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상상은 스토리를 구성하는 초석이다
카페에 앉아서 노트북을 펼친다. 창 밖으로 떨어지는 빗줄기가 싫지 않은 걸 보니, 오늘은 누군가를 추억하고 싶은가 보다. 자신의 행선지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자동차들, 사람들 그리고 빗줄기들.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본다. 추억하는 시간보다 멍 때리는 시간이 더 좋은 걸 보니, 일을 하긴 싫은 날씨인 건 분명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일을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한다. 좋아하는 일은 너무 많지만, 싫어하는 일은 몇 가지 없기 때문이다. 이 정도 계획만 잘 세워도 하루 스케줄은 무난하게 잘 넘어간다. 그런데 가끔 일이 너무 하기 싫을 때가 있다. 싫다는 말보다는 힘겹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울 때는 작업 일지 한 페이지에 낙서를 한다. 최대한 엉뚱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논리적 관계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정리한다. 할머니가 히어로가 되고, 꼬맹이가 헬크와 대결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다. 상상력은 피와 살이 붙어서 점점 거대해지지만, 결국 부실한 짜임새로 금방 무너진다. 근데, 신기한 건 그런 낙서를 할 때, 가끔 좋은 아이디어도 생각이 난다는 거다. 물론 가끔이지만 그 가끔이 때론 인생을 바꿀 때가 있다.
엉뚱한 상상은 내가 스토리를 구성하는 기본 초석이다. 이렇게 하면 왜 안 되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논리적으로 증명하면서 스토리로 풀어낸다. 될 것 같은 예감 속에서 되는 스토리는 10개 중에 1~2개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그래도 나온다는 것이다. 안 나와서 고민의 끈을 이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괜찮은 장난꾸러기 방법이다. 내가 하는 작업이 일이 아니길 바라며, 누군가를 집중시키고 웃겨 주는 단순한 도구이길 바란다. 글은 읽을 때 편하고 여운이 많아지는 글이 좋다. 너무 각이 잡힌 글은 나도 각을 잡고 봐야 할 것 같아서, 조용히 다음 기회로 미룬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내가 적는 대부분의 글은 각을 잡고 적는 글이라는 거다. 내가 말하고도 정말 황당하다.
아이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해를 본다고 가정할 때, 그냥 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구름 주변을 날아다니는 새도 보고, 빠르게 움직이는 비행기도 보면서 최대한 딴짓을 많이 하면서 해를 본다. 정확한 해의 형태를 보기는 힘들겠지만, 덕분에 해 주변의 많은 사물들은 볼 수 있다. 화창한 날씨인데도 비가 올지를 걱정하고, 날아가는 비둘기한테 새 똥을 맞을지도 걱정한다. 그렇게 쓸데없는 고민을 많이 해서 부모님께 혼날 때도 많겠지만, 그래도 다른 걱정거리를 스스로 만든다. 걱정을 한다는 건, 도망치고 싶은 다양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때론 대단한 캐릭터와 스토리로 자신을 보호하기도 한다.
나는 누가 봐도 성인의 몸을 가지고 있다. 남들보다 철이 없고, 쓸데없는 상상을 기대 이상으로 많이 하지만, 그래도 명목상으로는 어른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정신세계를 연구하고 습득한다. 그들만의 문화와 재미 요소를 함께 즐기며 만들어 나간다. 누군가를 웃게 만드는 사람만이 코미디언은 아니다. 곁에서 신나게 웃어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가능하다. 어른이 아이처럼 웃고, 아이처럼 상상하고,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된다.
창 밖에 여전히 비는 내리고, 멍 때리는 시간이 여전히 많아지는 걸 보니 아직까지도 일은 부담스러운가 보다. 이제 나의 볼펜은 흰 페이지에 재미있는 상상을 그릴 거다. 최대한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 봐야지. 나의 하루는 오늘도 신기하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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