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Shoplifters, 万引き家族), 그리고 고레에다 감독
6월 중순 일본 극장에 무심코 갔다 평점이 높고 시간이 맞는데다 심지어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라서 바로 보았던 어느 가족(万引き家族). 직역하면 도둑질 가족, 의역하면 혈연관계 없이 도둑질로 생계를 이어가는 가족이 되는 이 영화는 극장에서 보면서도 인간의 어두운 면과 따뜻함, 경제 공동체 성격으로서의 가족이라는 사회단위를 잘 해석해낸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 상영이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71회 깐느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Palme d'Or)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고, 36회 뮌헨국제영화제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올해 안에 다른 영화제에서의 수상도 기대된다.
깐느에 다 같이 가서 찍은 이 사진은 국제영화제에서 찍은 사진 치고는 자연스러워 좋아 보이고, 영화를 볼 당시의 감정을 되살아나게 하기 충분하다. 이들이 어느 가족의 구성원들인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래 역할은 필자가 임의로 구분한 것으로, 실제 가족과는 꽤 거리감이 있으면서도 인간애로 이어지는 끈끈함이 공존하는 관계이다.
아빠 역할 - 시바타 오사무(柴田治). 도쿄에서 주로 공사장 일용잡부로 일한다.
엄마 역할 - 시바타 노부오(柴田信代). 세탁공장의 계약직 근로자.
이모 역할 - 시바타 아키(柴田亜紀). JK매장에서 사야카라는 가명으로 돈을 번다. JK는 일본어의 女子高校生(Jyoshi Koukousei)의 줄임말로, JK 매장이란 여자고등학생이 성적인 역할을 하며 돈을 버는 매장을 말한다.
아들 역할 - 시바타 쇼타(柴田祥太).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이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고 아빠 역할인 오사무와 팀을 이뤄 슈퍼마켓 등에서 생필품을 훔치는 것이 주요 일과이다.
딸 역할 - 유리(ゆり). 유치원~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나이로, 오사무와 노부오가 우연히 부모로부터 학대당하는 장면을 본 후 아이가 상처 입은 상태로 혼자 집에 있는 것을 업어 온다.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시바타 집에서 지내며 쇼타와 문방구와 슈퍼 등에서 물건 훔치기를 배운다.
할머니 역할 - 시바타 하츠에(柴田初枝). 남편과 오래전 이혼하고 연금으로 생활하는 일명 연금생활자이다. 극중 고령으로 사망하지만 나머지 가족들이 연금 수령을 위해 집에 구덩이를 파 묻고 사망신고를 하지 않는다.
이상 6명이 이 영화의 주인공들로, 누가 주연이라고 할 것 없이 각자의 스토리가 영화 안에서 이야기되어진다.
이 영화의 각본, 편집, 감독을 모두 맡은 것은 유명한 고레에다 감독이다. 풀네임은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로, 1962년생이다. 와세다대학 제1문학부에 진학하지만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의 페델리코 펠리니 감독(Federico Fellini)의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아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한다. 빌딩 경비, 서점 알바 등을 하며 모은 돈으로 시나리오집을 사서 읽으며 시나리오에 대한 공부에도 열중했다.
그는 곧바로 영화에 데뷔하지 않고 1987년부터 다큐멘터리 제작사에서 일하기 시작, 많은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한다. 다양한 작품 제작에 참여하며 초등학교 교육 관련 다큐멘터리로 ATP상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인간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의 흐름과 기법을 영화에도 응용하게 된다. 그의 영화들이 잔잔하면서도 보통 사람들의 삶을 깊이 있게 보여주는 것도 이러한 그의 이력과 사고방식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는 1995년 환상의 빛(幻の光)으로 데뷔, 같은 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골든 오셀라상을 수상한다. 두 번째 작품인 원더풀 라이프로 낭트 3대륙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미국 200개 상영관을 비롯 30개국에서 상영되며 독립영화로서 이례적인 흥행까지 성공한다. 2001년 DISTANCE로 깐느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였고, 2004년 누구도 모른다의 주인공인 야기라 유우야(柳楽 優弥)가 57회 깐느 영화제에서 사상 최연소이자(야기라가 1990년생이므로 수상 당시 15세였다) 일본 최초로 최우수 남자배우상을 수상한다. 이 영화는 1988년 일본 도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스가모 아동 방치사건을 본 고레에다가 15년 동안 각본작업을 하여 영화화한 것이다.
스가모 아동 방치사건은 당시 일본에 큰 충격을 주었던 사건으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하며 아이를 낳은 후 사라진 아빠와 남자들과 사귀며 계속 아이를 낳아 아이가 5명이 되자 애인과 동거하기 위해 떠난 엄마에 의해 버려진 4남매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엄마는 출생신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아이 중 하나가 죽자 방부처리를 하여 벽장에 숨기고, 이걸 본 장남이 엄마가 떠난 후 친구들과 장난삼아 때려 죽인 어린 동생의 시체를 비슷한 방법으로 처리하다 냄새가 나자 친구들과 다시 모의하여 시체를 여행가방에 넣어 공원에 유기하는 등의 행각을 벌였다. 주민이 어른이 없는 것 같다고 경찰에 신고해 복지상담원이 집에 방문하면서 밝혀지게 된 이 사건은 고레이다에 의해 영화로 재탄생했고, 세계적으로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2008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만든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보통 가족들의 일상과 어머니의 따뜻함을 그려냈고, 2009년에는 만화를 영화화한 공기인형을 제작했다. 2013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잔잔한 반향을 일으킨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66회 깐느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였고, 일본 정부로부터 예술선장 문부과학대신상을 받았다.
그는 스스로 기억, 상상, 관찰력의 밸런스를 중시한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스탠스를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다고도 한다. 필자가 볼 때 이 말은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매우 중요한 발언이다. 그는 객관적으로 인간 삶을 들여다보며,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영화로 재구성하며 그 팩트를 관객들이 관찰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번 영화도 그렇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볼 때는 진짜 가족이 아닌 거짓으로 가족이라는 형태를 하고 살아가지만, 그들은 실제로 사회 하층민이며 하루 종일 일해도 박봉으로 간신히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진짜 가족으로부터는 정작 버림받거나 상처 받은 이들이다. 그들은 겉으로 볼 때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안에 진한 인간성을 내포하고 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그러한 장면들을 영화 곳곳에 삽입하였고, 나중에 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어도 서로를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이 영화 역시 일본에서 2010년부터 크게 사회문제화된 고령자 소재불명 사건을 주제로 한다. 2010년 7월 도쿄도 아다치구에서 1899년생 남성이 백골화된 상태로 발견된 것을 계기로, 주민등록 등 행정적으로는 존재하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고령자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후 각지에서 사망신고나 주민등록말소 등을 하지 않고 그 가족들이 연금을 부정수급하거나 시체유기를 한 사건들이 다수 보고되었다. 2010년 8월 후생노동성은 85세 이상 연금수령자 중 약 3%가 부정수급이 의심된다고 발표하였다. 2010년 집계된 호적상 120세 이상의 노인들 통계는 약 4,200여명에 달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러한 팩트를 중심으로, 그 중 2016년 발생한 연금 부정수급 사건의 보도를 보고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된 것이다.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연출력과 탄탄한 스토리 전개가 돋보이는 이 영화는, 연금 부정수급 사건에서 출발했지만 일본의 다양한 계층의 삶을 다루고 있다. 공사장 일용직, 세탁회사 계약직, JK 매장 근무자, 노인, 어린이 등인 이들 가족은 각각의 직장에서도 상하좌우의 유대관계를 갖고 있다. JK 매장에는 보통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여고생의 진심이 전혀 담기지 않은 위로를 받기 위해 오는 고객도 있다. 이들을 통해 고레에다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며 그들 안에 있는 갈등과 상처, 인간애를 잔잔하게 그려낸다. 고레에다 감독의 잔잔함은 그러나 다큐멘터리처럼 팩트를 파고든다.
고레에다 감독은 다큐멘터리 제작 시절부터 기획, 각본, 감독, 편집을 모두 혼자 해 왔다. 그는 수첩을 항상 지니고 다니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걸 기록해놓고 그것을 서서히 발전시켜 각본을 구성한다. 이것까지 보면 그가 매우 치밀하고 자기 고집을 앞세울 것 같지만 오히려 인물과 영화의 힘을 살리기 위해 현장을 매우 중시한다. 현장에서 발견한 배우의 리액션이나 표정을 통해 각본을 수정하거나 배우의 의견을 경청하여 각본에 추가한다고 한다. 어린아이의 일상을 그릴 때는 독백보다는 대화를 이용하며, 아역 배우에게 대본 대신 현장에서 구두로 대사를 설명하고 아역이 자신의 언어로 그것을 말하게 한다. 이것은 어쩌면 보다 치밀하게 현실을 반영하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다. 마치 사진을 찍을 때 경직된 인상보다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는 것이 훨씬 작품성이 높아지는 것처럼, 그는 현장에서 배우가 있는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도록 끌어내는 능력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를 빛내는 주연들 역시 상당한 연기파 배우들이다. 우선 아빠 역의 릴리 프랭키(リリー・フランキー, Lily Franky)는 1963년생인데, 매우 다양한 재주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영화, 드라마, CF 뿐만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 라이터, 작가, 소설가, 아트디렉터, 디자이너, 뮤지션, 작사가, 작곡가, 방송작가, 연출가, 사진작가, 연극배우 등의 타이틀을 달고 다니며, 실제로 각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본명은 나카가와 마사야(中川 雅也)로,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고쿠라 출신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도 평범한 소시민 역할을 잘 소화했던 그는 이 작품에서도 무덤덤한 표정의 남자이지만 가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도둑질을 하고 엄마 역할의 애인과 사랑도 나누며 아이들을 가끔 잘 대해주는 중요한 아빠 역할을 잘 소화해 낸다.
엄마 역할의 안도 사쿠라(安藤 サクラ)는 1986년생으로, 작품성 있는 영화 뿐만 아니라 드라마, CF, 라디오 등에서 폭넓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이다. 필자가 본 영화 중에서는 백엔의 사랑(百円の恋)의 주연이었는데, 이 영화에서 빈곤한 일본 젊은층의 방황과 상처를 잘 그려냈던 배우로 기억한다.
이모 역할의 마쓰오카 마유(松岡 茉優)는 1995년생으로 2008년 데뷔하여 TV를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배우이다. 활동한지 10여년 남짓이지만 많은 드라마, 영화, CF, 예능 등에 출연했으며, 성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할머니 역할의 키키 키린(樹木希林)은 1943년생으로 1961년 데뷔하여 지금까지 노익장을 과시하며 활동 중이다. 수많은 드라마, 영화 등에 출연했으며, 고레에다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에서 엄마 역할을 맡았었다.
현실의 문제를 뛰어난 관찰력과 구성력, 연출력을 통해 휴머니즘으로 파고드는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반갑다. 일본에서 아무 사전 정보가 없었지만 망설이지 않고 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작품들이 준 파급력 때문이다. 아름다운 스토리는 아름답게, 잔혹한 현실도 잔잔하게 그려내는 그의 영화 스타일은 필자에게는 지금의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인식될 정도이다. 그의 영화는 일본 특유의 조용하고 한적한 거리와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을 잘 그려낸다고 생각한다.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은 그의 영화가 전 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국제적으로 작품성을, 그것도 지속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그가 각본, 연출, 편집을 도맡으며 자신이 그려내고자 하는 메시지를 자신만의 언어로 깊이 있게 전달하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나오는 그의 작품도 아마 아무런 망설임 없이 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