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슬비 Jun 01. 2020

엄마 손은 늘 차가웠다

 나의 엄마는 코다이다. 코다란 청각장애인 부모를  비장애인 자녀를 말한다. 엄마는 매우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엄마가 어렸을 때는 엄마 없이 아버지와 할머니와 자랐고 나중에 부모님이 재결합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의 어린 시절은 상처투성이다. 엄마의 기억은 모조리 아프고 상처 받았던 기억이다. 그런 엄마가  안쓰러웠다. 나는 그런 엄마의 팔자를 닮았던 걸까. 나의 어린 시절도 상처투성이다. 나의 엄마는 미혼모였고, 나는 6 정도까지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살았다. 나의 자세한 이야기는 나의  <죽지 않고 살아내줘서 고마워> 쓰여 있다. 7 때부터 나는 엄마와  둘이 살기 시작했다.  둘이 살기까지의 과정에서 나는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 자다가 납치되기도 하였고, 엄마와 억지로 분리되고, 엄마가 머리채 잡히는 것까지 봐야 했다. 너무  충격을 받았는지 그때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 내가 7 정도까지가 아버지와  마지막 기억이다. 나중엔 아버지가 그리웠지만, 어릴 때는 아버지가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훈육은 엄마가 했는데  아버지가 무서웠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이놈 마디만 하면 정말 두려웠다. 그때의 나를 만나면  안아주고 싶다. 아버지는  먹고, 여자를 만나느라 바빴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붙잡으려 나에게  정을 주지 않았다. 일부러 그랬다고 하셨다. 엄마가 정을 주지 않으면 아버지가 딸이 불쌍해서라도 마음을 잡을  같아서 말이다. 아무 소용없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린 나는 아무에게도 마음껏 안기지 못했다.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어딘가  계셨다. 늦게 술에 취해 들어왔다. 아버지와 시간을 보낸  엄마와 아버지가 헤어지시고 나서이다. 아버지는 나와 떨어지고 나서야 나와 시간을 보내주셨다. 아버지는 엄마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나를 보육원에 보내려 하셨다. 자신이 키우기는 싫지만, 엄마에게 주고 싶지는 않았던 아버지는 그런 생각을 하셨던 것이다. 엄마는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어렸을 , 엄마 손은  차가웠다.  차가운 손이, 엄마와 나의 관계를 말하는 듯했다. 엄마는 나를 너무 사랑했다. 그러나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엄마에게, 사랑하는 법은  어려웠다. 나를 엄하게 키우셨다. 충분한 사랑을 주기보단 차갑게 대했다. ‘아빠 없는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는  두려웠던 걸까. 아버지와 헤어지기를 두려워하셨다. 아버지와 헤어지고 나서도  꼬리표가 두려우셨던 건지, 엄청 엄하셨다. 혹여 버릇없다는 소리를 들을까, 혹여 잘못 키운다는 소리를 들을까. 엄마가 먼저 혼내고, 엄마가 먼저 매를 드셨다.  마음을 이제는 알지만, 그때는 많이 서운했다. 엄마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이제 와서 수많은 아픔을 겪은 후이다. 수없이 아프고 나서야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웃고 운다.  다른 결혼마저 실패하고, 모든 인간관계를 끊은 엄마와, 중증의 우울장애를 안고 사는   둘이서 티격태격 살아가는  역설적으로  좋다. 나는 엄마가 필요했던  같다.  누구보다 엄마가 필요했다. 나는 힘들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러나 다시 돌아간다면, 조금  사랑하고 조금  표현하지 않았을까. 나의 아픔을 삼키고 속으로 울고 속으로  게워냈다. 이제라도 조금  나의 삶에 솔직해져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훈육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