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바이드 앤드 룰의 역사
요즘 김어준 총수가 보수 진영의 디바이드 앤드 룰(디바이드 앤 룰)을 알리고 계몽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강조하고 있다. 필자도 공감하는 바가 있기에 디바이드 앤드 룰에 관한 글들을 써보고자 한다. 우선 그 첫 번째로 디바이드 앤드 룰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알아두어야 할 것은 디바이드 앤드 룰은 매우 오래된 전략으로, 그 역사가 깊고 사례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인류, 특히 집권세력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사용해 왔고, 인류의 특성상 그 전략이 잘 맞아 떨어지고 비용 대비 효과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끊임없이 활용되어온 것이다. 첫 번째로 그 역사를 짚는 이유도 이것이 신조어나 음모론이 아니라 정치학에서 아주 일반적인 내용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 또는 Divide and Conquer)라는 말은 기원전 300년대에 활동했던,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300년 전의 인물인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처음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로, 알렉산더가 대제국을 건설하는데 필요한 토대를 닦은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그리스의 약소국이었던 마케도니아를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 놓았는데, 그 과정은 역경의 연속이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강대국 테베에 볼모로 잡혀 있었지만 그곳에서 외교, 정치를 배우는 수완을 발휘한다. 마케도니아로 돌아와 주변 강대국들과 때로는 외교적인 동맹을, 때로는 무력에 의한 수비와 정복을 병행하며 스파르타를 제외한 대부분의 그리스 국가들을 휘하에 둔 대단한 전략가였다. 알렉산더에 의해 명성을 떨친 마케도니아 군의 팔랑크스 전술도 이 필리포스 2세가 구체화시킨 것을 알렉산더가 계승한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군사적, 정치적 기반은 그 아버지였던 필리포스 2세에 의해 구축된 것이다.
그리스의 수많은 국가들에 둘러싸여 생존조차 어려웠던, 그래서 어린 시절을 타국에서 인질로 생활한 그가 마케도니아를 일약 강대국으로 올려놓은 데에는 이 디바이드 앤드 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수많은 적을 상대하면서도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서로 이간질하고 분열시켜 서로 싸우게 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전술은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하였고, 그는 전쟁을 하기 전 항상 상대방을 분열시켜 서로 견제하게 하여 자신이 가진 군사력을 자신이 싸워 이길 만한 국가에 집중할 수 있게 하였다. 이 디바이드 앤드 룰 전략을 라틴어로 dīvide et imperā 라고 불렀고, 이것이 후대에 많은 학자들에 의해 일반 명사화된 것이다.
디바이드 앤드 룰은 정치학, 사회학에서 아주 일반적인 용어인데, 그것은 이 전략이 매우 많이 활용되어 왔고 거의 대부분 효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유명한 통치자들은 이 전략을 다 사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는 몇 가지 예만 들도록 하겠다.
로마는 대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디바이드 앤드 룰 전략을 모든 지역에 사용했다. 한정된 군사력과 물자로 대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이들은 정복한 지역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단합하여 거대한 세력이 형성되는 것을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강력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정복한 지역에는 행정장관을 두어 다스리게 하면서 행정구역 분할이라는 명분 하에 국토를 찢어 각각에 다시 지도자를 세우는 방식을 즐겨 사용하였다. 즉 로마 중앙에서 직접 파견하거나 행정장관으로 활용할만한 인물을 로마 직할의 지역 장관으로 임명하고 해당 지역을 다시 나누어 분봉왕을 세우는 형태로 디바이드 앤드 룰을 적용한 것이다.
이 시기 대표적인 인물은 성경에서도 악역으로 등장하는 헤롯 가문이다. 헤롯 가문의 시조인 헤롯 대왕은 아버지 안티파테르가 유대인이 아닌 자로 팔레스타인의 유지였는데, 카이사르의 이집트 원정 때 자신의 군대를 파견하여 전공을 올려 유대 지역의 행정장관으로 임명되었다. 헤롯 대왕은 아버지가 암살당한 후 정적들을 제거하고 로마로부터 후임 행정장관의 직을 하사 받는다. 역사는 그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지독하게 가혹하였고 로마에게는 역겨울 정도로 아첨했던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이 헤롯 대왕은 자신의 아들들을 위 지도의 행정구역에 각각 분봉왕으로 임명했는데, 성경에 나오는 분봉왕 헤롯(또는 헤롯왕)은 헤롯 안디오로 그의 차남이며 갈릴리 지역의 분봉왕이었다. 세례 요한을 죽이고 예수를 심판한 후 책임을 피하기 위해 로마의 총독에게 보낸 이가 바로 그이다.
이러한 배경만 보아도 디바이드 앤드 룰이 어떻게 작용했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민족성이 강한 유대인들의 최고 통치자로 로마에 충성하는 이방인을 세우고, 그 행정장관(실질적으로는 현지에서 왕 노릇을 하였다)의 아들들을 각 지역에 분봉왕으로 임명하여 한 이방인 가문에 의해 유대인들을 통치하게 한 것만으로도 이미 유대인들의 분노와 분열을 조장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유대인은 이방인 왕에게 충성하며 녹봉을 받고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그들에게 아첨하고 같은 민족을 감시하고 괴롭히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로 분리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 행정장관과 분봉왕들은 유대인에게 당근으로 성전 건축을 독려하지만 한쪽으로는 예루살렘과 갈릴리해 등의 민족성이 느껴지는 지명을 모두 로마식으로 바꾸고 로마 권력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유대인들을 강제동원하여 항구를 짓고 당시 로마인 권력자의 이름을 붙이는 등의 행동을 한다. 유대인들 중 반 로마파는 이에 따라 다시 성전은 그래도 건축하는 것이 맞으니 그에 협조해야 한다는 파와 이방인의 손으로 성전을 건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파로 갈라진다. 이런 식으로 친 로마파와 반 로마파, 반 로마파는 다시 성전 건축파와 반대파로 갈라지며, 위에서 이를 지켜보는 권력층은 다시 사람들을 풀어 이들의 갈등을 조장하고 위험해 보이는 자(리더쉽을 갖고 유대인을 결집해 자신의 권력에 도전할 만한 자)를 색출하여 미리 제거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하면 아주 효과적이고 값싼 방법으로(돈이 많이 들고 자칫하면 자신들의 권력 기반이 약해질 수 있는 정규군을 동원하지 않고도) 유대인을 통치할 수 있다.
일본이 조선을 통치한 방식을 떠올리면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거의 같을 것이다. 행정장관을 일본인 총독으로, 친 로마파를 친일파로, 반 로마파를 독립운동파로 대입하면 그대로 맞아 떨어진다.
역사상 가장 넓은 영역을 차지했던 몽고 역시 디바이드 앤드 룰을 쓴 대표적인 사례이다. 로마 제국과 넓이와 인종, 종교 등의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광대한 영역을 정복하고 통치한 그들은 디바이드 앤드 룰 전략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인들은 사대주의에 물든 역사 교과서 등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몽고가 지배력이 약하고 문화적 수준이 한족보다 떨어져 그들에게 동화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서양에서 보는 시각은 완전히 다르다. 왜냐하면 몽고 제국이 몰락한데 중국 한족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고 그럴 능력도 없었으며, 애초에 몽고 제국의 영토 중 한족의 영토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세게적인 석학들이 몽고 연구서들을 출간할 정도로 몽고 제국의 통치술과 군사력에 대한 연구는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몽고는 당시 송나라 통치지역보다 훨씬 넓었던 중앙아시아 지역과 결속력이 강한 송나라를 서로 견제하고 분열시키기 위해 송나라 지역에는 중앙아시아의 행정관을, 중앙아시아와 이슬람 지역에는 송나라 행정관을 교차 파견하여 각각 그 지역을 통치하고 자신들에게 보고하게 한다. 로마가 1천년 전 유대 지역에 행했던 방식과 같다. 이들 행정관의 자질은 능력보다는 얼마나 해당 지역이 단결하여 저항하지 못하게 이간질하고 분열을 잘 시키며,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위해 얼마나 몽고에 충성하는지가 기준이었다. 능력 있고 양심 있는 자가 이민족이어도 같이 잘 살아야지 내가 능력을 발휘해서 이 지역을 발전시켜야지 하며 일을 열심히 하면 역효과이기 때문이다. 적당히 머리가 좋지만 일은 잘 못하거나 하기 싫어해서 통치하는 지역이 발전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부를 위해 살인도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자가 가장 적임자인 것이다. 이런 자를 파견하면 당연히 그 나라 백성들의 고혈을 착취하여 자신의 부를 챙기고 하인들을 부리며 예쁜 여자들과 즐기면서 살면서 그 부의 일부를 몽고 제국에 헌납하고 백성들을 분열시켜 무능력하게 만들 것이다.
인도는 당시 상당히 발달한 문명과 경제력을 가진 나라였다. 그러나 영국의 식민 지배로 백성들이 착취당하고 막대한 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한편 친영파에게 쏠리자, 인도인들은 사진처럼 극심한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게 되었다. 그 식민화의 과정은 생각보다 쉬웠는데, 강대했던 인도가 무굴 제국이 약화되면서 스스로 분열의 길을 선택했고, 영국이 여기에 디바이드 앤드 룰 전략을 적용하여 큰 돈과 군사력을 들이지 않고 인도 전역을 식민지화 할 수 있었다.
18세기 초 무굴 제국의 황제 아우랑제브가 죽자 인도 각지에서 지방 세력들이 제국에 반기를 들고 독립을 시작했다. 무굴 제국은 수도인 델리와 그 주변을 차지한 작은 나라가 되었고, 각지에서 일어난 지방 영주들도 당연히 무굴 제국과 같거나 작은 소국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영국은 인도에 동인도 회사를 통해 세계 무역을 하면서 이러한 정세를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이 기회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무굴 제국을 상대하기는 어려웠지만 이미 민족적, 종교적, 정치적인 이유로 분열된 인도를 먹기는 훨씬 쉬웠던 것이다. 영국은 본격적으로 작업에 착수해 우선 1757년 경쟁자였던 프랑스를 몰아내고 드디어 디바이드 앤드 룰을 시행하기 시작한다. 영국은 인도 각지의 지방영주들을 격파하거나 흡수해 나갔다. 이런 식으로 해서 19세기 중반 영국은 인도의 거의 모든 지역을 점령하였다. 인도 전역을 점령하는데 100여년이 걸렸고, 영국의 경제 착취와 분열책, 이간책을 인도인들이 모르지는 않았지만 각지에서 자신의 권력과 부를 누리고 있던 각 지방 영주와 그를 비호하는 세력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친영파가 되거나 홀로 저항을 외치다 영국 군사들에게 짓밟혀 갔다.
영국의 식민지 점령과 통치 방식은 일본을 포함한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많은 참고가 되었고 그 방식도 다양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란 내용이다. 그러나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하면 인도인들이 제1차 독립전쟁으로 부르고 통상 세포이 항쟁이라 불리우는 사건을 꼽을 수 있다. 세포이 항쟁(1857-1858)은 인도인 용병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영 항쟁이다. 영국은 동인도 회사를 통해 인도를 통치하고 있었고 동인도 회사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세포이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서 고용한 인도인 용병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 항쟁은 인도 독립 운동의 시작이라고 여겨지는데, 인도는 이 세포이 항쟁으로부터 무려 90년 후인 1947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전투 용병들이 일으킨 항쟁이었으므로 처음부터 무력을 동원한 저항이었고, 영국 입장에서 이 항쟁이 인도 전역으로 퍼지면 사태 진압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다. 당시 영국은 강대국이었지만 인도는 넓었고 병력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국은 디바이드 앤드 룰을 적용하여 인도를 다시 한 번 분열시킨다. 영국은 각국에 사절을 보내 친영파 국가와 권력자들에게 영국을 지원하거나 반란을 진압하면 현재의 권력과 부를 유지할 수 있으며 이 사태가 커져 영국의 통치력이 약화되면 당신들도 영국과 함께 제거될 것이라고 압박과 절충을 시도한다. 많은 영주들은 영국 여왕에 충성을 맹세하고 영국을 지원하기로 하는 한 편, 인도 백성들에게 이 반란이 실패할 것이며 실패하면 가담했던 자들은 죽거나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며 분열책을 시전한다. 그리고 당연히 언론을 통제하여 세포이 항쟁이 일어난 지역에서 먼 곳에서는 이것이 큰 사건이 아니라고 하거나 아예 그러한 소식을 알리지 않았고, 항쟁이 일어난 지역과 주변 지역에서는 이 반란이 금방 제압될 것이고 가담한 자는 큰 벌을 받을 것이라고 역설한다. 디바이드 앤드 룰에 취약한 사고방식을 가진 인도 백성들은 이 찌라시에 현혹되어 반란에 가담하지 않고 협조하지 않는 자가 늘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세포이 항쟁은 인도 전역으로 퍼져나가지 못하고 항쟁이 지속되는 동안에도 벵골, 뭄바이, 마드라스와 같은 지역은 아예 어떠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평화를 즐겼다. 일부 영주는 영국에 자신의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동인도 회사를 지지할 뿐만 아니라 병력을 동원하기도 하였다. 또 다른 많은 지역의 토후국들은 항쟁에 가담하지 않고 관망하며 정세가 어떻게 흐를지를 살폈다.
그 분열의 양상은 위 지도에서 확연히 알 수 있다. 지도에서 짙은 청색에서 옅은 노란색 순으로 세포이 반군지역, 영국을 지원한 지역, 영국 지지 지역, 항쟁의 영향을 받은 지역, 중립지역, 별 영향을 받지 않은 지역이다. 반군지역 바로 주변 지역이 중립이거나 영국 지지지역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역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렇게 영국은 디바이드 앤드 룰 전략으로 효과적으로 반군의 확산을 차단시키고 서로 견제하게 하여 분열을 확장시켰고, 이들의 세력이 약화되기를 기다리며 전면전을 피했다. 그리고 1년 후 이 독립전쟁은 진압되고 관련자들은 대포에 매단 채 포탄을 발사하여 육체를 공중분해시키는 방식으로 공개 처형되었다.
영문으로 이 항쟁을 검색하면 일반명사가 Indian rebellion in 1857임을 알 수 있다. 인도 역사학자들은 1차 독립전쟁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세포이 항쟁이 일반명사인 것은 다분히 식민지배계급의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그 의미와 규모를 축소한 것이다. 영국 용병으로 재직했던 세포이들이 이 항쟁을 시작한 것은 맞지만 정치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었고, 향후 90년간의 독립 운동의 시발점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미국은 지금 현재의 패권 국가이다. 그 중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우는 중동은 막대한 유전을 보유하고 있어 미국으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다. 단 지리적으로 멀고 걸프전과 이라크전 등을 통해 과도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재미보기 어려운 지역임을 경험했으므로, 미국이 여기서 디바이드 앤드 룰을 쓸 것임은 자명하다.
2008년 미국의 랜드사(RAND Corporation)는 미 육군에 중동 지역에서 시아파와 수니파의 분쟁을 활용한 디바이드 앤드 룰 전략을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2008년은 2003년 시작해 2011년 12월 미군의 철수로 막을 내린 이라크 전쟁(작전명 Operation Iraq Freedom)이 한창 진행 중인 때로, 예상과 달리 전쟁이 장기화되고 전선이 고착 상태에 빠지면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비난 여론이 들끓던 때였다. 이 전쟁에서 실익을 거두기 어렵다고 판단한 미국이 다른 방법을 모색하던 때였다. 그리고 이때 랜드사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디바이드 앤드 룰 전략을 직접 군에 제안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랜드사의 정체에 주목해야 한다. 이 회사는 회사라는 명칭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특이한 형태의 조직이다. RAND는 Research ANd Development의 약자로, 표면적으로는 미 육군의 싱크탱크로, 미 정부, 익명의 개인 및 회사 기부자, 대학 등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비영리 단체로 되어 있다. 이것만 봐도 수상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그 역사를 살펴보면 이 조직의 실체를 잘 알 수 있게 된다. 이 조직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12월 전쟁부(War Department, 미 정부 조직 중 하나로 1789년 설립되어 1949년 국방부로 개명되었다. 즉 현 미 국방부의 전신이다) 출신 관료들이 시작한 RAND 프로젝트가 1948년 지금의 형태로 자리잡은 것이다. 직원은 약 1800여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 육군 뿐만 아니라 민간기업을 포함한 각종 조직에 컨설팅을 해주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회사의 형태를 한 미 국방부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조직이며 국방부가 대놓고 하기 힘든 사업이나 정부가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는 등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아마도 정부가 도덕적, 윤리적 문제를 일으킬만한 일을 대신 해주는 역할도 클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랜드사가 미세하게 보면 다르지만 크게 보면 하나의 민족, 하나의 신앙, 하나의 역사를 공유하는 중동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미국에 국익을 가져다줄 전략으로 디바이드 앤드 룰을 전격 제안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미 육군의 자문기관으로 되어 있으므로 육군에 제시한 전략이라고 되어 있지만, 육군이 정치적, 외교적, 사회적, 여론적으로 공작과 네트워크와 마케팅과 홍보가 필요하고 경제적 이권이 크게 걸린 디바이드 앤드 룰 전략을 실행할 조직은 아니므로, 당연히 미 정부에 이 전략을 제안한 것이며, 어쩌면 미 정부가 대놓고 분열책을 쓰면 추후 비난 여론이 쇄도할 것을 감안하여 역으로 랜드사가 제안하는 형태를 지시했을 수도 있다.
https://www.rand.org/content/dam/rand/pubs/monographs/2008/RAND_MG738.pdf
랜드사의 디바이드 앤드 룰을 활용한 중동 전략은 심지어 그들의 홈페이지에 풀버전이 올라와 있다.
Unfolding the future of the long war라는 230여쪽에 달하는 이 보고서에서 이들은 매우 구체적으로 중동 국가들과 민족들의 분열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렇게 버젓이 세상에 공개하는 것은 이건 알아도 못피한다는, 수많은 역사적 사례를 통한 자신감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 중 핵심이 되는 부분만 여기서 번역, 소개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원본을 보시기 바란다.
Divide and Rule
Divide and Rule focuses on exploiting fault lines between the various Salafi-jihadist groups to turn them against each other and dissipate their energy on internal conflicts. This strategy relies heavily on covert action, information operations (IO), unconventional warfare, and support to indigenous security forces. Divide and Rule would be the obvious strategy choice for the “Narrowing of Threat” trajectory as the United States and its local allies could use the nationalist jihadists to launch proxy IO campaigns to discredit the transnational jihadists in the eyes of the local populace. In the “Holding Action” trajectory, Divide and Rule would be an inexpensive way of buying time for the United States and its allies until the United States can return its full attention to the long war. U.S. leaders could also choose to capitalize on the “Sustained Shia-Sunni Conflict” trajectory by taking the side of the conservative Sunni regimes against Shiite empowerment movements in the Muslim world.
디바이드 앤드 룰의 핵심은 다수의 살라피-지하디스트 그룹들을 서로 갈등하게 하여 그들의 에너지를 내부 분쟁에 소비하게 하는 것이다. 이 전략은 비밀 공작, 첩보 활동, 비정규전, 현지 비정규군 지원 등에 크게 의존하는 형태이다. 디바이드 앤드 룰은 미국과 동맹국들의 "위협의 감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확실한 전략으로, 국수주의 지하디스트들로 하여금 초국가주의 지하디스트들을 대상으로 첩보전을 펼치게 하여 결국 그들간의 분쟁을 통해 서로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 "행동 중단" 목표를 위해서도 디바이드 앤드 룰은 저렴한 비용으로 미국과 동맹국들에게 미국이 다시 중동에 최대한의 역량을 집중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디바이드 앤드 룰 전략을 선택함으로써 수니계 보수파 정권과 시아파 권력을 충돌하게 하여 중동 지역에서 "시아파-수니파 갈등의 유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이 부분을 원문과 함께 소개하는 이유는 이 문장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에는 디바이드 앤드 룰의 핵심이 모두 담겨 있다. 첫째, 갈등을 조장하여 서로 싸우게 하면 에너지가 소비되어 자신들에게 대항할 힘을 잃고 결국 서로 싸우다 지쳐 손도 안대고 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둘째, 비용 대비 효과가 매우 크다. 무식하게 전면전을 하는 것보다 주로 정보전을 통해, 그리고 약한 쪽을 지원하여 지속적으로 싸울 힘을 불어넣음으로써 싼 값으로 정세를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 셋째, 지속적인 내부 갈등을 유지하게 하여 중동 전체의 세력을 약화시켜 결과적으로 미국이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디바이드 앤드 룰은 인류가 수천년간 활용해온 것으로 비용 대비 효과가 아주 뛰어난 전략이다. 이 글에서는 역사적으로 패권을 쥔 제국들을 중심으로 사례를 들었는데, 그 이유는 이 전략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나온 것이며 대규모로 꾸준히 실행되어 왔음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한국은 그 스케일이나 전략 면에서 매우 저급하고 찌질한 규모로 진행되어 왔지만 역시 오랫동안 실행되어 왔다. 디바이드 앤드 룰은 주로 강자나 집권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으로, 결집하면 위협이 되는 상대를 분열시키고 서로 싸우게 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저렴한 비용으로 극대화시키는 방법이다. 인간은 눈 앞의 이익에 눈이 멀게 마련이고 당장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일이건 하게 되어 있다.
필자가 볼 때 한국인의 경우 조선시대 극도의 성리학 중심주의의 영향으로 도덕을 중시하고 싸움을 피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러한 이들을 분열시키기에 디바이드 앤드 룰만큼 싸고 효과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3대 성인급의 도덕을 추구하는 것을 지상 유일의 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도덕적 결함을 들추어 내어 분열을 쉽게 조장할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도덕적 순수성을 추구하는 순진한 자들에게 어떤 정치인이나 영향력 있는 인물이 갖고 있는 약간의 도덕적 결함이나 더러움을 알려 자신들의 라이벌이 될 수 있는 유력 정치인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게 할 수도 있다.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서구 사회보다 실리와 거리가 먼 도덕성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야말로 디바이드 앤드 룰을 활용하기 매우 좋은 장소이다. 말만 하고 소문만 내면 서로 싸우고 서로를 헐뜯고 욕하며 스스로 자신들의 세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비용도 매우 적게 든다. 그러니 국민은 개돼지라 밥만 먹을 정도로 살게 해주면 서로 싸우고 헐뜯으며 자신들의 권력에 도전하지 않으니 정치하기 편하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국인이 얼마나 실리 추구에 약한지는 그렇게 도덕성을 갖고 욕하고 싸우는데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면서도 정작 국가 청렴도는 180개국 중 51위 수준이며, 부패인식지수 역시 52위이다. 그 싸움이 과연 한국의 국가 청렴도와 부패인식지수를 높이는데 어떠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부패지수를 개선할 수 있는 자들을 끌어내리는데 사용되고 있는 것인지 정도는 판단을 해야 하지 않을까?
http://www.ytn.co.kr/_ln/0103_201802220552215563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1/24/0200000000AKR20180124139500001.HTML?input=1179m
국민들로서는 큰 그림에서 이것이 누구와 누구의 싸움인지, 누가 싸움을 잘 하고 결집해야 자기에게 유리해지는지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김어준이 소리 높여 디바이드 앤드 룰을 강조하는 것도 정확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필자가 볼 때 한국은 국부를 거머쥔 상위 0.1%와 그들의 자손들 및 측근들로 이루어진 상위 1%, 그들에게 법적, 회계적, 의학적 전문지식과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기사를 써주고 그들이 원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많은 돈을 버는 상위 10% 대 하위 90%의 대결 구도를 갖고 있다. 내가 하위 90%에 속한 자라면 누가 싸움에서 이겨야 할지 금방 판단이 될 것이다.
필자 생각에 진영으로 보면 진보 대 보수의 싸움에서 진보의 유력인사나 단체 중 하나가 도덕적 결함이 있다고 해서 1000년 넘게 한국의 권력과 부를 독차지하고 나라를 팔아서도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지키며 내 나라 찾겠다는 백성들을 외세를 동원해 죽여온 보수 세력과 나 대신 싸워줄 사람을 욕하고 지지를 철회한다면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까 한다. 모든 장수가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장수는 싸움을 잘 하면 그만이고 일 잘하면 금상첨화다.
디바이드 앤드 룰이 잘 작동된 곳은 로마시대 약소국이었던 이스라엘, 제국주의 시대 갖은 착취를 당한 인도, 현재 산유국을 제외하면 못사는 나라 투성이인 중동 지역이었다. 그곳의 백성들이 세련되고 전략적이며 지적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디바이드 앤드 룰을 활용하는 자들은 그 전략에 보기 좋게 당하는 자들을 어떤 생각으로 바라 보았을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