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윤 또는 채소김
주기적인 이동생활을 했던 호주에서의 주거는 모두 집주인(마스터)이 구한 방에 여러 명이 같이 사는 ‘쉐어하우스’ 방식이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곳은 세 곳이다. 멜번의 아파트는 거실이 있었고, 거실 한 켠에는 ‘거실 쉐어(거실 한 켠에 커튼을 치고, 생활하는 방식)’를 하는 공간이 있었다. 방은 2개였다. 한 방은 4인실, 다른 한 방은 2인실이었다. 여러 방 중 내가 들어간 방은 2인실이었다. 함께 했던 분은 곧 귀국을 앞둔 상태였다. 한편 나는 새로 터를 잡고, 여기저기 구직을 하다가 실패해 의기소침하던 때였다. 그 때마다,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주고, 옆에서 응원도 한가득 해주었던 고마운 분. 방은 침대 두 개와 옷장 두 개가 놓여있었다. 기숙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였다. 다른 점이라면, 내가 직접 해 먹을 수 있는 요리 공간과 휴식할 수 있는 거실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통금 시간이 없다는 점이었다. 한편 그 곳에서의 삶은 점차 익숙해졌다.
브리즈번 근처 농장에서 머문 집은 목적지향적인 곳이었다. 일했던 농장과 근거리에 있으며, 농장주가 관리하는 집이었다. 한 방에 2층 침대가 2개씩 들어가 있었고, 집에 머무는 사람들은 모두 해당 농장에 출근하는 사람들이었다. 하루 12시간 넘게 양파와 당근의 등급을 분류하는 일을 마치고 들어가 잠만 자기 바빴던 그 곳, 주 5일 노동이 끝난 휴일은 광란의 파티 공간이 되었던 그 곳. 그 곳에서도 나는 특유의 부적응 능력을 발휘하여 어정쩡하게 술을 마시고 대화를 끊곤 했던 거 같다.
퍼스는 마지막으로 터를 잡고 일했던 곳이다. 그 곳에서는 일하면서 알게 된 한 부부 집의 거실 한 켠에서 지냈다. 책장으로 가벽을 만들고, 메트리스를 들여 머물 공간을 만들었다. 그 때는 이제 곧 떠난다는 마음에 큰 짐들은 이미 처분하거나 본가로 보낸 상태였다. 남은 건 18리터짜리 백팩 하나. 홀가분했던 만큼 그 작은 공간은 잠시 머물기에 딱이었다. 사부작사부작 일기도 끄적이고, 지나온 나날들의 사진들을 보면서 호주에서의 삶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 곳을 떠나기 며칠 전 낮, 아늑했던 그 공간에서 친구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호주에 오기 직전에 오랜만에 만나서 돌아오면 꼭 다시 보자고 했다.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었는데. 돌아가면 늘 그렇듯 익숙한 동네에서 익숙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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