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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욱 Mar 19. 2020

기억과 상실 : 볼탕스키 회고전

퐁피두 센터 볼탕스키 회고전 방문기

    지금 프랑스 시내엔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다. 특별한 외출 사유 없이 밖에 있다가 경찰의 검문을 받으면 35유로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외출 증명서를 집에서 인쇄해서 제시해야 하며 인쇄기가 없는 경우에는 수기로 작성하는 것도 허용된다고 한다. 벌금은 곧 100유로 이상으로 오를 예정이다. 

마트엔 파스타와 휴지, 생수 등 기본적인 생필품 코너가 모두 동 나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픈 사람만 쓴다는 인식이 강했던 마스크가 이제는 길거리에서 흔하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가 유럽 전역으로 퍼지고 적지 않은 사망 보도를 뉴스에서 접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국가들은 봉쇄에 들어갔고 그 어떤 외부활동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마크롱 대통령의 대국민 발표가 있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대하는 국가 간의 다른 태도는 그들이 삶과 죽음을 대하는 방식에 수렴한다. 이탈리아인들은 창문을 열고 코로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노래를 다 같이 불렀다. 유튜브 댓글에는 이런 위기에 상황에 전염을 확산시키는 안일한 행동이라는 한국인들의 댓글이 달렸다. 한국에서 바이러스의 확산에 가장 강한 영향을 끼친 신천지의 영향으로 단체행동에 관한 적개심은 커지고 있고 유럽에서는 반대로 밖으로 나돌아 다니려는(?) 개인주의적 행동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보고 있는 듯하다. 


무엇이 어찌 되었든 어떠한 사회적, 정치적(프랑스의 지방선거는 미뤄졌다.) 의무와 권리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전 세계인이 암묵적인 자가격리를 시행하고 있는 요즘,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사람들의 사고의 어떠한 변화가 일 것으로 예상된다. 

나는 퐁피두 센터가 문 닫기 며칠 전 방문해 볼탕스키 회고전을 감상했다. 전시 제목은 ‘Faire son temps’, 한물갔다는 자조적인 뜻을 담고 있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관련 에세이도 쓴 적이 있었던 지라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었다. 상하이, 도쿄, 예루살렘 등 다양한 도시들을 다니며 회고전을 열고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을 방문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국내 미술관에서 유럽 현대미술작가들의 전시를 감상하기란 쉽지 않다. 아마도 그들이 작품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드러나는 사회적 메시지를 국내 관객들이 부담스럽게 느낄 수 있고, 미국 작가들에 비해 시각적인 화려함보다는 물질적인 부분, 이를 테면 질료와 형식이 접합하는 방식에 관심을 두기 때문에, 관심을 이끌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많은 작가들이 도쿄에서 전시를 열면서도 국내에 방문하지 않는 것, 추를 다루는 예술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나에겐 너무나 아쉬운 부분이다. 


볼탕스키는 단순하게 말하면 죽음을 이야기하는 작가다. 그 방법에 있어서나 주제에 있어서나. 그는 40년대에 유태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고 12살 때 자퇴를 하고 의사였던 아버지의 병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환경의 영향인지 그의 초기 작품과 어릴 적 만들었던 작은 조각들은 신체와 고독이라는 주제와 항상 닿아있다. 또한 사회학자, 철학자인 형제들의 영향도 그의 여러 작품과 집필한 글 안에서 느낄 수 있다.



전시장 입구에 ‘DEPART’라 쓰인 네온사인이 보인다.


“저는 저만의 예술을 합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 그것을 할 수도 있겠죠. 거기엔 출발 점(DEPART)과 도착 점(ARRIVEE)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 새로운 길이 있을 수 있는 거죠.” - L'Express dix 인터뷰


볼탕스키의 작품은 대부분 설치작품이고 전시가 끝나면 90%는 폐기된다고 한다.  앞서 그의 작품에서 죽음을 형식이나 주제에 동일하게 적용한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는 예술작품, 혹은 인간의 영속성을 믿지 않는다. 작품이 마치 영원한 형질인 것처럼 사고 팔리고 기록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며, 그것의 한시적인 생명력과 죽음을 받아들인다. 여기서 말하는 출발점은 이번 전시가 기존의 작품들을 동일하게 재설치하는 회고가 아니라, 또 다른 모습의 한시적 여정이 될 것이라는 언어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수직적으로 배치된 흑백 초상화들이다.  그의 사진은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흐릿한 자국과 노이즈들을 볼 수 있는데, 사람의 삶이라는 것도 우리가 그것들을 손에 잡으려 하지만 결코 선명하게 포착할 수 없다는 그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기억과 상실’ 이것이 볼탕스키의 사진을 읽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볼탕스키의 ‘기침하는 남자’와 그와 관련한 회화 작업이 벽면에 전시되어 있다.

‘기침하는 남자’는 2014년 팔레 드 도쿄에서 있었던 <INSIDE> 전에서 이미 본 적이 있었는데 강한 충격을 받았었던 기억이 난다. 창문으로 빛이 조금 새어 들어오는 방에서 바닥에 앉은 남자가 쉴 새 없이 기침을 하며 피를 토하는 1분 남짓의 영상이다. 볼탕스키는 활동 초반에 아방가르드한 단편영화 제작에 관심을 두었었는데 이 작품들도 그 시기 (60년대 후반)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초반의 신체적이고 주관적, 개인적인 관심사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비물질적이고 신화적인 쪽으로 옮겨간다. 이 작품은 신체 그 자체를 다루고 있는데 보통 볼탕스키의 생애와 연관 지어 포로수용소에 갇힌 자의 고통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 영상작업은 그의 아버지의 직업, 의사라는 직업이 더 많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지 못하는 인간의 내면적 부분이 비의도적으로 외부로 표출되는 순간, 즉 예술적인 영감과 고독 같은 고립된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은 전혀 유쾌하지 않은 모습으로, 때로는 내장에 있는 피를 토해내는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발현되는 것은 아닐까? 볼탕스키는 학교를 그만 둔이후 아버지의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삶을 짓이기는 질병과 싸우며 피를 토해가는 환자들로부터 고독으로 인한 몸부림과의 어떤 공통 감을 찾은 것은 아니었을까? 아마 내가 이 작품을 <INSIDE>라는 제목의 전시에서 접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해석을 고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구성에 있어서 재미있었던 점은 설치된 조명이 거의 모두 백열전구였다는 점이다. 그 마저도 최소한의 빛만을 제공하고 있어 전반적인 전시공간은 매우 어두웠다. 사진을 찍는 데에는 빛이 필요하지만 찍힌 사진을 다시 바라보는 데에도 빛은 필요하다. 작가는 이러한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 있어서 빛과 사진의 관계는 매우 밀접한데 이어지는 작품에서 이는 더욱 명백해질 것이다.



두 번째 전시공간에서는 어린아이들의 사진이 주를 이뤘다. 볼탕스키는 그다지 유쾌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어린아이들의 초상화는 그가 어린 시절 읽던 잡지의 행복한 아이들의 사진을 발췌한 것을 모은 자료집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삶과 이들의 행복을 비교하고 부러워했다고 밝힌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의 컬렉션들은 정말 우울하고 음침하다. 돌과 모래조각, 병원을 연상시키는 붕대와 바늘, 그리고 사진엔 나와 있진 않지만 머리카락도 있다.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는 좁은 복도 벽에 가로로 좁은 틈이 나있다. 거기에 눈을 대고 바라보면 온갖 형상들의 그림들이 춤을 추며 움직이고 있다. 조금 더 깊숙이 보니 아래에 종이 인형들이 있고 빛을 투사하는 프로젝터가 있다. 반대편에는 목매달아 죽어있는 남자 위로 천사와 악마가 날아간다. 볼탕스키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실존 자체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가 표현하는 것은 언제나 그것의 흔적과 기억이며 빛과 접촉하며 만들어내는 이차적 부산물이다.


"나는 영혼을 믿지 유령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혼이 우리 주위에 있다고 믿고 우리의 얼굴은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퍼즐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는 잠긴 문들이 있고 우리 각자는 열쇠를 찾으려 합니다. 저는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Paris Match 인터뷰


작품에 그림자가 많은 이유에 대한 볼탕스키의 답변인데 약간 모호하다. 아마도 그는 빛과 영혼을 자신의 작품 안에서 동일시하는 듯하다. 빛은 사진을 비추지 않으며 사진과 공존한다.

내가 볼탕스키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이것이다. 사람들의 사진의 병렬, 그것을 비추는 조명과 전선 그리고 아래에 쌓여있는 철제 서류함들.



그의 작품에서 ‘안’과 ‘밖’은 서로 뒤집어진다. 안에 있었던 것은 바깥의 세계로 끄집어내지고 바깥에 있었던 것은 감상자의 시야 멀리 사라진다. 전시회에서의 조명은 기본적으로 관객의 시야 바깥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림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천장에 레일에 설치되는 형태로 멀리서 은은한 빛을 발산한다. 그런데 오히려 볼탕스키의 사진에서는 매우 가까이에, 심지어는 관객보다도 가까이에 위치해서 사진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을 방해한다. 그래서 우리는 한 곳에 머물러 사진을 바라볼 수 없다. 사진은 언제나 검은 등에 의해 약간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숨겨져 있어야 하는 전선 또한 사람들의 얼굴 사진 위로 흘러내리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우리가 사진을 지각하기 위한 장치들은 오히려 사진 그 대상의 존재보다 더 가까이에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가 사진으로 접근하는 데에 방해를 한다. 


사자의 존재는 흐릿한 사진에서 한번, 그리고 이러한 설치에서 다시 한번 우리의 명확함 너머로 후퇴한다. 이것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편으로 우리가 그것들을 정확히 자세히 관조하며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의지의 덧없음이다. 사진의 배치는 사자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아닌 차가운 정렬과 기계적 배치만을 보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잊혀가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죽은 자 들의 사진은 언젠가는, 아니 이 전시가 끝나게 된다면 사라질 것이다. 그들은 이미 이름도 잃고 존재들의 기억들에서도 사라져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와 있는 빛이 내뿜는 지나치게 밝은 온도, 강한 대비는 빛을 도구적 존재자 이상의 가치로 승격시키는 듯하다. 우리는 빛은 대상에 대한 희생물의 자격을 넘어서 스스로의 존재를 현시하는 듯하다. 그리고 스스로의 즉자적 존재 현시는 언제나 편안한 관조의 시각을 깨뜨림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태도를 방해하며 나타나는 빛은 볼탕스키가 말한 영혼의 존재와 동일시되면서 우리에게 나타난다. 빛은 우리를 위해서 얼굴들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사자들의 얼굴들을 위해서, 얼굴들을 통해서 세상에 나타난다. 유리 액자 너머로 반사되는 동그랗고 빛나는 조명이 사진 위에 겹쳐지는 이미지를 보며 나는 사진과 빛이 합치된다는 인상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컴컴한 전시실의 전경이 조그마한 백열전구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매우 차갑고 고독하지만 동시에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희망또한 포착할 수 있었다.




한 발짝 나서면 밝은 빛과 함께 쌓여있는 철제함들이 보인다. 그의 다른 초상화 작품에서 보였던 철제 서류함과 동일한 것들이다. 서류함에는 이름들이 쓰여있다. 아마도 죽은 자 들의 것이다. 뒤로 난 넓은 창문을 통해서는 파리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었다.

그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탑이 쌓이는 것처럼 우리의 존재, 죽음과 기억도 같은 위치에 처해있다고 말한다.


카프카의 소설 <성>에서 주인공 K는 한 마을에 토지 측량사로 발령이 나서 도착하는데 정작 그곳에 도착해 촌장에게 듣는 말은 서류에 오류가 있었고 우린 측량사가 필요 없으니 돌아가 달라는 것이었다. 많은 공무원들끼리 서로 오해가 있어 그들이 서로 전화하고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필요하지도 않은 측량사를 불러냈다는 것이다. 촌장은 이것을 증명하기 위한 서류를 아내에게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고 그녀는 장롱에 있는 서류를 모두 꺼내어 우스꽝스럽게 종이를 떨어뜨리고 뒤지며 한참을 씨름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한다. 여기서 주인공 K는 “하찮은 혼란이 상황에 따라서는 한 사람의 실존을 결정한다는 점”이 재밌다고 말한다.


볼탕스키의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철제함 역시 차가운 상자 안에 의미 없이 쌓여가는 죽음에 관한 기록들, 한 때 생존했었던 영혼들의 실존을 생전의 사진과 대비하며, 여기서는 파리의 전경을 비추는 창문과 병치하면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검은 천에 쌓인 관들, 검은 천에 가려진 사진들, 천장에 설치된 통풍기를 통해 바람이 불어오고 관객들은 가끔 바람에 휘날리는 검은 천들 너머로 가끔씩 비치는 사진만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서늘한 바람을 직접 느낄 수 있다.





거대한 사진 안에 조명이 들어가 있고 하얀 천으로 다시 쌓여있다. 천의 주름으로 인해 사진은 희미해진다. 병원의 커튼이 연상되기도 한다. 



볼탕스키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인 <리저브(reserve)>와 코트를 비추는 조명,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철제함들. 


도착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볼탕스키의 가장 최근 작품 중 하나는 고래의 소리에 관한 미신을 차용한다. 고래의 소리는 세계의 비밀을 담고 있다는 파타고니아의 신화를 바탕으로 고래의 소리를 흉내 내는 거대한 철제 구조물을 장식하고 그것을 카메라로 녹화한 작품도 있었다. 그는 이제 어린 시절과 사진에 관한 작업을 하지 않고 이 같은 신화에 더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

“누군가 너를 못생겼다고 하고, 나쁘다고 해도 너의 작품은 인상 깊다고 한다면, 그에게 감사해라.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창조하는 작품이고 나머지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볼탕스키가 보자르에 교수로 있을 때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볼탕스키와 전혀 떼어질 수 없다. 사진 작업을 다루면서도 관찰자의 위치를 넘어서서 자신의 주관적 세계를 표현하는 모순적 작업을 해나가는 볼탕스키는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선 모든 실존적 존재들에게 말한다.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하라.”






참조:Christian Boltanski : "Il faut attendre et espérer" - express dix

Christian Boltanski : "Au début de la vie de chaque artiste, il y a un trauma" - Paris M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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