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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난민 Oct 24. 2019

드디어, 1천년의 앙시앙 레짐에 금이 가는가

조국 가족분들의 강녕함을 기원하며

평민 출신 2명과 그 둘에 동조하는 수많은 평민들이 광장에 모이고 있다. 지난번 촛불은 무능한 선출직 권력에 대한 심판을 말했다면, 이번엔 1천년동안 바뀌지 않은 특권계층의 핵심권력 중 하나를 겨냥하고 있다. 바로 검찰을 중심으로 한 사법개혁이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전세계에서 유례 없을 정도로 앙시앙 레짐이 오래 유지되어 온 나라이다. 역사학자들은 주로 1623년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집권하고 서인에서 노론이 나왔으므로 이 때 이후 특권층이 바뀌지 않았다고 말한다. 노론이 조선 후기 300년을 장기 집권하고, 그 권력과 부귀영화를 유지하기 위해 나라를 팔아 일본에 넘기고 친일파로 불렸으며,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여전히 대한민국 특권층에 자리하고 있으니 그 말이 옳다.



그러나 나는 단재 신채호가 말한 묘청의 난 이전부터 대한민국의 권력층은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묘청의 난 이후 조선의 자주정신은 죽었다고 신채호는 안타까워 했다. 투철한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의 역사적 자주성을 부르짖으려 해도, 아무리 찾아도 묘청의 난 이후 조선은 자주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국을 숭상하고 그들의 사상과 문자를 받아들여 철저한 신분제 사회를 만들어 통제하고, 성리학적 가치를 백성에게  강조하여 추상적인 도덕으로 서로를 헐뜯게 하고 뒤에서 실리를 챙긴 것이 조선의 지배층이었다.


신진 사대부가 무쌍의 무력을 지닌 이성계와 손을 잡고 조선을 일으켰던 조선 초기만은 예외이다. 조선이 건국되기 직전인 1392년 토지대장을 불태우는 토지개혁으로 새나라 건국의 명분과 민심을 얻은 정도전 등은 새로운 법과 제도를 만들고 산천을 경계로 했던 승려와 권신들의 땅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러나 기존 권력층 거의 대부분이 바뀌지 않았고 신분제는 철저히 유지되었으며 국가를 지배하는 사상을 성리학으로 삼 성리학적 제도와 율법까지 동원하여 명확한 한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개혁의 시간이 너무 짧았다. 세종은 드디어 우리만의 문자를 탄생시키고 자주적인 역사관을 받아들여 널리 퍼트리려 했다. 그러나 태종과 세종이 꿈꿨던 조선의 이상은 단 1대도 못 가 세종의 아들 세조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기 시작했다.



한명회 등은 김종서 등을 죽이자마자 그들의 가족 중 예쁜 여자는 첩이나 노비로 삼았고, 일생 여자를 밝히고 음주가무를 즐겼으며, 관직을 팔고 자신의 사람들로 조정을 채웠다. 이에 반대하려고만 하면 죄를 만들거나 뒤집어 씌워 의금부로 체포해와 갖은 고문을 가했다. 고문 중 죽거나 자백하면 그 3족을 멸했다. 저놈이 나라를 망치려 한다, 저놈이 나라를 집어삼키려 한다라고 손가락질하면 도덕주의에 찌들은 백성들은 그들의 흠을 같이 손가락질하고 목청껏 죽이라고 따라 외쳤다. 지금과 전혀 다를바 없다.


권세가 매우 성하여 따르며 아부하는 자가 많았고, 손님들이 문에 가득했지만 접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재상들이 그 안에서 많이 나왔는데, 조정 관원으로서 채찍을 잡는 자까지 있었다. 성격이 번잡한 것을 좋아하며 과시하기를 기뻐했고, 재물을 탐하며 색을 즐겨했다. 토지와 금은보화 등 뇌물이 잇달았고, 집을 널리 가져 어여쁜 첩들을 많이 두었으니, 그 호사하고 부유함이 한때에 떨쳤다.  <조선왕조실록>



다른 나라를 주인으로 섬기고 백성들에게 도덕을 강요해 서로 싸우게 하며 조선에서 나는 모든 것을 차지하는 방식은 한명회나 노론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단지 그 대상이 명에서 일본으로 바뀐 것 뿐,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그들에게 자주적인 국가는 필요 없었던 것이다. 그 권력 유지의 핵심 방안이 바로 의금부, 즉 검찰이었다. 일제시대 들어 검찰의 권력은 일본보다도 막강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조선과 다를 바는 없었다. 맘대로 죄인을 만들어 죽일 수 있는 시스템은 전에도 있었으나 일제시대 더욱 잘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초유의 권력을 가진 대한민국 검찰. 검찰 고위간부 출신은 여전히 조선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권력의 핵심이 되어 있다. 황교안, 김진태 등 검찰 출신 유력 정치인들을 보라. 대형 로펌에서 떵떵거리며 수십억 이상의 연봉을 받는 법조인들을 보라. 수사,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과 끈만 있으면 마약을 대량으로 반입한 자식도 구속되지 않고, 사전에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놓으면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기소하지조차 않는다. 반면 그 권력에 조금이라도 누수가 생길 것 같으면 타겟을 정해 인생을 조져버린다. 얼마나 편리한가? 법 위에 군림하는 자들에게 검찰은 친해져야만 하는 집단이며, 검찰 역시 그 권력을 활용해 부귀영화를 누려 왔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이 이 시스템을 흔들려 하고 있다. 조선의 권력층이 보기에 하층민이며 돈도 못 버는 빨갱이 출신의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강남 좌파라 불리지만 20년도 넘은 허름한 아파트 한 채에서 가족과 살며 부인과 자식들도 보호하지 못하고 언론에 두들겨 맞기만 한 조국. 조국의 가족이 유린당하고 표창장 하나로 70군데를 압수수색하고 여자들만 있는 집에 들어가 짜장면 시켜먹으며 11시간을 설치는 검찰의 후진 행태를 보며 국민들이 분노하고 광장으로 뛰쳐 나왔다.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평화적인 시위를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이 펼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지만, 우리를 대신해 싸울 사람이 단 둘 뿐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할 것은 한다는 것이다.



1793년 프랑스는 뜨거웠고, 3부 회의에서 왼쪽에 앉았다는 이유로 좌파라 불린 평민들은 단2년만에 앙시엥 레짐을 완전히 와해시키고 민주공화정 체제를 이룩했다. 왕, 귀족, 사제들이 갖고 있던 땅을 빼앗아 국민에게 돌려주고, 국민 한사람 한사람은 국가와 계약 관계이므로 상호간에 권리와 의무가 존재한다는 사회계약설을 바탕으로 민주주의 헌법을 만들었다. 이들의 위업으로 지구에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 정착했고, 지금은 자유민주주의를 떠나서는 국가 시스템을 생각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대한민국만은 앙시엥 레짐이 줄곧 건재했으며, 미국이 민주주의를 도입하라고 말해도 이승만과 박정희는 독재를 고집하며 앙시엥 레짐을 보호하고 그들이 스스로 권력의 정점에 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되었고, 우리는 그들이 흘린 피와 희생 위에 빚을 지고 서 있다. 이제 독재자의 딸이 촛불 시위로 탄핵되었고, 앙시엥 레짐의 보호자이자 사냥개인 검찰이 개혁되려 하고 있다. 프랑스혁명과는 다른, 그러나 그들만큼 뜨거운 촛불 시민들의 외침이 1천년간 지속되어온 대한민국 앙시엥 레짐에 금을 내고 있다. 위대한 평민들이 이룩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가 대한민국에서도 이제 꽃피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빤스목사 휘하에서 헌금을 하고 막말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며 불안을 조장하여 권력을 다시 독차지하고 싶어하는 권력층과 그들에게 충성하는 개들은 대한민국 민주시민들의 위대한 시민의식과 최고 권력자 감사해야 할 것이다. 1793년의 프랑스였다면,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평민에게 대항하는 자들은 그 자리에서 내장이 발라지고 목이 내걸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프랑스식 좌파의 리더였다면 이미 수많은 앙시엥 레짐의 목을 단두대에서 내리치는 이벤트를 매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국과 그의 가족 분들은 조선의 지배층과 그 하수인들로 인해 가혹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경심 교수는 오늘 구속되었다. 그분들을 지켜야할 선출직 권력들이 손을 놓고 있기에, 잡종개들만도 못한 조선의 권력층과 그 개들에 붙어 사는 기생충들이 시끄럽게 짖어대고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 찌질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조선의 선비들이 좌파 행세를 하며 시민들이 권력을 쥐어 줘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큰 문제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조선시대 법의 심판을 받으면 자신의 부덕함이라 탓했던 선비가 되지 마시라. 조국과 그의 가족분들은 덕이 넘치고 의로움이 넘치기에, 우리를 대신해 고초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당신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 빚은 당대에 갚지 못한다면 적어도 역사가 갚아줄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들은 지금부터가 진짜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행동하는 리더가 없는 위태로운 싸움이지만, 결국은 시민들이 이루어낼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임기도 아직 반이 남아 있다. 조국과 그 가족분들의 강녕함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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