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두서가 없는 글이므로 재미로만 읽어주세요
‘창작’이라는 그 단어자체가 함의하는 동작과 상황의 맥락의 범주가 너무 넓다. 무언가를 창작하기 위해선 의지가 필요하고, 또 창작되는 대상도 필요하다. 창작되는 대상 앞에는 선험적으로 가정된 어떤 형상이 있을 것이고 그걸 창작자의 내적인 표상으로서 이데아로 전제할 것이냐, 혹은 바깥에 놓여있는 부모격의 작업들, 레퍼런스로 볼 것이냐에 따라서 그 위상은 또 달라진다. 창작자는 그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손길로 부터 무언가를 배운다. 작업에 돌입하기 전의 구상된 이미지는 행동의 경로를 취하고 경로는 물질에 변화를 생성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변화되지 않거나, 스스로 변이를 일으키는, 손에 의해 취해지지 않는 물질성을 감각하게 되면서 경로는 변화하거나, 혹은 물질 스스로 생성하는 변이성을 다시 반사적인 형태로 나의 행동으로 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지점들은 필연적으로 ‘필히 그러할 것이다.’라는 가정으로부터 증명의 도출이라는 개연성을 깨트려버린다는 점에서. 언어 바깥으로 떨어져 나가는 행위들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물질로 부터의 변이가 창작에서 중요한 행위의 방향을 지시하는 것이다. 사실 실제로 무언가를 실행하기 전에 그 대상이 어떠한 것이다라고 가정하지 않더라도, 행위는 과정에서 작은 조각으로서의 많은 ‘가정’들이 발생하고 이를 증명하거나 깨트리는 작은 단계들이 수행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증명이란 과거형 시제로 쓰여진다는 의미에서 행위의 동시성에 의한 증명은 언어적 증명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은 직접적인 신체적 체득이다. 따라서 이 ‘경로’라는 것은 어찌되었던 건 창작자 본인이 무작위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현재의 위치로부터 아주 가까운 다음 단계까지, 그리고 모호하고 (거짓되거나, 유치하게 잘못설정된) 최종 단계 이 세가지 좌표로 설정되기에 누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창작 교육에 대한 필연적 불가능성이 발생한다. 들뢰즈는 교육을 수영에 빗대면서 물결(배움의 대상)이 몸의 움직임과 닮지 않았기에 완벽하게 동일한 방식의 교육이 불가능하며 교육을 모방보다는 ‘함께하는 행위로 설명한다.
작은 중간의 경로설정과 변경에 몰두하는 것은 창작자로 하여금 일종의 중독상태로 내몬다. 이러한 자잘거리는 움직임에 대한 도취가 창작계에 어떤 문화와 기호를 형성하기도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호들은 창작자의 내부의 움직임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 창작자 시선에서만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암호이기도 하다. 게임의 개발자들이 특정코드를 입력하거나 접근불가능한 지역에 접근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스터에그 요소를 숨기는 것도 하나의 요소다. 이러한 이스터에그는 한편으로 전제된 세계(플레이어블한 맵)의 바깥에 위치하기도 하지만 플레이의 요소의 일부로서 한편으로는 세계관의 디테일을 덧붙이는 역할을 하면서도 이스터에그라는 창작자(여기서는 조금 더 창조자에 가까운 역할로서)가 세계의 마법을 거두고 실재계를 비추는 두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창작자의 디테일 요소는 한편으로 분명 위험성을 담지하고 있다. 창작된 대상물의 타겟을 순식간에 한정해 버리면서 세계관에 진입할 수 있는 특정한 권리를 부여해버리고, 또 창작에서 겪은 경로 설정, 즉 내면적 행위들이 궁극적으로 외연의 물질로 확장되지 않고 그 확장하는 과정으로서의 내면을 유지한채로 또 그 내면을 향유할 수 있는 내향적 공동체의 결속으로 수축해들어간다는 점이 그것이다. 모든 종류의 실험성을 내포하는 창작물들은 어느정도 창작자와 물질이의 경로의 투쟁을 가시화시키지만. 이러한 투쟁의 형이상학의 보편성을 발견하고 그로부터 발현된 물질성의 결과가 있는지, 혹은 내부로 파고들며 자해감각에 불가하게 표출되는지에 따라서는 그 결과물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디테일의 요소들은 창작의 목적과 경계를 허문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디테일의 추구는 약간의 집착혹은 유흥으로서 일방향적인 창작의 의지를 넘어서 외부적인 욕구외 의도가 물질로 침투해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실제 작품 발표까지 시간이 너무 남았을 수도 있고, 혹은 이 작품에 개선할 요소가 너무 많았을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창작의 동일한 구간을 반복하고 반복하면 일종의,, 다차원적인 시간성으로 작품을 경험하게 되고, 한 개인이 작품을 창작한다고 하더라도 여러가지의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디테일의 요소는 이러한 행위의 반복 안에서 추가되는 토핑처럼 놓이는 것으로서 창작자의 여러가지 손동작들을 느낄 수 있다는 데에서 조금 더 점수를 주게 된다. 그니까 ‘존나 돈벌려고만 만든건 아니네’하고 생각된다는 것이다.
창작의 범주는 넓지만 나의 경험 안에서 창작이란 언제나 ‘하얀색 종이와 싸워서 이기는 것’이었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쓺에 있어 ‘흰 종이’에 대한 인식은 창작에 대한 스트레스를 나타내지만 딱히 그것만이라고 하지 않더라도, 내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흰 종이 한장으로 정의되어 왔던 것 같다. 일단 처음부터, 내가 만화를 꿈꾸던 때로 돌아가보자.
흰 종이는 아무래도 그냥 가정일 뿐이다. 연필과 종이는 그려지는 이미지를 위해 임시적으로 가정된 별것 아닌 물질일 뿐이다. 적어도 이상적으로는 그렇다. 이미지란 어디에든 놓여도 동일하게 이미지인 것이니까. 그러나 또 한편으로 종이는 그려지는 이미지와 강한 인과구조를 형성한다. 특히 만화는.. ‘종이에 끄적이는’ 어떤 행위에서 출발하는 것으로서 종이와 펜의 물질성으로부터 시작되는 텍스쳐와 구조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핵심은 도안이 물질성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것들을 가시화 시키도록, 그래서 창작의 운동성을 가시화시키도록 하는것이 미적인 것이라고 적어도 배워오게 되었다.
만화적 그림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인물은 김정기다. 김정기는 주어진 종이에 스케치없이 구도를 머릿속으로 짜서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펜 하나로 그리는 그림들은 주어진 종이를 정확히 가득채우며 정중앙에 위치한 채로 마무리된다. 기예라고 표현할 수 있는 이러한 그림은 일종의 두들링의 장르로서 표현된다. 옷주름, 갑옷의 비늘, 벽돌 등 사소하게 디테일한 펜선들은 화면에 농도를 마치 하나의 패턴처럼 균일하게 맞춘다. 또 하나의 특징은 매우 사실적인 인체 비례와 건물 표현, 그에 비해 익살스럽게 만화화되어 표현되는 얼굴 그리고 극단적으로 왜곡된 어안렌즈 구도다. 이러한 요소들은 만화 입시그림을 위한 그림 ‘상황표현’에 그대로 도입된다. 김정기의 그림은 만화입시미술과 함께 간다.
김정기는 펜선이 마치 흰 종이를 무찌르듯이 전개된다. 무언가 시각적 대상이 실제로 형성됨과 동시에 흰 종이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진다. 여백을 눈녹듯이 없애는 극단적인 맥시멀리즘의 기교가 공간을 장악한다. 한편 이러한 그림은 개별자들의 순간적인 조합으로 이루어지고, 전체적인 덩어리와 구도를 삭제시킨다.
‘적어도 빈 곳이 없게라가!’는 만화입시학원의 중요한 경구다. 그림에 대한 교육은 그때까지 무언가를 채운다라는 개념에 가까웠고, 이 채우는 방식에 있어서 더 가득 매우기 위해선 공간에 투시선을 부여하거나, 카메라 렌즈같은 왜곡을 주어서 공간을 확장하는 것이다. 어안렌즈의 넓은 화각은 같은 면에 더 많은 대상을 담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찌되었건 최종적으로 그림에서 느껴지는 쾌의 감정은, 그것이 어떤 스킬(인체비례, 구도, 디테일, 배경)을 경우하듯 가득 찼다! 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현재는 물리적인 종이보단 스크린을 다룬다. 현재 글을 쓰고 있는 이 지면도 스크린이다. 스크린은 무한하게 연결되고 확장되는 것으로 가정되지만 사실상 종이와 동일하게 정해진 표현의 한계선이 존재한다. 인스타그램 프로필보드 또한 어떤 대상을 인식하기 위한 몇초간의 지면처럼 동작한다. 이러한 지면이 채워지는 방식도 종이에 펼쳐지는 기교처럼 한계안에서의 최적화를 향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명확하게 그것은 텍스쳐를 상실한다. 즉 창작자가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과정으로서의 디테일들은 많이 삭제된다. 이제 디지털 스크린으로 대체된 지면에서 활동들은 경로의 우회를 요구할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창작에 관한 담론을 형성하고 말하기에 있어서 더 많은 텍스트들이 필요하다. 창작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비평과는 또 다른 성격의 텍스트로서 그 중간의 운동성을 보완하고 촉진하며 공동의 장을 만드는 계기를 형성한다.
ps.네이버 블로그에서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많이많이 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