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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오라비행 Sep 26. 2019

The Prisoner’s Song

[채소김] 연극 오펀스 ‘내게 천사의 날개가 있다면’


오, 내가 사랑할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어
Oh I wish I had someone to love me,


나를 자신의 사람으로 불러줄 누군가

Yes someone to call me their own

오, 나는 누군가와 함께 살기를 바란다
Oh I wish I had someone to live with,


왜냐하면 나는 혼자 사는 데 지쳤거든

Cause I'm tired of living all alone

오늘 밤 달빛에서 만나줘
Please meet me tonight in the moonlight

오늘 밤 혼자 만나줘
Please meet me tonight all alone

슬픈 이야기가있어
For I have a sad story to tell you

들어 본 적 없는 이야기
It's a story that's never been told

(내일은 새로운 감옥으로 옮겨 질거야
(I'll be carried to the new jail tomorrow

불쌍한 내 사랑을 떠나)
Leaving my poor ol' darling alone)

내 주위에 차가운 감옥 바가 있어
With the cold prison bars all around me

그리고 돌 베개에 내 머리
And my head on a pillow of stone

내게 천사의 날개가 있다면
Now if I had the wings of an angel

이 감옥 벽 위로 나는 날아갈텐데
Over these prison walls I would fly

불쌍한 사랑의 팔로 날아갈거야
And I'd fly to the arms of my poor darling

그리고 거기서 기꺼이 죽을 텐데
And there I'd be willing to die



 주말에 본 연극, 오펀스. 여운이 며칠 내내 이어져간다. 내가 헤롤드라면, 내가 트릿이라면, 내가 필립이라면. 그 누구든, 나는 그저 격려받고 싶고, 누군가를 격려하고 싶다. 나를 자신의 사람으로 불러줄 이가 있다면, 내가 누군가를 나의 사람으로 불러줄 이가 있다면. 그렇게 친밀하고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맺고 있다면 얼마나 소중한 삶일까. 그러한 삶을 살고 있을까. 지나온 삶의 흔적에 그러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손에 꼽다. 그래서 더 소중한 사람들. 동시에 문득 나의 사람 또는 내가 너의 사람이라는 것이 죄여오는 속박감이 얼마나 지난하고 버거운지가 떠오르면서 다가오는 헛헛함.


  나는 왜 ‘너’를 갈망했고 여전히 갈망할까. ‘너’는 내게 칼보다 더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나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르고 또 찌르고 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알았나보다. 그게 우리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서로를 찌르고 후벼내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없다. 누구도 나의 가장 부끄럽고 아픈 곳을 알지 못한다. 덕분인지 숨은 쉬고 있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때의 저릿했던 자극들이 그립기도, 두렵기도 하다. 그렇게 오늘도 지나간다.

 

 한 때는 얘기했다. “너의 지하를 보고 싶다,” “그림자까지 사랑하고 싶다.” 관계에 대한 망설임이 없었던 그 때, 미숙했고 순수했던 그 때의 관계맺음이 고맙고 그립다. 동시에 무섭다. 나의 지하가 얼마나 추하고, 못났는지 직시했던 나날의 연속이었기에. 다시 그러한 지하, 그림자를 마주하고싶지 않은 지금이다. 동시에 그러한 관계를 맺고 싶다. 너에게 받았던 무수한 애정을 그저 고마움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너에게 주었던 -너의 애정에 비하면 한 줌 같았을지 모를-나의 진심을 조금은 더 아낌없이 펼치고 싶다.


 서글프다. 이제 너가 없다. 어쩌면 너에게도 나에게도 필요했던 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서로를 난도질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의 너를 그리고 나를 함께 격려해주고 어깨를 어루만져주는 것이었을텐데. 알기까지의 시간이 참 오래 지났다. 격려해줄 너도, 어깨를 어루만져줄 너도 없다. 격려해주는 너도 어깨를 어루만져주는 너도 없다. 너를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너를 만나고 싶다. 어디에선가. 너가 꾸는 추하고 못나고 비루한 꿈 속에서도 함께 그 추함과 못남과 비루함을 따뜻한 미소로 웃으며 함께 하고 싶다. 내가 꾸는 추하고 못나고 비루한 꿈속에서도 함께 그 추함과 못남과 비루함을 따뜻한 미소로 웃으며 바라봐 줄 너를 만나고 싶다. 꿈에서 깨어난 너에게, 그리고 나에게 ‘너는 너로서 잘 해왔다’고 격려해줄 수 그런 관계를 우리는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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