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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오라비행 Aug 03. 2019

 어린 떠돌이의 공간들

목요슬

마산 주유소 옆 주택 2층(1999-2001) - 주유소에서 세 놓았던 주택 2층에 살았다. 산복도로에 있는 주유소로 그 동네라고는 아파트 한 단지와 우리집이 다였다. 1층에는 마당이 넓게 있었고 울창한 대나무숲을 지나가야 학교 가는 길이 나왔다. 학교와는 걸어서 40분이었지만(경사는 거의 60도에 육박하는 길이다) 그래도 집은 꽤 크고 채광이 좋았다. 금색 장식들이 붙어있는 현관이 멋있었고 거실 옆에는 작은 세발자전거로 어설프게 한 바퀴 돌 수 있는 넓은 테라스도 있었다. 집이 높은 지대에 있어서 테라스만 나가도 하늘이 엄청 넓게 보였다. 무더운 여름에는 고무 다라이 안에서 대밭소리를 들었다. 여느 풀빌라 못지 않았지.

이 시절에 나는 주유소 집 조카와 단짝이었다. 걔랑 걔의 남사친이 옆에 있는 아파트에 살았다. 걔랑 걔 남사친이랑 나는 학교 끝나면 항상 같이 집에 걸어왔다. 걔 남사친이 어느날 우리집 대문을 보고 ‘집이 좋아보인다. 잘 사나보다’라는 말을 했는데 걔가 그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 큰아빠 집에 세들어 사는거야’라고 했다. 팩트여서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아무튼 아빠가 사고치기 전까지 살았던 집인데 내가 유년시절 행복했다고 느꼈던 건 딱 이 집까지였다. 따뜻한 노랑색으로 기억되는 집.


 마산 반지하(2002-2003) - 시멘트 계단에 밝은 회색칠이 되어 있는 주택의 반지하였다. 긴 현관을 통과하면 거실이라고 부르기 뭣한 작은 공간이 있었고 그 왼쪽에는 큰 방 하나, 오른쪽은 작은 방과 부엌이 있었다. 부엌이 방처럼 문턱이 있었다. 반지하는 창문을 열 수 없어서 대신에 발을 쳐두고 대문을 열어두고 살았다. 옆집에 우리반 애가 살았는데 걔가 내가 집에서 스타크래프트 하는 소리를 엿듣고 반 애들한테 정예슬 스타크래프트 한다고 놀렸다. 여전히 학교와는 30분을 걸어가야 했었다. 어느 날은 대문을 열고 나가는데 그 주유소 남사친이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여기 대문은 예전 살던 집 현관문보다 초라했기 때문에 나는 걔 앞에 나가기가 부끄러웠다. 나는 나가려다 말고 다시 들어왔다. 대문 틈 사이로 걔가 여기를 빤히 쳐다보는 게 보였다. 내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가자 걔는 ‘너 여기로 이사 온 거냐고 물었다’ 나는 걔랑 그 후로 말을 하지 않았다.


마산 둥지어린이집 골목 제일 끝 집 1층(2004-2005) -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왔지만 사방에 다른 건물들으로 막혀있어 낮에도 컴컴한 집이었다. 창틀이 나무여서 열고 닫을 때마다 끼익거리는 나무 소리가 났다. 그 때 나는 중학생이 되었고 동생은 초등학생이었다. 엄마는 일을 하러 다니기 시작해서 집에 오면 아무도 없었다. 지금이나 그 때나 나는 칠칠맞아 열쇠를 잘 잊어먹었고 엄마가 올 때까지 현관문 앞에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엄마가 그 때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더라? 집처럼 엄마의 직업도 자주 바뀌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에 중학교를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근데 지 맘대로 해야하는 애랑 친구가 되서 맨날 아침마다 길에서 20분씩 걔를 기다렸다가 같이 학교에 지각했다. 그 때는 걔랑 틀어지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이 집의 색깔은 컴컴하고 무거운 회색이다. 부모는 본인들의 불행을 자식에게 잘 숨기는 사람들이었는데 여기에 살 때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여기 살면서는 소리죽여서 우는 소리도 잘 듣게 되었다.


 춘천 석사동 주택 2층(2006-2007) -  강원도 춘천이라니. 강원도라니? 북한 바로 밑이라니? 아빠의 사고로 야반도주하듯 이사 온 도시였다. 살면서 단 한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로 이사를 갔다. 전에 살던 곳은 한겨울에도 진눈깨비가 내렸는데 여기는 3월에도 함박눈이 내렸다. 처음 전학간 날, 나를 제외한 모든 전교생이 검정스타킹을 신고 있었다.(3월인데도!) 살게 된 집은 마음에 들었다. 동네가 주택가인 게 좋았다. 지금까지는 큰 길가, 뜬금없는 골목, 산 중턱에 집이 있었는데 집 앞에 하천이 흐르고 우리집 양 옆에도 다 주택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1층 주인집 마당의 아름다웠다. 우리집은 대문이 아니라 왼쪽에 있는 작은 쪽문으로 들어가야 했다. 가끔 대문을 통해 연두색 잔디를 밟고 들어갈 때면 기분이 너무 좋으면서도 주인집의 누군가가 집 안에서 이걸 보고 있을거란 생각에 두려웠다. 이 집은 방 두 개 거실 겸 주방으로 나뉘었다. 거실과 주방은 미닫이 문으로 나뉘었는데 자연스럽게 거실을 동생방으로 만들었다.(방이라고 해봤자 책상 놓은 게 다임) 덕분에 나는 드디어 혼자 방을 쓸 수 있었다. 반지하에서는 잠을 자도 무거운 느낌이었는데 이 집은 채광이 좋아서 자고 나면 개운했다. 어떤 주말엔 오후 5시까지 잠만 잤다. 그러고 일어나면 뭐든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첫번째 주유소 주택 이전에만해도 이사는 4번정도 더 있었다. 다만 기억이 잘 안나 적지 못했다. 춘천에 이사온 후에도 두 번의 이사를 더 했고 내년에 또 이사를 갈 예정이다. 석사동 2층집에 살 때만 해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노란색의 밝고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나는 자주 불행하여 자기 전마다 내 삶을 리셋시키는 수백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냈다. 다행히 다 실현되지 않았고 시간이 흘러 나는 드디어 집에서 나와 살기 시작했다(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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