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에어컨을 끄고 나왔던가?
버스 맨 앞좌석에 앉아 물에 젖어 빛나는 아스팔트 바닥을 바라보다 보니
강한 에어컨 바람이 머리에 쬐어 아찔하게 만들었다. 나는 방금 떠나온 집을 생각했다.
내가 에어컨을 껐던가?
내가 에어컨을 켜고 나왔던가?
에어컨은 내가 나온 걸 차마 알지 못한 채로 무의미한 공기 냉각을 계속 반복하고 있을까
내가 시원해지길 기다리면서 온도를 낮추어 가고 있을까.
나의 육체가 뜨겁게 공기를 데우던 시절이 지났음에도 균형을 맞추어가려는 불균형한 시도가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진 조금 남은 김치찌개만 더 차갑게 만들고 있을까.
작별 인사란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것인데. 그저 리모컨의 온/ 오프 버튼의 삑 소리와 같은 것인데. 그것이 울리며 시작되고 울리며 끝나는 것이 전부인 것인데.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겹치는 단어들이 점점 피어날 때 온의 삑 소리. 버스 정거장에 도착해 ‘잘 가’로 손 흔들고 카드 단말기에 찍는 ‘삑’ 소리로 오프가 이루어지며 끝나는 그런 단순한 것이어야만 하는데. 나는 두 귀를 막았다 버스의 덜컹거림으로부터 멀어지려 했다. 그리고 고요 속에서 삑 소리를 다시 상기시키려 했는데 더 이상 그 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 또한 고요 속에 파 묻혀 오프의 삑 소리도 없이 기억이 스러져 감이 느껴졌다. 나는 계속해서 물었다. 내가 에어컨을 껐던가? 내가 에어컨을 끄지 않고 나온 것은 아닐까? 에어컨은 나를 못 잊은 상태인가? 아니면 내가 에어컨을 기다리고 있을까? 내가 무서워하고 있는 것은 단지 전기요금인가? 다른 날보다 조금 높게 나올 전기요금 청구서 그것에. 선생님이 때리는 회초리 10대처럼 모든 죄악과 걱정이 종결될 처벌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내 머릿속에서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삑 소리, 나의 부재 속에서 불필요한 쾌적함, 불필요한 온도는 나에게 조금 다른 것을 들려주고 있는 것일까?
나는 곧 버스에서 내릴 것이다.
습기로 가득 찬 가로수들 사이를 걸어가야 할 것이다.
그때도 나의 방은 쾌적할 것이다.
나는 지하철 5호선 퇴근길에 끼여서 땀내와 향수 냄새에 뒤엉켜 스마트폰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것이다.
그때도 나의 방은 쾌적할 것이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복잡한 인파를 뚫으려 안간힘을 써야 할 때도,
상스러운 대화 속에서 나 자신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려할 때도
나의 방은 언제나.
그러나 그것은 나를 위한 온도가 아니라 나의 부재를 위한 온도일 것이다.
나의 부재는 실재하는 나보다 더 쾌적하고 풍요로운 나의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수 있겠지.
과거에 있었고 여기만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도 있을 수 있었던 나의 부재가.
내가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것이고 잊었을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있을 나의 부재가.
쾌적한 침대 위에서 눈감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