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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여기

here I am, 김현영

by 바다기린 Feb 10. 2025
Here I am_김현영Here I am_김현영

연약해 보이지만 땅을 딛고 굳게 버티고 선 두 다리, 날 수 있지만 몸에 꼭 붙인 날개, 또렷한 눈은 먼 앞을 응시한다. 노란 부리로 써 내려간 듯한 글귀는 음성으로 전환된다. "오늘을 사는 건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 누가 뭐라 해도 상관없어. 친구도 있으니 외롭지 않아. 우린 언제나 함께야!"


화랑미술제 2023은 처음 가본 아트페어였다. 수많은 그림에 치이며 걸어 나가던 중 이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눈에만 담아 오기에는 계속 맘이 끌렸다. "here I am"이 귓가에, 입가에 맴돌았다. 깊은 고민을 끝내기 위해 다시 그림 앞에 서니 김현영 작가님이 계셨다. 용기 내어 작가님께 궁금한 것들을 묻고 대화를 나눴다. 작가님의 마음이 더해지니 발길이 더 떨어지지 않았다. 이 그림을 두고 가면 맘이 불편하고 계속 생각날 거 같았다. 그렇게 내 인생 첫 그림이 내 품에 들어왔다. 그 순간의 설렘은 평생 갈 것 같다. 작가님이 꼭 안아주시며 그 순간을 축하해 주셨기에 더더욱. 나를 닮고 위로하는 그림, 언젠가 아이들에게 엄마를 추억할 수 있는 무언가 하나만 남기고 떠난다면 이 그림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인생 그림과 마음 깊이 응원할 작가님을 만난 소중한 날로 그날은 그렇게 깊이 아로새겨졌다.


작품 속 새는 작가님이자 작가님의 딸이었다고 한다. 이제는 그림 속에 나와 내 딸들이 보인다. 즐겁고 당당하게 앞을 바라보며 함께 나아가는. 언제든 날아오를 준비를 하며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는. 여기 있으므로 오늘을 살고, 오늘을 살기에 여기 있는. 현재에 살면서 후회가 덜한 과거로 남기고, 날아오르는 미래의 꿈에 더 다가가고 싶다. 한편으로는 날아오른 뒤 어떻게 다시 땅에 잘 내려앉을까도 생각해 본다. 날아올랐다고 평생을 날고 있을 수만은 없음을 안다. 날아오름과 내려앉음은 산에 올라감과 내려감처럼 당연한데 자꾸 잊곤 한다. 날아오르기 위한 과정을 오롯이 즐기고 날아본 순간을 추억하고 그 느낌이 좋아 다시 나는 꿈을 꾸며 또 땅에,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것이 결국 삶이고 살아가는 힘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삶을 이어가는데 따뜻한 위로와 응원이 필요할 때마다 함께할 이 그림이 곁에 있음이 내겐 행복이다.


작가님이 이 작품을 그린 2022년은 교육대학원에 진학해 오랜만에 본격적으로 공부를 다시 시작한 해로 내게도 의미가 크다. 늘 아기 같기만 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커 중고생이 되었고, 이제 나를 위한 길을 선택하는데 부담감을 좀 덜어낼 수 있었다. 늦은 밤까지 공부하고 돌아오면 녹초가 됐지만 그래도 하고 싶었던 현장에 기반한 연구를 원 없이 하고 있다는 기쁨은 그 힘듦을 상쇄했다. 어느새 5학기를 마치고 이젠 논문만 남겨두고 있다. 논문을 마친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푸른 하늘을 비상하는 한 마리의 새. 오랜만에 날아올라 기우뚱 이리저리 조금 흔들리기도 하지만 준비하는 동안 나는 모습을 그리고 또 그려왔기에 곧 감각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곧이어 바람에 나를 맡기며 행복하고 뿌듯한 표정을 짓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 상상에 마음을 기대어 난 여기에서 오늘 하루만큼 또 열심히 살아가는 중이다. 그런 하루하루가, 그 설렘의 순간들이 모여 행복을 선물로 받는다.


지금도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처음 만났던 시간, 공간, 작품이 있던 위치, 다정하게 먼저 작품과 함께 사진 찍자고 해주신 작가님, 첫 작품 소장이라는 설렘…. 그 모든 것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스스로에게 준 가장 의미 있는 인생 선물이기도 한 작품. 내 마음속에서 부유하던 단어들인 나, 지금, 여기. 그리고 언젠가 날아보고야 말겠단 의지로 먼 하늘을 응시하고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나. 함께 하는 작은 나무는 때가 되면 같이 날아오르려는 듯 바람을 타며 몸을 앞으로 쭉 내밀고 있다. 마치 나를 응원하는 가족이자 친구처럼. 그 하나하나가 소중한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요즘도 위로가 필요할 때, 외로움과 불안감이 세트로 나를 찾아올 때, 난 김현영의 <나 여기에> 앞에 선다. 그리고 그림이, 작가님이, 내 가족과 친구가, 내 안의 내가 나를 토닥이고 안아주며 건네는 말을 마음 깊이 저장한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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