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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신 May 28. 2021

해를 사랑한 그늘

내가 옳다고 믿는 세상

세상을 따뜻하게 물들이는 해는 보기보단 수줍음이 많은 녀석이었다. 별과 달은 그런 녀석의 마음을 알고 항상 응원하며 곁을 지켜주었다. 해는 별과 달의 격려를 받으며, 자신의 따뜻함을 세상에 선물했다. 사람들은 해의 따뜻함으로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고, 세상은 조금 더 밝고 아름답게 물들어갔다. 하지만 해에게도 걱정거리가 있었다. 자신의 강렬한 따뜻함 때문에 그 누구도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했던 것이다. 해는 외로웠다. 

    

세상의 음지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둠과 절망만이 존재했다. 그늘은 삶의 낙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그저 모든 것이 암흑이었기 때문이다. 힘든 삶의 여정은 그렇게 의미 없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늘에게 큰 사건이 일어났다. 항상 눈부심 때문에 바라보지 못했던 하늘을 쳐다본 것이다. 때마침 구름이 해를 절반 이상 가린 상황이 되었고, 그런 해의 모습을 처음으로 본 그늘. 갑자기 강렬하게 떨리는 두근거림은 그늘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해에게 첫눈에 반한 그늘. 그늘은 잠시라도 해와 함께 하고 싶었다.  

     

따뜻한 향기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해에게 다가 간 그늘. 해의 품은 너무나 강렬해서 그늘 자신을 잃게 만들 정도였다. 타들어 가는 고통은 이내 그늘의 발걸음을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늘은 용기를 내어서, 다시 해에게 다가갔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던 구름은 그늘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해의 강렬함을 가려주었다. 덕분에 그늘은 해의 곁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강렬한 따뜻함은 줄어들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따뜻한 미소에 또 한 번 반해 버린 그늘. 그늘은 해의 곁이 너무 편하고 좋았다. 자신을 배려하는 그늘이 싫지 않았던 해는 그늘을 포근하게 안아 주었다. 해의 포근함에 그늘은 조금씩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늘은 갑자기 욕심이 생겼다. 구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언제나 해와 함께 하길 바랬다. 해와 함께 하는 일상은 상상조차 힘들 정도로 헛된 꿈처럼 보였다. 해의 생각이 그늘과 일치하기 전까진 말이다. 자신의 단점보단 그늘의 사랑이 더 크게 다가왔다. 어쩌면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좋은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해의 마음을 반영하듯 그늘은 의지를 담아 결심했다.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요정을 찾아가기로.

      

”요정님! 하루라도 좋으니, 좋은 날씨에 해의 따뜻함을 그대로 받으며, 함께 머물고 싶어요. “  

   

그늘은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요정에게 전달했다. 요정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둘은 이어질 수 없는 존재. 그냥 서로를 인정하며 지내는 건 안 되겠느냐? “


”해와 함께 하지 않는 일상은 더 이상 저에게 의미가 없습니다. 부탁입니다. 제발 저의 소원을 들어주세요. “ 


요정은 자신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그늘을 바라만 볼뿐이었다. 요정은 그늘의 간절한 마음을 안타까워했다.    


‘사랑해선 안 되는 존재들이 사랑에 빠졌구나.’     


그늘의 생각은 해뿐이었다. 그늘의 간절한 눈빛에서 요정은 녀석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지만, 쉽게 그늘의 소원을 수락할 수는 없었다. 그늘의 마음을 소중히 여겨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요정은 둘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현실을 그늘에게 알려주는 것도 자신의 몫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요정은 질문을 던졌다.  

    

”단, 하루의 사랑 때문에 평생을 후회한다고 해도 상관없겠느냐? “     


요정은 그늘에게 기회를 주었다. 하루의 사랑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평생을 해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들의 사랑이 깨지길 원하지 않았다. 진심이 담긴 그들의 사랑이 계속 이어지길 바랬다. 달과 별도 요정의 곁에서 그늘과 함께 해의 사랑을 응원해주었다. 그늘은 깊은 고민에 잠겼다. 자신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아는 것처럼 진지하게 고민했다.      


”제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옳은 결정입니까? “


”사랑은 다른 이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데로 하는 것이다. 다만, 함께 하기에 해의 마음도 이해를 해줘야 한다. 그것이 너의 의무며 책임이다. 너의 선택에 당당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더 고민해 보거라. “    

 

요정은 그늘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사랑은 함께 할 때 그 빛이 더 찬란하다. 눈앞의 사랑 때문에 세상과 멀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행복한 세상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랑은 진지해야 한다. 자신의 결정에 자신이 없어진 그늘. 생각은 고민으로 이어졌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것인데,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중요한 순간에 다시금 걱정이 되었다.   

   

‘올바른 선택을 하고 싶다. 해를 아끼는 마음으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사랑해주고 싶다. 어떤 선택이 행복의 길로 나아가게 해 줄까?’   

  

그늘은 고민하고 고민했다. 

     

”결정했습니다. 하루를 사랑하더라도, 제대로 해와 사랑을 해보고 싶습니다. “   


"지금의 선택에 후회는 없겠느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요정이 말했다. 

        

"네, 딱 하루면 됩니다. 하루만이라도 잊지 못할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그늘은 애절하게 소원을 빌었다.      

   

"나는 지금 너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절대 후회하지 않겠느냐?"   

       

요정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절대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좋다. 지금 이 순간부터, 그늘을 하루 동안 해 곁에 머물도록 해주마!" 


"정말!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들은 큰 절을 올리며,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시간은 흘러,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그늘은 조심스럽게 해의 곁으로 다가갔고, 자신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음을 알고 나서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요정은 그늘의 소원을 과연 들어준 것일까?    

     

해는 그늘에 가려져 조금씩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늘은 자신만을 바라보며, 사랑의 눈빛을 보내는 해의 곁을 도저히 떠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떠나야 해가 살 수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는 모든 잘못을 요정에게 돌리며,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해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그늘을 다그치지 않았다. 그저 온화한 미소로 바라볼 뿐이었다. 사랑에 눈먼 그늘은, 해가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해의 곁에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지극히 보살폈다.     

 

때론 내가 옳다고 믿는 세상과 생각들이 올바로 세워지고, 나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어쩌면 우린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우리의 잘못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림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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