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착한 사람인가?
'당신은 착한 사람인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생각이다.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자신의 이미지는 인간관계를 형성하거나 업무를 진행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한 나의 이미지는 때론 스스로를 속박한다. 나보다 남을 위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이유는 뭘까?
당신은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착하다는 말의 뜻은 사람의 하는 짓이나 마음가짐이 바르고 어질다는 말이다. 본인의 행동과 마음가짐이 올바르게 나아가야만 착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사람과 사회 속에의 당신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누군가의 평가 속에서 자신의 성품이 만들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예전과 지금의 사회는 강산이 변한 만큼 많은 차이가 있을까?
자신의 올바른 가치관으로 몸과 마음을 정돈하고, 꿈꾸는 세상을 향해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매 순간 느끼는 무료함은 때론 나 자신조차도 짜증나게 만든다. 내가 나를 돌 보는 시간도 이제는 스케줄을 잡고 행해야 하는 이벤트가 되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무조건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이어야만 괜찮은 관계가 지속될까?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나는 그냥 나인데, 누군가를 위한 내가 아니라 단순하고 평범한 나인데, 너무 많은 수식어가 붙으면 부담스럽지 않을까? 착하다 착하지 않다 그런 걸 정하기 보다, 내 본연의 모습을 조금 더 신경 쓰는 건 어떨까? 남을 바라보는 태도, 사회생활에 임하는 태도, 내가 나를 바라보는 태도. 물론 나를 위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본 전제 하에 자신을 조금 더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지금 나와 당신에게 필요한 건, 결과를 위한 명제가 아니라 여유와 시간이다.
그래도 나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남을 도와주며 그들의 삶과 어울려 때론 부딪히고, 때론 맞물려서 함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고 싶다. 그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인생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그 작은 소망이 누군가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내가 사는 인생은 내가 주인공인데 누군가를 위한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면,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후회할 것 같다. 내가 나로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원하는 것은 다르다.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주어진다면, 아마도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꿀 것이다. 나는 착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착하진 않다. 그리고 그런 삶을 추구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나여서 행복한 삶이 좋다. 기왕이면 친한 사람들이 주변에서 함께 어울리면 더 좋고, 기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더 많았으면 좋겠고, 기왕이면 그들과 더더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나의 유한한 시간은 충분히 값지니까, 그 시간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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