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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신 May 27. 2021

내 마음의 파도

힘든 내 삶의 친구

구름 낀 달의 풍경은 언제 봐도 장관이다. 비탈진 골목길을 힘들게 올라가면 허름한 주택이 나오는데, 그곳의 현관문 앞이 자주 달을 감상하는 장소다. 물론 다른 곳에서 밤하늘을 볼 수도 있겠지만, 퇴근 후 힘든 몸을 이끌고 이동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편하게 집 앞에서 달을 볼 수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서울로 상경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생활의 큰 변화는 없다. 평범한 직장 생활과 여행은 삶을 유지하고 이어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빌딩들이 빼곡히 모인 서울 한복판에서의 직장 생활은 항상 답답한 마음의 공백을 만들었고, 여행으로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도시의 편리함에 익숙해져서 일까? 지방으로의 이직이 무서워서 일까? 어떤 이유가 되었든 현재 삶은 나름대로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모든 것을 만족하며 산다는 것은 힘들다. 그 사소한 진리는 일상에 사소한 고정관념을 불어넣었다. 더 나은 삶보단 적당한 라이프 스타일을 꿈꾸게 되었다. 가끔 떠나는 여행은 그런 고정관념을 깨는 유일한 일탈이었다. 답답한 도시를 떠나서, 풀과 나무를 만지며 걸을 수 있는 여행은 일상의 스트레스와 고향의 향수를 해소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정동진으로 떠날 때면 그 기대감은 더욱 상승했다.  





   

부산 광안리에서 20대의 청춘을 보낸 나는, 물을 항상 가까이했다. 집 앞 해수욕장이 놀이터이자, 쉼터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모래사장에 누워서 일상을 잊고, 바다를 보거나, 잠깐씩 졸 수 있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 무엇이든 일상이 반복되면 소중함의 가치를 잊는다고 했던가. 보금자리를 옮기면서, 그런 일상은 이젠 가끔씩 허락되는 사치스러운 여유가 되었다.     

 

도심 생활의 아침은 북적거리는 지하철에서 시작된다. 원하지 않는 타인의 일상을 들으며, 곧바로 익숙한 책상 앞에 다다른다. 동료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고, 차 한 잔에 잠깐의 수다로 일상을 공유한 후 업무를 시작한다. 특별하진 않지만, 사회 구성원으로 도태되지 않는 평범한 도시생활. 바쁘게 서류를 넘기다 보면 하루는 금세 저물어 있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도착한 집은 언제나 그랬듯 조용하고 평화롭다. 답답한 마음에 현관문 앞에 걸터앉으면, 건물과 건물 사이로 빼곡히 늘어선 별들과 달이 보인다. 잠깐 동안의 정적은 하늘을 볼 때 느껴지는 잔잔한 멜로디로 빠질 수 없는 일상의 요소가 되었다.    

 

답답한 일상의 반복은 자연스럽게 여행으로 몸을 이끌었다.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은 영화의 장면들이 연결된 것처럼 눈을 사로잡았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간에게 다가올 때 가장 큰 편안함을 주는 것 같다.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바라보는 세상은 한 편의 수채화가 된다. 강렬한 색채는 아니지만, 은은하고 잔잔한 여운을 준다. 잠시 감긴 눈을 떴을 때, 정동진의 바다가 보였다. 쓸쓸해 보였지만, 나를 반기는 파도소리가 듣기 좋았다.     





 

부산의 바다와는 사뭇 다르지만, 정동진의 바다는 마음을 두드리는 감성이 있다. 작게 출렁이는 파도와 조용히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곳에 동화가 된다. 왠지 고독해 보이는 주변 풍경은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늦은 저녁의 해변은 그 느낌이 조금 더 남다르다. 파도 소리는 더 크게 들리고, 바람 소리는 더 거칠다. 꼭 마중 나온 고향 친구들처럼 짓궂게 장난을 치는 것 같다. 모래사장에 누워서 두 눈을 감으면, 모든 자연환경은 내 주변에서 잔잔하게 소용돌이친다.    

  

묵묵히 파도를 들썩이는 녀석을 보면, 외로워 보이면서도, 나 같기도 하고, 곁에 있어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든다. 거친 풍파 속에서 힘들게 20대를 헤치고 온 청년에게 정동진은 집 앞 산책로가 된다. 부담 없이 거닐 수 있고, 편하게 누울 수 있으며, 꾸밈없는 서로의 모습을 인정해 줘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을 열고, 세상을 잊고,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한다. 시원한 바람을 좀 더 느끼고 싶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만족감을 준다. 촉촉이 스며든 감성은 마음을 부드럽게 만든다. 집 앞에서 보는 달의 풍경과는 감성적인 느낌부터가 다르다. 살갗으로 전해지는 은은하지만 풍성한 파도소리. 20대의 질풍노도를 조용히 지켜봐 준 고마운 소리. 말없이 곁을 지켜줬기에, 이제는 나 또한 누군가의 파도소리가 되기를 바라는 소박한 바램. 이제는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려 한다. 소중한 사람들과 마음의 소통을 나누며, 서로의 걸음에 응원을 보내며,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사치스러운 여유를 부리며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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