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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신 May 19. 2021

기억의 너머

순간의 추억이 영원히 기억되길

기억의 매 순간, 당신이 있었다.   

   

꽃이 피고, 달이 지고, 햇살이 눈부신 그날에도 당신은 나와 함께 했다. 따뜻하고 편한 미소가 좋았다. 묵묵히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 설레서, 마음을 조이며, 당신의 곁을 지켰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당신은 언제나 '괜찮다'라고 말했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던 당신은, 바보처럼 나를 믿었다. 그렇게 환하게 웃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기에 그저 신기했다. 세상의 신기한 장소들은 당신의 손에 이끌려 도착했다. 함께 걷고, 보고, 웃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질수록, 서로의 마음도 그렇게 조금씩 이어지고 있었다. 같은 표정으로 웃기. 발걸음 맞추기. 어깨에 기대고 편하게 눈 감기.   

   

소소한 변화는 일상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감성이 더해졌다. 아침에 눈을 뜨고, 당신에게 연락이 오면, 그 시간마저도 데이트를 하는 것처럼 두근거리며 설레었다. 함께 있어야 알 수 있는 소중한 행복. 나는 지금 그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예전에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잊힐 만큼, 짙은 농도의 사랑이었다.   

'당신이 있었기에 그 시간은 눈부셨다'       


나를 지켜봐 주는 당신의 따뜻한 시선은 시간마저 멈추게 했다. 차가운 공기를 나의 볼이 스치고 지나가면, 그곳엔 당신과 나와의 거리가 생겼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당신의 따뜻한 미소는 또렷하게 보였다. 신비한 마법에 걸린 듯 당신은 세상 그 무엇보다 크게 다가왔다. 성큼성큼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떨려오는 심장은 멈추질 않았다. 떨리는 심장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당신과 눈을 맞췄다. 익숙한 듯 따뜻한 시선은 나의 몸을 녹이고, 심장을 녹이고, 세상을 녹였다. 당신과 나와의 거리는 그렇게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발걸음으로 세상에 나갔다. 함께 하기에 소중한 시간. 함께 걷기에 소중한 거리. 함께 있기에 세상은 그 무엇보다 눈부셨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몰랐다. 사람에게도 좋은 향기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해 준 사람. 지금 당신은 나의 곁에 있고, 어설픈 나의 세상은 그렇게 하나씩 만들어지고 있었다.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에 매번 감탄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그 시간이 영원히 지속될 줄 알았다.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신이 있다면 잠시라도 더 살게 해 달라며 빌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나의 곁에 머물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당신과 나의 거리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지금, 나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 그 기억 속의 당신은 아직도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고 있다. 괜찮다고 말하는 당신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나는 어떡해야 되는지 계속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런 나를 말없이 안아주는 그녀. 많은 말보다 더 많은 감정을 몸으로 전달했다.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해서 나의 눈에서도 뜨거운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우린 그렇게 서로의 볼이 맞닿은 채, 서로를 껴안고 울어야만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싫었다. 기억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그녀에게 그저 미안했다. 나의 하늘은 뜨거운 빗줄기로 가려졌다. 캄캄해진 세상은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잃어갈 때 즈음 당신의 향기도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순간의 추억이 영원히 기억되길'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기억은 고장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기억을 해보려고 해도, 그녀는 계속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잡을 수 없는 그녀를 향해 나는 거침없이 달렸다. 달리는 거리가 길어질수록 그녀와의 거리도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그게 최선이라 말하며 핑곗거리를 만들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자신의 방식대로 움직이는 시간은 더 빠른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괴로웠다. 그 기억을 잡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신에게라도 빌고 싶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아인슈타인의 시곗바늘은 빠르게 돌아갔다. 결국 기억의 너머에서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는 다소곳이 앉아서, 나의 일상을 응원해주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마주하고서야 나는 느꼈다. 진정으로 나를 사랑했었구나. 그녀의 진심은 사실이었구나. 그녀의 향기는 이제 맡을 수 없겠구나. 말없이 나를 지켜보는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따뜻하고 눈부셨다. 나의 캄캄한 세상에 조금씩 길이 만들어졌다.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길은 삭막했지만, 부담되지 않는 익숙한 길이었다. 함께 걷지 않아도 그녀는 기억의 너머에서 언제나 나와 함께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눈을 뜬 현실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당신의 온기가 느껴져서 좋았다. 잘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는 바람소리가 귓가를 스쳐왔다. 밝게 웃으라고 장난치는 바람은 나의 옷깃을 이리저리 가지고 놀았다. 나는 바람에 이끌려 새로운 길에 도착했다. 혼자 걷는 길은 항상 떨리고 걱정되지만, 이제는 나의 길을 하나씩 만들어 볼 생각이다.      


그녀에게 편지를 보낸다. 나의 곁에 머물러 줘서 고맙고 고마워. 함께 한 추억이 있었기에 나의 길은 이제 온기가 느껴지는 따뜻한 길이 되었어. 기억의 너머에서 넌, 항상 나를 응원해주는 좋은 동반자야. 사랑하고 사랑해. 그리고 미안하고 미안해. 지금의 난 매 순간 당신과 함께 하고 있어. 오늘의 하늘은 맑음이야. 나의 마음에도, 당신과의 추억 속에서도, 우리의 거리는 이제 항상 맑음이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믿으니까.     

 

기억의 너머, 푸른 하늘 아래,  출렁이는 바다가 보이고, 시원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어느 날. 나의 기억은 언제나 그렇듯 당신과 함께 할 거야. 소중한 마음을 담아,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그림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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