나를 꼭 초대했다. 덕분에 젊은 신인 작가의 도전적인 작품을 일찍부터 만날 수 있었다. 나의 예술 감상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대학 졸업 후 떠난 어학연수는 영국의 문화예술을 직접 볼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1년 동안 틈날 때마다 대영박물관, 내셔널갤러리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서양미술사 수업 때 작은 화면으로 뿌옇게만 보았던 그림들을 직접 보는 건 즐거운 충격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림 보고 간단한 메모 정도는 남기곤 했지만 본격적으로 감상을 글로 남기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그저 감탄하며 보았던 감정의 여운만 남아 있다. 직장 생활을 하다 잠시 쉬어갈 때 그 시절이 그리워 한 달 동안 캐나다 여행을 떠났다. 우연히 방문한 작은 갤러리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도슨트 투어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렬했던 경험이라 아직도 기억한다. 특히 진심을 담아 그림을 소개하던 그 도슨트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그때 꿈을 갖게 됐다. 나도 언젠가 예술을 매개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 열망이 이어져 ㈜즐거운 예감의 예술교육 리더과정을 만났고 아트코치가 됐다. 아트코치는 예술을 감상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끌어주는 사람이다. 미술관, 갤러리에서 접하는 많은 그림 중 마음에 드는 한 점을 골라 자신만의 감상을 글로 쓰고 함께 나누는 수업을 진행한다. 처음에는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그림을 보고 느낀 나의 감정을 글로 표현할 것인가 걱정이 앞선다. 마음이 급해지기도 한다. 때로는 진짜 마음에 드는 작품보다는 글쓰기 편한 그림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림을 본다는 것, 향유한다는 것보다 남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 내 글이 더 중요한 걸까 고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용기 내어 작가님과 얘기 나눌 기회를 갖거나 감상글을 나누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보는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된다. 나를 찾고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만나며 유연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감상의 즐거움과 함께 작가님을 알게 되고 곁에 두고 보고 싶은 그림들, 나에게 특별함으로 다가온 그림 몇 점을 직접 컬렉 하기도 했다. 그 그림들은 내게 선물같이 다가왔고, 누군가에게 그림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학창 시절 팬클럽에는 관심도 없던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들 전시회를 쫓아다니고 작업실도 방문하며 소중한 인연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작품에 대한 감상글을 SNS로 공유하며 작가님과 소통하기도 한다. 그런 경험들은 내 삶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예술을 향유하는 즐거움을 알게 했다. 예술은 그렇게 나와 너, 사람들을 잇고, 삶을 잇는다.
예술 수업을 할 때면 꼭 하는 질문이 있다. “예술이란?” 다양한 답이 돌아온다. 그리고 그때마다 스스로에게도 묻는다. 계속해서 변해가던 나의 답이 이제야 정착했다. 내게 예술은 낯설게 보는 일상이다. 늘 똑같을 수 있는 일상에 예술을 더함으로써 일상 속에서 예술을 누리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정면 탁자 위 선물 받은 그림, 이부강의 <옮겨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쌓아 올릴까 궁금해진다. 곁에 있는 작은 반가사유상 83호의 미소를 따라 지으며 오늘도 평안한 하루가 되길 바라보기도 한다. 그렇게 평범해서 더 감사한 나의 하루는 일상에 예술을 더함으로써 조금은 낯설고 특별해진다. 예술을 일상으로 잇고 경험하며 표현하고 나누는 삶은 가장 멋진 나의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