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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신 May 26. 2021

파도에 스며들다

청춘 그리고 파도

기억의 산을 넘어 대학시절로 향한다. 꿈이 많았던 청년에게 현실은 가혹한 지옥이었다. 평범한 캠패스의 낭만은 빡빡한 아르바이트 스케줄로 채워졌다. 자존심이 강했기에, 뒤쳐진 자신을 발견하기 싫었다. 어쩌면 누구보다 스스로 판단하는 피드백이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냉철한 현실은 자신이라는 감옥에 가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곗바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움직였다. 

     

욕심이라는 단어는 몸을 힘들게 만들었다. 주어진 시간에 공부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부족한 학과 공부를 채우기 위해 대부분의 쉬는 시간은 도서관에서 보냈다. 하지만 공부라는 수식어만 붙었을 뿐이지, 도서관은 부족한 잠을 채우는 공간에 불과했다. 무엇이 그 청년을 불만 덩어리로 만들었을까? 과한 욕심과 기대는 새내기 대학생의 마음을 점점 병들게 만들었다. 가질 수 없는 가로등을 향해 죽을 때까지 덤비는 나방처럼 말이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없는 돈에 바닷가 앞에 잡은 원룸은 한 동안 2개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지쳐갔고, 학교 생활은 평범한 학생의 코스프레로 망가졌다. 하지만 쌓이는 통장 잔고는 잘못된 가치관을 유지시키는데 일조했는데.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모든 걸 잘 헤쳐나가야 된다는 편견과 오만은 우물이라는 세상 속 감옥에 가두게 되었다. 별들이 가득한 하늘은 눈부셨지만, 좁고, 깊었으며, 우울해 보였다.  





   

일을 마치면 늘 해변가를 걸었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와 조용한 분위기에 중독되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한 번 맛 본 그 자아도취는 일상을 잊기에 충분했다. 생각 없이 모래밭을 걷거나, 바닥에 누워서 하늘을 보는 그 시간이 좋았다.  잠시 동안 눈을 감고 주변을 음미할 때 느껴지는 그 쾌감은 항상 2배로 다가왔다. 어쩌면 시끄러운 일상과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조건 반사였을지도. 처절한 환경에 대한 나약한 청년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던 이유는 나만의 꿈이 이뤄질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었을까. 인생은 막연함을 현실감으로 바꾸는 일련의 과정인 것 같다.      


20살 청년에게 인생은 녹녹지 않았다. 학과 공부를 해야 되고, 친구들과 다양한 모임에 참여를 해야 되며, 그 모든 과정의 경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다. 자립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대신에 필요한 조건들을 요구했다. 아르바이트와 학교 생활로 지친 몸은 자연스레 바닷가로 향했다. 특별히 갈 곳도 없었고, 그럴만한 경비도 없었다. 슬리퍼를 신고 해변가를 걷는 기분은 남달랐다. 부족한 잠은 해변에 누워서 조금씩 채우기도 했다. 시원한 공기음과 파도소리가 듣기 좋았다. 꾸며지지 않은 그대로의 나 자신이어서 더 편했다.


3년의 시간이 흘렀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 전 아르바이트를 했다. 군대 생활은 인생의 가치관을 확립시켜 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생각은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사람을 대하는 눈빛이 변했다. 특히, 사람에 대한 관심은 힘든 아르바이트 생활에서 동료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함께 한다는 의미가 중요하게 다가왔다. 일이 힘든 것보다 사람에 대한 감정 소비가 더 힘들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가족처럼 대해주는 동료들이 너무 고마웠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마음가짐이 바뀌니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졌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도 나와 같은 삶을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좀 더 친숙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 당시에도 경제적 상황이 충분히 나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가치관의 변화는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심어 주었다.   

   

예전 생각에 자취방은 해변가 근처로 다시 잡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사회적인 불만을 바다에 호소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해변가에 누워서, 잠시 감은 눈 사이로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내가 있는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녀석이 그저 생각났다.      


바다를 보지 못했던 2년 간의 군대 생활은 힘들었다. 단지 곁에 물이 없었을 뿐인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누구나 익숙한 환경과 편한 사람들이 있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 환경이 주는 편안함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게 된다. 부담감이 없기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기에, 평범한 일상은 평범하지 않은 일상이 된다.    

  

바다에 누워서 눈을 감는 상상을 해본다. 시원한 공기음과 파도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파도소리가 울린다

내 마음 속에 소중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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