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우리가 감기에 걸렸을 때 너무 심하지 않은 이상 웬만하면 감기약을 많이 먹지 않고 영양섭취와 휴식으로 천천히 나아지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콧물이 조금 난다고 해서, 기침을 막 시작했다고 해서 병원을 가고 , 주사와 약을 처방받고 조금만 아프다고 항생제를 먹어 가면 금방은 효과가 있어서 몸이 괜찮아질지 모르지만 몸에 내성이 생겨 좀 더 독한 약을 찾게 되고, 웬만한 약으로는 몸이 듣질 않게 돼버린다.
나는 최근 이것을 느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파서 가 조금 차이이긴 하지만.
사실 나는 웬만한 힘든 일이 아니고서야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성격도 아니고, 그저 묵묵히 참거나
혼자 삭히거나 해결점을 찾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마음도 힘들고, 몸도 힘들고 그냥 다 무너질 거 같은 날이었다. 누군가가 우는 것만 봐도 같이 울고싶은 날. 누가 톡 건들이면 정말 우수수 가루처럼 다 무너져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은 날
나답지 않게 그냥 다 말해버렸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힘든 것을 막 쏟아냈다.
말을 하다 보니 요 근래 있었던 일뿐 아니라, 내 인생사가 나올 만큼 길게 이어졌고, 상대방은 조용히 들어주고
토닥토닥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고맙고.
정말 고맙고. 따뜻하고 별 해결책이나 특별한 말은 없었지만 나는 그저 이렇게 따뜻한 위로 한 번에 모든 게 다 괜찮아질 수 있구나.
조금은 가벼워졌다.
위로를 받는 기분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 따뜻하다.
밑을 보면 까맣고 옆을 보면 끝도 없는 어둠뿐인 곳에서 누군가가 작은 촛불 하나라도 가져와서
내 주변 추위를 녹여주고 밝혀주는 기분이다.
따뜻한 물에 편안히 누워 그저 흐름에 맞긴 채 가만히 누워있는 기분.
이 느낌이 나는 너무 좋았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나는 조금만 힘이 들어도 , 조금 기댈 곳이 필요해질 때면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토로했다.
오늘 있었던 일, 사소한 작은 힘든 일 마저 나는 하나하나 , 미주알고주알.
그리고 따뜻함을 느끼고 위로를 받고 별 말 없어도 그냥 들어주는 것이 좋고, 내 손을 잡아주는 게 좋고,
기댈 수 있다는 안정감이 좋고, 다 좋았다.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울음을 참는 게 아닌,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구나 라고 느꼈다.
그런데 이 따뜻함이 참 중독이 되었다.
나는 위로 중독에 걸린 것 같았다.
예전 같으면 혼자서 생각할 일까지 나는 다 털어버리고, 작은 일에도 쉽게 힘들어 지쳐버리고
위로받을 생각, 도움받을 생각부터 들게 되었다.
좀 더 따뜻한 말을 받고 싶고, 좀 더 나를 봐주었으면 좋겠고, 내 말에 귀 기울여주었으면 좋겠고,
나도 모르게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아져버렸다. 마음의 면역력이 약해지고 있었다.
힘들지 않아도 사실은 나 혼자 견딜 수 있음에도 나는 응석쟁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똑같은 말, 똑같은 고민, 똑같은 감정을 들어주는 사람의 기분은 어떨까.
조금 지쳐 보이는 표정을 나는 순간 읽었고,
나도 모르게 나 자신에게 이질감이 느껴지고 너무 부끄러워 그 뒤로부터는 고민상담이나 이야기하는 것을
자제하게 되었다.
나에게 가까운 사람일수록 나에 대해 말을 할 수 있고,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지만
그것이 정말 습관처럼 되면 그 사람은 분명 지쳐버릴 것이다.
그 감정에 그 사람도 함께 묶일 것이고 , 그 사람은 나라는 사람을 힘들어하기만 하는, 매일 같은 감정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로 낙인찍혀 더 이상 가까이 하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와 각별하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나의 말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나는 깨달았고, 이런 따뜻함을 내가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란 생각이 들었다.
위로는 중독 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아주 아주 쓴 아메리카노를 마실때 한입씩 조금씩 먹을 수 있는 마카롱 같이 천천히, 그 단맛을 가끔씩 맛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